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중에 최대 규모의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예장합동이 지난해 9월 제84회 총회 때 제법 의미있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다름 아니라 총회헌법에 명시돼 있는 '공로목사 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장합동의 경우 담임목사 시무 20년이 넘으면 교회에서 '원로목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노회는 '공로목사'로 예우한는 것이 대부분 관례다. 물론 공식 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당시 총회에서는 이 공로목사제도를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명예와 감투 좋아하기를 하나님나라보다 더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총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당시 총회현장을 지켜본 기자로서는 하나의 충격이었고, 꺼져가는 이 교단이 다시 살아나려나, 정말 하나님께서는 썩어가는 고목도 살리려고 애쓰신다, 하는 마음을 가졌다. 너무나도 흐믓했다.

근데 말이다.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일년도 안되서 호떡 뒤집기 하듯 뒤집힐 판이다. 물론 당시 결정할 때도 웃지 못할 코미디 가운데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당시 총회헌법 수정안을 논의하던 중, 장로들이 나와서 "왜 공로목사는 있는데 공로장로는 없느냐"며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옥신각신 논란이 벌어졌다. 여성, 평신도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왜 공로권사, 공로집사는 없느냐"고 너도 나도 나설 판이었다.

그러다가 나온 최종 결론이 뭔가? "이도 저도 골치 아프니, 공로목사제도를 없애자"는 것이다. 명분은 그럴 듯했다. 하나님 앞에서 일꾼으로 쓰임받는데, 공로라는 이름이 뭐가 그리도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순진한 일부 총대들과, 남주기에는 배 아파하는 무리들이 뒤섞여 박수로 호응했다.

총회에서 결정된 헌법수정안은 각 노회로 보내져서 각 노회별로 검토하고 표결로 결정한 뒤 그 결정비율을 묶어서 다음 총회 때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한다. 그러니까 올해 9월 총회 때 최종 결정해야 공로목사제도를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수정안이 각 노회로 보내지자 거기서 난리가 났다. 총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노회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공로목사들이 어디 한 둘인가. 더군다가 하나님 말씀보다는 유교의 예를 더 숭상하는 후배 목사 장로들이 그들의 난리를 막을 도리가 없다. 또 잘 하면 자기들도 나중에 공로목사가 되는데 없애긴 왜 없애? 총회 때야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지만, 노회에서야 우리 맘대로지.

이렇게 해서 여러 노회들이 공로목사제도 폐지안을 부결시켰다. 그중 경기북, 군산동, 남수원, 남대구, 대구중, 대구수성, 중서울노회 등은 공로목사제도 존속을 정식으로 헌의했다. 이들은 헌법수정안을 총회현장에서 긴급동의안으로 처리하는 것은 법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유리하면 밀어부치고 불리하면 법을 찾는 이중플레이가 여기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목회에 평생을 바쳐 헌신한 것이 굳이 이 땅에서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인가? 설교할 때는 교인들에게 "이 땅에서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하늘나라 상급을 사모하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어차피 목회자로 나서기로 했을 때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하고 뜨겁게 찬송하며, 사역의 길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일꾼이 일꾼으로서 최선을 다해 충성했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무슨 공로가 있어야 하는냐는 말이다.

'목사'라는 직함 하나만으로도 주님 앞에서 감격스럽고 영광스럽고 황송하고, 뭐 그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공로'라는 딱지를 꼭 목사 앞에 붙여야 하는 지 정말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올해 9월 총회 때 이 문제가 어떻게 다뤄질 지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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