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는 서울 대림2동에 자리잡은 조그만 교회이다. 어린이를 포함해서 모두 40여명. 나에게 가족 공동체라는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교회이다. 그리고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는 신념을 심어준 고마운 교회이다. 그러니 나는 대림동에 있는 이 아름다운 교회로 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김철원 목사와 교우들에게도.
  
2년 전에 한생명교회와 지금 생명문교회가 서로 한몸이 되어 한 교회가 되었다. 생명문교회 김철원 목사는 신학교 2년 선배로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곤 했다. 그는 내가 생명문교회에 온 지 1년 6개월 된, 어느 날 나에게 아주 심각하게 말했다.

목사가 택시운전을 한다고?

"채 목사, 꽤 오랫동안 기도해 온 건데, 이 일을 꼭 해 보고 싶어." "무슨 일인데요." "채 목사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야. 해 줄 수 있지?" "알았어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꼭 해 줄 수 있지?"
  
선배 목사는 아이처럼 매달리듯 말했다. "알았다니까요."
"나에게 일년 동안 안식년을 주었으면 해." "안식년이요?"
"그래, 교인 40명 모이는 조그만 교회에서 안식년이라면 남들이 웃겠지만, 내가 목회한지 올해로 꼭 15년 되는데, 못할 것도 없지."
  
"그럼, 안식년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요."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안식년을 얻으면 공부한다는 핑계로 미국이다 유럽이다 하며 해외로 가서 여행하다가 오는데, 나는 말야 노동을 하고 싶어. 육체 노동을 말이야." "예? 육체 노동을요?" "그래, 채 목사야 농촌에서 태어났으니, 안 해 본 일이 없겠지만, 목사 아들로 태어난 나는 땀흘리는 일을 해 본 적이 없거든. 땀흘리는 노동의 경험 없이 매일 노동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 제대로 설교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럼,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요?" "내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말야. 아무래도 택시운전 밖에 없는 것 같아. 신학교 나와 교회에서만 산 사람이 무슨 기술이 있겠어. 운전 밖에 할 게 없더라구. 그래서 택시운전을 하고 싶어."
  
하, 목사가 택시운전을 한다고?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목사는 설교하고 심방 가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택시운전을 하겠다고?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두 다 교회로 들어가 교회 안에서만 일하는 것이 목사의 일이요, 교회 밖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불순하게 생각하는데, 김철원 목사는 목사가 교회 밖으로 나아가 교회와는 상관없는 일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 그래요.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지요." 나는 선배 목사를 어떻게든 도와 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공동으로 해왔던 목회를 채 목사가 모두 맡아서 해줘." "그럼, 언제부터 하려고요." "이 달에는 우선 택시운전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음 달 초부터 할 수 있을 거야."
  
목사님은 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되셨나요
  
오늘은 김철원 목사가 처음으로 택시운전을 하는 날이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그의 첫 운전에 힘을 모아 주기 위해 대림동에 있는 세창운수로 향했다. 구로구청 옆에 있는 세창운수에 도착하니, 김 목사는 이미 멋있는 하늘색 회사 유니폼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 안에서 그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목사가 교회 밖으로 나와 택시운전을 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안전 운전하게 하시고, 돈도 많이 벌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그리고 나는 영광스럽게도 첫 손님이 되어 김 목사의 첫 운전을 축하해 주었다. 첫 핸들을 잡은 그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운전에는 자신 있는 그였지만, 택시운전이라는 색다른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우리 교회 이승원 전도사가 사는 서울대 입구까지 함께 동승하면서, 회사 납입금(6만원 8천원)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안전운전하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라고 당부하면서 택시요금으로 거금 2만원을 주었다. 내 생애 중에 가장 비싼 택시를 탄 것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 교회의 붉은 네온사인이 빛나고, 교회마다엔 새벽예배가 한창인데, 우리 목사님, 김철원 목사는 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되었을까? 목사는 모름지기 제단을 지켜야 하고, 길 잃어 방황하는 양들을 돌보아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우리 목사님, 김철원 목사는 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되었을까?

교회 밖으로 나가신 목사님
  
사람들은 목사를 평가할 때, 교회 건물의 크기나 교인 숫자로 평가한다. 교인이 많아 건물이 큰 교회의 목사는 능력 있고 신령한 종이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 안에만 관심하지 교회 밖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해서 교회를 부흥시킬까, 어느 지역에 교회를 세워야 부흥할까, 어떤 앰프를 써야 설교가 잘 전달될까, 그리고 교회 건축은 어떻게 추진할까, 이런 것들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진정한 주의 종은 성전 안에 갇혀 있는 자가 아니다. 주님처럼 성전 밖으로 나아가 성도들의 삶 속으로 성육신 하는 자이다. 교회 건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교회 건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다만 주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살아나도록 주의 종이 그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주님, 그리스도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낮고 천한 인간 세상에 성육신 하셨다. 영광된 보좌를 버리고, 하늘의 빛나는 보좌를 버리고 왜 죄 많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고초를 겪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까. 그저 하늘 보좌에 앉아 하늘영광 바라보며 계시면 될 터인데 왜 눈물 많고,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그가 친히 고통을 겪으셨을까?
  
주님께서 하늘보좌에 앉아 그저 고난 당하는 우리를 내려보고만 계셨다면, 그 분은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친히 우리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셨으며, 우리 사람과 똑같은 고난과 고통을 겪으신 분이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었다.
  
김철원 목사는 그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7,80년 대 신학교 시절, 좀 더 좋은 세상을 꿈꾸다가 2년 여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신학교 졸업 후에는 봉천동 달동네에서 희망교회를 목회하면서 도시 변두리로 내몰린 어린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희망을 주고자 했다. 그는 언제나 성도들의 삶 속으로 목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허공을 맴도는 공허한 설교가 되고, 성도들의 그 애절하고 힘겨운 노동의 현장 속에 서 보지 않으면, 목사의 기도는 허무맹랑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히브리서 13장 12절 이하에, "우리 주님 예수는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교회 안에 계신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계시다. 교회 안에만 계신 주님은 욕심 많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주님이다. 주님은 기독교인들의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주님은 성문 밖에 나아가 고난 받는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그 자신이 친히 고난 받으시는 주님이시다.
  
성경 어디에도 주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기록은 있어도 성전 안으로 들어 가 성전에 머무르셨다는 기록은 없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 적은 있지만, 예수님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성전이 아니라 산과 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선포하셨다. 제자들을 모으신 곳도 성전이 아니라 갈릴리 바닷가였고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기적을 행하신 곳도 성전이 아니라 당신이 백성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고난을 받으신 곳도 성전이 아니라 골고다 산이었으며, 부활하시어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신 곳도 성전이 아니라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다.  

성전 안에 갇힌 목사, 성문 밖에 계신 예수님
  
우리 주님 그리스도는 성전 안에 갇혀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전의 건물을 높이고 넓히는데 관심을 갖은 분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런 성전을 보면 허물어 버리리라고 화를 내셨다. 우리 주님은 성문 밖,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힘겹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영문 밖에서 머물면서 그들의 恨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보여 주셨다.
  
목사는 성전에 머물면서 성전을 키우는 것이 목사의 일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이 성문을 높이 쌓고 교회 건물을 더 올리고, 교회 안에서의 축복과 영광을 설교하며, 교회 안에서의 구원을 말하지만, 참된 목회자는 성문 밖에서 구원을 말하며, 성문 밖에서 하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성전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자이다.
  
주님이 성전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다. 성전을 통하여 교우들이 모이고, 성전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고백한다. 그러나 성전 안에서 고백한 하느님의 말씀을 성문 밖에서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의 신앙의 중심은 성전이 아니라 성전 밖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의 기적이 아니라 성전 밖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70, 80년대, 수원 역 근처에서 노점상들과 함께 친히 과일장사를 하며 그들을 위한 목회를 하셨던 어느 목사님, 아현동에서 창녀들을 위해 창녀목회를 하셨던 김명희 목사님, 청량리 굴레방 다리에서 거렁뱅이, 행려 병자를 위해 목회 하는 밥퍼 목사님, 인천에서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을 위해 목회 하시는 김광옥 목사님. 농부교인들처럼 친히 농부로 뿌리를 내려 평생을 목회 하시는 정주 목회자님들.
  
이제 서울의 택시운전사가 된 김철원 목사는 성문 밖에서 미싱을 돌리는 김집사님, 물장수 박집사님, 전기기술자 변집사님, 식당에서 일하는 송집사님, 홍집사님, 귀농한 채집사님 등 우리 교인들을 교회 밖에서 만나 마음껏 주님의 말씀을 펼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택시에 타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삶의 이야기도 만날 것이며, 그들의 소망과 꿈도 만날 것이다. 김철원 목사님은 이제야 비로소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총을 이 거리에서, 택시 안에서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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