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테러와 그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바라 보는 여러 시각이 있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정리를 필요로 한다는 어떤 귀한 형제의 요청으로 다음 글을 씁니다. 읽어 보시고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들 많이 토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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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본적으로 이번 테러 사태와 그에 대한 대응들을 "선과 악의 대립"이나 "종교간의 투쟁", 또는 "문명의 충돌" 등으로 보는 시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일은 근본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문제와 악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잔인하고도 대담한 테러의 방법 자체가 그러하고, 그것이 가져온 무시무시한 결과가 그러하며, 또한 이런 사태 앞에서 다른 이들만을 비난하며 다시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에서 그것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인간들의 태도와 행동에는 전적으로 선한 것만 있거나 전적으로 악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테러리스트의 악한 행위가 오직 악한 동기에서만 되어졌다고 할 수도 없고, 미국의 강력한 대응이 오직 선한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테러리스트와 그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이들은 이 사태가 결국은 부쉬 행정부의 강한 외교적 태도에서 온 것이라고 할 것이고, 미국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태를 만들어 내는 테러리스트들의 인간성의 문제를 지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된 테러리스트들도 문제이고, 그것을 간접적으로 부추킨 미국의 강력한 외교 정책도 문제인 것입니다.

또 대응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만일 미국이 무차별 폭격을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것도 죄악이요 문제지만, 그것을 촉발시킨 테러리스트들과 그런 집단과 연관성을 강하게 지닌 텔레반 정권도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잡한 연쇄 관계를 지닌 세상에서는 어떤 한쪽만이 잘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단지 비교적 어느 편이 악이 더 적은가를 중심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의 말과 행동과 감정과 그 표현에는 어느 정도의 악과 어느 정도의 선이 같이 있음을 이번 사태가 단적으로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습 속에는 늘 윤리적으로 모호함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윤리적으로 모호한 인간의 태도와 행동 가운데 악한 요소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그것들을 지적하여 우리와 다른 이들의 문제점들을 바로 보고,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한편이 자신이 당한 모든 공격과 부정의와 손실에도 불구하고, 원수를 갚지 않으려고 하면서 상대를 용서해 가려고 하며, 그 모습을 바라 보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 상황 가운데서 진정으로 희생당하는 이를 바르게 보고, 그를 위한 작업을 해 주는 데서만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이루어 지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이번 사태 앞에서 미국이 무조건 용서한다는 자세를 취한다면 과연 미국 국민들이 그대로 있겠으며, 다음 선거에서 부쉬와 공화당을 지지하겠습니까? 또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미국의 희생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 보면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고, 또 다른 테러를 자행하고 더 과격해져 갈 것입니다. 그러니 미국의 행정부 수반과 그 국민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방향을 향해 가려고 할 것이 뻔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은 이런 상황에서 그저 수모를 당하고, 오해를 받고,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연약해 지지 않고 견디면서 묵묵히 고난을 받아 가는 것이지요. 그것만이 온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기에 말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구속의 도리를 아는 이들이 때때로 이런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려 했습니다. 자신에게 돌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던 스데반이나 손양원 목사님의 모습이 바로 그런 예가 되겠지요. 우리 주님의 유일하고 독특한 구속 행위에 나타난 자기 희생의 원리를 배워서 그에 조금 이라도 가까운 것을 드러내 보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여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인들이 성령님의 은혜와 도움 가운데서 이런 자기 희생과 자기 죽음, 자기 부인의 길로 나갈 때에야 이 세상에는 악이 조금 덜해 지는 일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당장은, 단기적으로는 악이 더욱 성행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미국이 다 용서하고 진정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오히려 테러리스트들이 더 기승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되면서 결국은 이렇게 한쪽이 희생하고 죽는 것만이 이 세상에 악을 적어지는 유일한 길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악한 행동과 악한 이들을 살펴 보시며,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것을 내게 맡기라고 주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우리의 마음에는 들지 않지요.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원수 갚고, 정의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하다가는 이 세상은 무법천지의 세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각기 자신의 원스를 갚으려고, 보복을 하려고 온갖 무력을 다 동원하는 그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와 같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힘 있고, 무력을 잘 사용하고, 그런 이들을 잘 고용할 수 있는 경제력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힘을 드러내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바로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외적인 세력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피해 당사자가 나서는 것은 오히려 악만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제 사회에서는 그렇게 나설 수 있는 국제적 기관이 없으므로 결국은 미국 중심의 보복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싸우는 꼴이 벌어 지는 것이지요. 그 때에는 온 반 친구들(온 나라들)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선생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진정한 해결이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싸움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비로 이런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국제 연합이 있어도, 나토가 있어도, 그런 것들이 진정 국제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복수심에 가득한 미국의 들러리 역할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낼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해결책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해결책을 바라 보면서 우리는 혹시 그에 조금 가까운 길로 나아 가려는 노력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국제 사회의 객관적인 조정과 재판과 법의 재판을 요청하든지(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미국민의 마음에 안들겠습니까?), 아니면 비폭력의 저항을 해 가는 길을 찾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조금 가까이 나간다고 하면서  취할 수 있는 방도들일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은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악의 세력에 우리를 내어 주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것만이 악으로 악을 대항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 어떤 가시적으로 큰 효과는 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죽어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길로 갈 때에 하나님의 정의는 살아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역사 가운데서, 그리고 안되면 역사를 너머  이루어지는 최후의 심판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문제 앞에서 생각하고, 취해 나갈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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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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