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을 처음 만난 게 지금부터 약 6년 전 11월경으로 생각된다.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남의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사업을 정리하고 쫓기다시피 하여 무작정 하경(下京)을 한 그는 서울생활에만 익숙하여 중소도시 생활에는 아직 서툰 때였다.

교회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던 그를 전도 심방하던 첫 날 난 머리에 손을 얹고 대뜸 안수기도를 하였다. 그때만 해도 성도들에게 안수기도를 잘 하지 않던 내가 왜 대뜸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무 거부반응을 안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 받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형님들은 모두 일류 대학을 졸업하시고 든든한 관직에 계시며 서울서 꽤 성장한 교회의 장로요 권사이다. 형수들을 비롯해 모든 가족들이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 틈에서 생활한 그였지만 그는 교회에 대하여 너무 부정적이었다. 부인이 교회 가는 건 그런대로 봐 주지만 자기가 교회 가는 건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날, 그의 초등학교 다니는 큰아들이 우리교회에서 성탄발표를 하게 됐다. 그 날 부인의 성화로 아들의 발표를 보러 나왔다가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그가 가끔가다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 잠이 많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도 주일이면 오전 11시 넘어까지 잠자기가 일쑤다.

어린이 교사인 부인이 먼저 교회에 나왔다가 10시 반쯤 되면 남편을 데리러 다시 집에 가서 잠자는 남편을 간신히 깨우고 달래어 교회에 데리고 나오기를 약 2년 정도 했을까. 언제부터인지 부인이 데리러 가지 않고 전화만 하면 스스로 나오기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신앙생활 하던 분이 어느덧 집사가 되고 청장년 회장을 거쳐 지금은 교육부장(서리)의 일을 맡고 있다. 교육부 일을 하려면 늦어도 주일 오전 9시까지는 나와야 한다. 영화보기를 즐겨하여 밤이 늦도록 TV 에 메달려 있던 분이라 늦잠을 자기 마련이다.

밤을 새우다시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간에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매 주일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잠시 틈을 내어 주방에 내려가 부인이 서둘러 만들어주는 계란 후라이로 허기를 면하고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서야 아침 겸 점심을 먹을 때 그는 늘 2그릇 이상이다.

그 집사님이 맛있게 잘 먹는 바람에 옆에 있는 분들도 반찬도 없는 점심을 덩달아 맛있게 먹을 때가 많다. 잠이 설 깬 모습으로 주일날 일찍 교회에 와서 책임을 완수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그때서야 잠이 쏟아져 어쩔 줄을 모른다. 너무 졸려 집에만 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렇게도 교회를 멀리하던 분이 어떻게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누구 말마따나 기본 성품이 좋은가 보다.

몇 년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사실 이 분처럼 맘이 착한 분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분의 집은 충주에서 거의 북쪽 끝이다. 그래도 저녁예배가 끝나면 정 반대방향에 사는 분이라도 차가 없는 분이 있으면 아무리 시간이 늦어도 꼭 태워다 드리고 간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그야말로 오리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는 분이다. 그렇게 하는 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이다. 교육부장(서리)을 맡은 이 에게 추석 맞는 일보다 더 바쁜 일이 생겼다. 시월 둘째 주일에 있는 어린이 영어발표회 준비 때문이다. 매 분기마다 일년에 네 번 갖는 발표회가 금년에는 추석과 거의 맞물렸다. 아이들 준비는 교사들이 도와 주지만 요번에는 처음으로 약 50쪽 정도 되는 발표회 책자를 발간할 예정이어서 너무 마음이 바쁘다.

타이핑에 익숙하지 않은 이가 하루종일 힘든 직장 일을 마치고 돌아와 독수리 타법으로 그것도 반 이상인 영문인 책자를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것뿐인가, 담임목사가 어린이 영상영어교육을 위해 TV를 올려놓을 수 있는 큰 받침대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으니 더 바빠졌다.  

명절을 지낸 다음날 밤부터 직장 일을 마치고 바로 교회로 달려와 받침대를 만드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 집에 가선 또 컴퓨터에 앉아 밤늦게까지 발표회 책자를 만들어야 한다. 받침대를 만들던 다음날 낮에 교회에 와보니 밤늦게 까지 교회 안에서 톱질한 톱밥먼지가 교회의 온 바닥과 의자를 뒤덮어 먼지투성이다.

교인들 오기 전에 깨끗이 해 놔야 되겠다고 밀걸래를 빨아 한참 청소하다 보니 늘 은밀한 시간에 나와 기도하고 청소하던 그 분의 부인 집사가 생각났다. 혼자 밀대를 밀며 청소하다보니 안하던 일을 해서인가 허리가 아프고 힘이 들었다. 해서, 오늘은 ㅇ집사가 안 올라나 하며 그분의 부인 ㅇ집사를 생각하고 있는 데 누가 교회문을 삐걱 열면서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는 데 보니까 그다.

혼자 치우다 청소에 익숙한 집사님하고 같이 치우니 너무도 쉽구나. ㅇ집사님이 청소기를 돌려 강대상 카페트의 먼지를 제거하고 제단을 닦는 동안 나는 바닥과 의자를 닦으니 금새 청소가 끝나다.

이렇게 하여 헤어지고 집에 와 한 두시간이 지났을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조금 전에 함께 청소를 하고 간 그 집사님이다. 사모님을 좀 바꿔 달란다. 없다고 왜 그러냐고 하니, 황당하게 좋은 일이 생겼다나.

'무슨 일이에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에게도 좀 알려 줘요'
'지난번 추석 전에 C 마트에 갔더니 3만원 이상 물품을 산 사람에게 경품권을 주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당첨되었대요'
'아 그래요, 잘 되었구먼'
'그런데 뭐가 당첨되었는고'
'목사님 놀라지 마세요. 아주 큰 게 당첨되었어요'
'그래요? 뭐가 당첨됐길래'  
'아 글쎄 마티즈가 되었대요'
'마티즈? 마티즈가 뭔데? 먹는 거야? 입는 거야?'
'타는 거예요'
'자전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자동차예요?'
'뭐라고! 자동차!!!!!'


너무나 놀랍고도 신이나 ㅇ집사와 C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약속 장소를 향하여 차를 달렸다. ㅇ집사와 확인해 보니 확실했다. 작은 차이지만 6백만원 정도 되는 차라나. 정말로 경사로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 그날 밤 심야기도회 시간에 우리 교우들은 모두 눈물로 통곡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추석 전날 주일 낮예배를 마치고 교육부 행사보고를 하는 것처럼 내방에 들어왔던 이 분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슬며시 봉투를 하나 꺼내 주면서 부족하지만 명절에 보태 쓰시라는 게 아닌가.

서울에서 내려와 비좁은 아파트에 살며, 든든하지도 못한 직장에 다니는 바람에 월급도 자주 밀려 생활비로 고생하던 분인데 나에게 봉투를 전해 주다니. 내가 이것을 받을 수 있을까. 난 그분과 헤어지고 멍하니 앉아 한참동안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 하나님은 그 가정을 위하여 멋진 추석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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