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비롯한 21개 교계 개혁단체가 참여하는 신문개혁기독교연대가 <조선일보>를 주 대상으로 기독교계의 언론개혁운동의 불을 당겼다.

신문개혁연대는 "<조선일보> 등 친일 독재찬양 족벌신문을 개혁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물론 신문개혁연대는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기타 신문들의 행태도 문제를 삼았으나, <조선일보>의 죄상을 열거함으로써 언론 개혁의 가장 큰 고비가 <조선일보>의 변화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신문개혁연대는 <조선일보>를 보아서는 안 되는 10가지 이유를 △친일 행각 △독재정권 찬양 △민주인사 탄압 △국가 안보 상품화 △지역감정 조장 △대북 화해와 평화정책에 딴지 걸기 △사상 공세를 통한 교회 분열 조장 △인권유린적 왜곡보도 △족벌 세습 체제의 부도덕성 △자사 이기주의적 보도 행태 등으로 요약했다.  

그렇다면 하필 왜 <조선일보>인가? 신문은 모두 그게 그거 아닌가? 그러나 <조선일보>에 대한 반대운동에 기독교계가 뒤늦게나마 참여하게 된 것은 <조선일보>가 교계를 대북 적대감을 조장하는 반통일 전선으로 규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부터라고 하겠다. 특히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을 필두로 하여 <조선일보>는 기독교계의 보수우파 세력을 집결시켜 현재 진행중인 남북 화해의 역사적 진전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려는 시도를 했으며, 그로써 기독교계가 화해와 평화의 사도로서가 아니라 민족 분열을 부추기는 세력이 되도록 유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교계 내부의 분열 조장으로도 이어져 자칫 기독교계가 일개 언론사주의 반통일적 프로파갠다에 휘둘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도를 통해 <조선일보>는 남북 화해를 바탕으로 전쟁을 막자는 논리를 북한에게 굴복하는 정책으로 왜곡함으로써 그간 기독교계가 애써온 남북화해운동의 근본 취지를 흐리는 논리를 전파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반민족적 행태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기류가 화해와 평화로 흐르는 것을 저지하려는 것이며, 민족 내부의 분열을 치유하고 사랑으로 하나 되려는 기독교의 근본 정신을 파괴하는 일이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한 비판과 각성 촉구는 기독교계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이기도 하며, 이에 대하여 미적거릴 경우 기독교계는 사회적 이념적 혼란 상태에 처해 있는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 또한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색깔론으로 민족 분열 앞장…기득권 지키려는 안간힘

사실 <조선일보>는 자신의 친일 행각을 호도하기에 급급해 왔으며, 마치 민족운동을 주도한 민족지인 양 역사를 왜곡한 것이 비판되어 왔다.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무수한 증거를 통해 확인된 바이며 이러한 권력 추종과 민족 반역적 자세는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편에 붙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일에 협조해온 것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오늘날 언론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것처럼 견강부회의 논리를 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써 <조선일보>가 언론 탄압의 희생물이 된 듯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와 자세는 <조선일보>의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중대한 내부적 장애이다. 이러한 인식이 스스로 안에서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무망하다. 결국 외부적 압박에 의한 개혁 촉구 외에는 달리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냉전시대에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를 유포하는 일에 앞장서 왔으며 통일운동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인사들과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사회적·정치적으로 매장시키고 법적 처단을 받도록 하는 일에 진력해 왔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매카시즘적 발상과 행위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은 부지기수이며, 그로 말미암아 이 나라 민주주의와 통일의 진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김영삼 문민정권 당시 한완상 통일부장관이 겪었던 <조선일보>에 의한 매카시즘 공세를 비롯하여, 김대중 국민의 정부 초기 최장집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의 음해 공작은 <조선일보>가 민족사적으로 얼마나 왜곡된 논리를 자행해 왔고 그로써 애꿎은 빨갱이 논쟁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통을 당했는가를 증언해주는 예라고 하겠다. 얼마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장희 교수가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고소에서 승소한 것을 보아도, <조선일보>가 얼마나 마녀 사냥 식의 논리를 마구 휘둘러 왔는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다.  

최근에는 난데없이 김대중 대통령의 6·25는 실패한 통일시도 발언을 트집잡아, 북한식 인식이라느니 주변 인물들이 다 그렇고 그런 인식을 가진 자들이라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럽다고 비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미 6·25가 무력통일의 시도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으며 언제나 내세우는 것이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경계하자"는 것이었다는 점을 환기하자면, 6·25가 북한에 의한 무력통일 시도였다는 개념 규정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어떻게든 냉전형 매카시즘을 동원하여 빨갱이 논쟁을 일으키고 그로써 대상 인물의 정치적 영향력을 소멸시키려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고 하겠다.

결국 <조선일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색깔론을 들먹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정치 질서를 구상하는 매우 정치적인 신문이자, 냉전수구 세력의 대변지라고 하겠다. <조선일보>가 이러는 것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역사적 치적이 될 가능성이 높은 햇볕정책에 흠집을 내자는 것이며, 남북 화해정책이 가져올 내부적 탈냉전의 기류를 경계하는 것에 그 의도와 목적이 있다.  

오늘날 시대는 분명 냉전의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여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이며, 이를 가로막고 냉전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은 수구보수라고 하겠다. 결국 평화적 통일의 길을 저지하려는 것이 냉전수구 세력의 본질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조선일보>는 민족 내부의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을 극복하면서 통일을 평화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냉전수구 세력은 냉전 질서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안보논리에 따라 누려왔던 기득권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것이다. 안보논리를 내세우기만 하면 자신이 걸리적거리게 생각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다고 여기고 있고 또 그럴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반역사적 인식을 가진 신문인가? 이들의 기득권, 냉전형 특권을 위해서 민족의 미래가 희생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여전히 냉전의 족쇄에 갇혀 전쟁의 위협을 느껴야 하며 민족의 분열 상태가 영구화되어 국제적으로 약소국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조선일보>는 전쟁에 환호하며, 평화정책에 혐오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남북 화해를 추구하고 한반도 평화에 진력하려는 이유는 다시는 전쟁의 방식으로 민족이 멸절하지 않고,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일구어 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계산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조선일보>는 북한을 무력으로 강점하여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식하는 것이 올바른 통일의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악마적 체제이기 때문에 이를 붕괴시키는 과정 없이 진정한 통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쪽에서의 무력 동원은 그래서 옳은 것이라고 강변한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가세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무서운 희생이 발생할 것인지, 그로써 남북간의 적대감과 상처는 또한 얼마나 깊어질 것인지 따지지 않는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그토록 공격하면서도, 남한의 대북 무력 공세는 도리어 부추기는 논리의 모순과 이중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인명을 철저히 경시하는 논리를 폄으로써 <조선일보>가 추구하는 한반도의 질서란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북한에까지 연장 확대하는 체제의 재편이라는 점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통일이란 민족 화해와 협력, 교류와 상호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냉전수구 세력의 이익이 보장되는 불의한 체제의 성립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우리는 <조선일보>가 끼치는 민족적 해악과 현실적 파괴력을 저지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오늘날 민족사가 경험하고 있는 분단의 비극 그 중심에 있으며, 그 비극을 막으려 들기는커녕 오히려 비극을 심화시키려는 시대착오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끼치는 민족적 해악 저지해야

따라서 기독교계는 이러한 <조선일보>의 논리와 행각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주장과 여론 조작이 힘을 행사하게 될 경우, 우리 민족의 진로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 경우 기독교계의 역사적 책임은 막중해진다.

그나마 어렵게 성사되고 진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남북 관계가 <조선일보>와 같은 냉전수구 세력의 여론 공작으로 인해 오해되고, 불신의 대상이 된다면 이는 민족사에 크나큰 죄를 짓는 것뿐만 아니라 후대에 막대한 피해를 유산으로 남기는 것이 되고 만다. 이 작업은 현 정권에 대해 지지를 하는가 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 화해와 냉전체제의 청산은 정권의 운명과 함께 좌우되는 사안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이해와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가 정치적 이해 관계를 염두에 두는 발상이나 자세, 처신을 할 이유가 없다. 오로지 기독교 정신을 우리 민족사에 어떻게 투영시켜 현실화해 나갈 것인가가 가장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제 기독교계가 연대하여 <조선일보> 등 민족사의 진로를 교란시키려는 신문들을 개혁 대상으로 삼아 반대투쟁을 벌이게 된 것은 실로 다행스럽다. 교계가 일개 신문과 잡지의 냉전형 농간에 휘둘려 분열과 내부적 적대감을 키울 뻔했다가 이렇게 사태를 바로 잡는 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은 비록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매우 중요한 사태 진전이라고 하겠다.

<조선일보>라는 반민족적 언론의 행각이 사랑과 생명을 중시하는 기독교계의 머리 위에 앉아서 이리 저리 휘두르는 사태를 이제는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기독교계의 언론개혁 연대가 이 나라 역사에 영향력 뚜렷한 족적을 남겨 민족사의 올바른 진행에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조선일보>가 가한 민족적 폐해를 하루 속히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사의 진로를 바로 세우는 일에 기독교계가 열과 성을 다해 진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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