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은 슬픈 영화다. '진주만'만큼 슬픈 영화를 나는 본 적 없다. 진심이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 밴 애플랙과 조시 하트넷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이들의 꿈은 컴뱃 파일럿(combat pilot)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적의 머리 위에 고성능 폭발물을 투하하는 것. 이것이 그 어린 아이들의 꿈이었고, 실제로 조시 하트넷은 오직 그 꿈을 이루는 것에 그의 삶을 헌납했다. 밴 애플랙의 삶 역시 그가 가진 정신의 역량이나 그를 둘러싼 세계의 흐름을 보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살인을 꿈꾸며 일생을 살아간 자들. 슬픈 일이다.

하긴, 그들에게는 나름의 대의가 있긴 했다. 사람으로서, 또는 국민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 대의(大義). 이것이 애플랙과 하트넷을 영웅으로 만든다. 국가는 훈장도 준다. 사실 이는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일 뿐인데, 그들은 이 간단한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 또한 슬프다.

설상가상.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 한국의 아이든, 미국의 아이든 많이도 봤고, 앞으로도 볼 것이다. 보는 아이들마다 두두두두 총을 쏘는 시늉을 할 것이며, 전투기 조종사를 꿈꿀 것이다. 아이들에게 간디나, 테레사나, 달라이 라마를 배울 시간은, 아니 마음은 없다. 재미없기도 하거니와, 그에 앞서 아이들은 '호국정신'을 배워야만 한다.

한번 상상해본다. 혹, 박정희나 전두환의 유년도 이렇지 않았을까.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배워야할 시기에 '애국애족'을 주입 당한 것은 아닐까. 혹, 비슷한 종류의 영화에 감동했던 순간은 없었을까. 상상이지만, 역사는 간혹 이런 사소한 '덜컥거림'에서 비롯된다. 히틀러가 다른 유년을 겪었다면 세계사가 달라졌을 지도 모르듯이, 1억 4천만 달러를 들여 '슬픈' 영화를 만든 탓에 훗날 1억 4천만이 죽을 지도 모른다. 과대망상이길 바라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슬픈 영화 '진주만'의 진정한 엔딩 크레딧이다. 정말 통곡할만한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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