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성경책을 바라본다. 검은 모조 가죽을 제 옷으로 입고 있는 그 성경책은 예수를 흉내내기에도 온전치 못한 나의 모조성을 닮았다. 성경책의 겉옷이 이상한 유사피혁의 내음을 내듯 나도 유사예수의 내음만을 내고있을 뿐이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유사예수의 내음이라도 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 지경이다. 나는 오늘도 유사예수의 내음이라도 내고자 그렇게 몸부림치며 시간을 흘린다.

어찌된 영문인지 어제와 오늘 단 한 줄의 성경도 읽지 못했다. 시편과 마가복음을 오가며 돼먹지도 않은 접점을 찾아내는 데에 쾌재를 부르던 지난 주간의 모습과 분명히 갈라서는 지점이다. 지난 여름, 내 안의 그 무수한 주름들을 펼쳐낼 만큼 강렬히 다가왔던 예수는 이제 점점 버거운 상대로 다가온다. 예수는 분명한 삶의 방향을 제시했건만 그리하여 나도 그에 상응하여 손을 내밀었건만 어느새 그와 같이 산다는 것에 덜컥 두려움이 앞서는 모양이다. 나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나의 마음을 붕괴시켰던 여름날의 예수는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되살아나며 그 버거움을 쉴새없이 자각시킨다. 내 삶의 큰물줄기를 틀어 버린 그 청년 예수는 예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오늘의 청년을 꾸짖는다. 그것은 호되다. 검약한 삶을 넘어 남 섬김의 도를 몸으로 행했던 예수. 기꺼이 온갖 타자들의 친구가 되어 세상을 갈아엎는 그 중심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던 그의 삶 앞에서, 나는 두려움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예수와 같이 사는 것은 곤핍함을 제 삶의 원리로 받아들여야 함을 뜻한다. 온갖 부나 명예와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삶임을 인정해야 함을 말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와 같이 살겠다 고백하는 것이 주일날 호사스런 승용차에 몸을 싣고 뻔뻔스레(여기에는 조악한 계급적 우월감이 묻어난다) 교회로 소풍가는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수천 수억을 들여서라도 장로직에 오르고자 기를 쓰는 일이 아님을 일찌감치 깨닫는 것이다. 예수적 삶이란 나를 포기하는 지독히도 곤핍한 삶이다. 사랑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몸까지 바치는 혹독한 삶이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간단히 내쳐지며 이름도 빛도 없이 죽을 수도 있는 가혹함이 예비되어 있기도 하다. 뜨거운 여름날의 문턱에서 나를 뒤흔든 예수는 그렇게 살기를 채근했고 나는 그에 두 손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성경 속에서 되살아나는 예수적 삶의 실체는 아직 얼치기 신앙인인 청년을 멈칫하게 한다. 때문에 청년은 유사예수의 내음이라도 내려는 마음마저 올곧게 주장하지 못한다. 제 모습을 잘 아는 까닭이다. 저가 얼마나 모자란 놈인지 깊이 알기 때문이다.

일찍이 세례요한은 예수의 신들메를 풀기에도 감당치 못하다는 고백을 했지만 그의 삶이 온전히 드러나는 성경을 펼치기에도 감당치 못하는 나는 이제 그것을 행복한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와 같이 사는 것이 온당한 길이므로, 성경에서 드러내고 있는 예수적 삶의 가치가 곧 가장 인간다운 삶이 될 것임을 잘 알기에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그것이 목숨을 담보로 살아야하는 지독한 곤궁의 삶임을 안다. 예수적 삶을 갈망하는 저편에서 자본주의적 삶의 조각을 놓지 못하는 나는 성경을 감히 읽지 못하는 것 정도로 나의 작은 가슴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길은 정확히 나누어져 있다. 감히 예수와 같이 사는 것과 그 온당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차피 존재가 한 덩어리인 이상 두 길을 함께 갈 수는 없다. 그러한즉 나에게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숨막힐 듯 무더운 여름 날, 그 예수 앞에서 나는 분명히 고백했었다. 예수적 삶을 살겠노라고. 그러나 여름의 무더움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브라운 빛 가을이 물드는 오늘, 얼치기 그리스도인인 나는 그 삶이 버거워 성경 펼치는 일도 그만두고 있다. 그러니 어떡하겠는가. 유사품일지언정 끊임없이 진품을 닮아가는 수밖에. 결국 진짜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미메시스적 삶이라도 살아가는 수밖에. 유사예수의 내음이라도 풍기기 위해 성경을 다시금 펼친다. 유사피혁의 내음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나는 여전히 예수적 삶을 갈망하는 가짜 예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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