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9월 11일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시킨 참혹하고 잔인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무고하게 귀중한 목숨을 잃은 수천의 희생자들, 그 유족과 친지들에게 충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분노 속에 잠겨 있는 피해 당사자들과 미국시민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 이번 테러는 공중 납치한 민간비행기를 이용한 자살테러였으며 무고한 불특정 다수를 테러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냉혹성과 잔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테러로 말미암을 국제정세의 혼란, 전쟁의 위협과 경제적 위기의 지구적 확산에 대한 염려로 전 세계는 불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파괴적 효과를 가져 온 테러는 철저히 반인륜적인 행위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이름으로 엄히 규탄 받아 마땅합니다. 이렇게 잔인 무도한 테러를 주도한 세력들을 반드시 규명하여 정당한 응징을 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는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인류가 보편 타당하게 인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범죄 용의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움으로 정의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3. 한편 이번 테러에 대응하는 미국정부의 현 노선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테러를 전쟁으로 확대해석하고 이에 대한 응징으로서 21세기의 첫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당사국으로서 가질 수 있는 슬픔과 분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로서 냉정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테러에 대한 대대적인 피의 보복은 아무리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도 무고한 생명을 또 다시 짓밟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보복전쟁은 잠시의 표면적 평온은 되찾을 수 있을지언정 결국에는 테러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4. 어려운 시점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우방으로서 뼈아픈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지금 누가 이 테러를 범하였는가, 라는 질문뿐만 아니라 왜 이 잔혹한 테러가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졌는가, 라는 질문 앞에 겸손히 대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동안 미국이 걸어 온 행보가 정의롭지만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역시 상대적 약소국들을 대상으로 반군을 지원하거나, 직접 공격하거나, 테러 세력에 무기와 훈련을 제공하는 등의 직간접적 테러행위에 참여함으로써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국익을 추구해오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미소간의 핵무기 감축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많은 나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MD 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해 왔습니다.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미국은 환경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교토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도 평화의 중재자로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이 최근에 더욱 역력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선봉장으로서 세계화로 말미암아 약한 나라와 집단이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려는 가슴이 있음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5.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미국의 명분 없는 보복전쟁 호소에 무비판적인 지지를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우리 정부는 지난 시기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베트남전 참전으로 베트남 민중들에게 끼친 엄청난 희생과 고통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명분 없는 전쟁에 동조하는 것은 정략적이고 비굴한 태도로 폄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 땅위에 평화를 촉진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적인 대결구조를 심화시키는 일에 일조하는 일임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6. 전 인류는 이번의 비극적인 테러사건을 통해 진정한 평화는 결코 힘의 우격다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의의 구현에서부터 비로소 꽃피기 시작한다는 점을 재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께서도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 사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여론을 형성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한편으로는 테러 피해자들의 슬픔과 분노에 참여하고 정당한 법적 응징을 지지하면서도 명분 없는 전쟁에는 반대함으로써 정의를 통한 평화구현을 위해 힘을 모을 때 우리는 역사 속에 부끄럽지 않은 세계시민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2001년 9월 27일
공의정치포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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