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유행에 매우 민감한 나라도 별로 흔치 않은 것 같다.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변잡화는 물론 음식, 의류와 가전제품에까지도 우리는 유행을 좇는다. 이는 그만큼 우리가 분명한 자기 확신 또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건축에도 이러한 유행은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현대건축의 발전과정은 서구 현대건축의 모방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요즈음에 유리와 금속, 노출콘크리트 등이 유행하는 건축재료이다. 그래서 필자 또한 자주 당신의 건축은 어떤 스타일인가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유행에 관한 한 교회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모이고, 교회 목회자들간에 많은 상호교류가 있다. 따라서 서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교회당 건축과정에서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유행에 휩쓸려 설계를 흔들어 놓거나 귀한 헌금을 낭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교회당 건축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아 왔으며, 최근까지도 여러 교회당 건축에 채택되는 고딕식 건축도 일종의 유행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전래 후 우리의 전통건축인 한옥의 형태를 취하거나 한, 양식의 절충식 교회당들도 있기는 했지만, 교회당 건축의 주류는 의사(擬似)고딕식이 차지했다. 특히 상가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교회의 경우 거의 대부분 고딕식 교회당의 심볼인 첨탑을 건물 지붕 위에 높다랗게 세웠고, 따라서 상가교회가 많은 대부분의 우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십자가를 높이 세운 이 수없이 많은 첨탑들에 의해 특징지워졌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고딕식의 교회당이 교회를 상징하는 가장 이상적이라는 고정관념에 기인하기도 한다. 유럽의 중세 고딕성당들을 보면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놀라 자신의 교회도 그러한 교회당을 건축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또한 우리나라 기독교 전래와 함께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교회당의 모습도 당시 서구에서 보편적이던 고딕식이었기 때문에 현대건축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의 교회들은 교회당이란 의례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교회가 건축에 관한 한 창조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탓이며, 교회당 건축의 가치를 별로 의식하지 못하였던 교회와 건축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교회가 고도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예배당의 크기가 교회의 최대의 관심사였지만, 최근 교회당 건축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에도 교회의 관심이 지나칠 만큼 많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의 시설이나 교회시설 공급업자들의 권고에 따라 유행처럼 휩쓸려 가는 경우를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음향시설이나 영상시설이다. 어느 회사제품의 마이크나 스피커가 좋다더라 하면 가격이나 예배실의 특성에 관계없이 너도 나도 그 제품을 구입하여 설치한다. 그래서 한 교회의 예배실에 좋다고 소문난 여러 회사의 스피커들을 중복으로 설치해 놓은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는 최근에 영상설비에서도 나타난다. 영상예배가 새로운 예배형식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고가의 영상장비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또한 예배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하나의 유행일 뿐이며, 귀한 헌금의 낭비가 될 것이다.

근년에 여러 기독교 기관에서 앞다투어 개최하는 기독교 교회 시설 박람회들은 매우 상업주의적이며, 음향기기나 영상설비가 그 전시품의 주종을 이루며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는 우리교회들의 음향, 영상기기들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또한 유행병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렇게 좋은, 값비싼 그리고 많은 기기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실제로 특별히 대규모의 예배공간을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고성능의 기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예배 중에 음향기기를 필요로 하는 주요기능은 설교인데, 이는 공간의 크기에 알맞는 적적한 용량의 기기로 족하다. 좋은 음향기기는 음악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예배 중에 이루어지는 성가대의 찬양 등 교회 음악은 생음으로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음향기기의 도움이 불필요하다.

파이프 올갠도 유행 중의 하나이다. 사실 파이프 올갠은 중세 유럽 성당처럼 내부가 돌로 이루어진 고도의 음향 반사성 공간에서 그것도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공간들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공간으로서 그 자체가 울림통이 되는 성당에서 연주되도록 개발된 악기이다. 따라서 오늘의 개신교 예배실처럼 하나의 홀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그것도 설교음을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적절히 흡음시킨 예배공간에서는 파이프 올갠이 제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최소한 수억원 내지는 1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엄청난 고가의 파이프 올갠을 설치해야만 하는가, 파이프 올갠의 교회음악이 현대교회 예배에서도 최상의 찬양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필요할 것이다.

교회건축에서 최근 유행하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소위 '인테리어'이다. 요즈음 교회당 설계를 의뢰하면서 대부분의 교회가 인테리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회당의 실내 디자인은 건물의 겉모습과 똑같이 중요하다. 더욱이 교회 예배실의 디자인은 예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실내디자인은 결코 벽이나 천장, 바닥의 재료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보다는 실내공간 자체의 형태와 구성을 통한 건축공간적 디자인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위에 공간의 성격에 적합한 재료의 조화로운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당 전체의 건축디자인과는 별개로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많은 비용을 들여 맡김으로써 건축디자인과의 조화를 잃어버리고 마치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처럼 고급스럽고 현란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는 극력 피해야 할 일이다.

교회들은 교회당 건축과 관련하여 왜 이렇게 유행에 민감할까? 혹시 교회간의 경쟁심 때문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교회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기관들로써, 서로 어느 정도 경쟁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사역자체를 위한 선의의 경쟁이어야지 물질의 경쟁이어서는 안될 일이다. 만일, 교회들의 사역이 이러한 교회당 시설의 고급화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더 더욱 잘못이다.

교회사역에서 교회당 건축시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사역을 위한 목회프로그램이며,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이다. 많은 헌금을 투자해야 하는 이런 교회당 시설의 경쟁은 결국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건축의 목적은 교회사역을 위한 훌륭한 도구를 만드는 일이지, 교회의 세와 부를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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