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노동자'란 신분을 가진 이주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말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왜냐면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산업기술연수생'이란 신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로서의 신분이 아니라 기술을 배우러 온 연수생의 신분인 것이다.

1998년 산업연수생제도가 땜질 처방으로 2년 연수 기간이 끝나면 사주의 허락을 받아 소정의 절차를 걸쳐 1년의 취업비자를 주는 연수취업제도 국회를 겨우 통과했지만 도리어 족쇄 역할을 하게 만들었고, 처우나 환경 등 이에 따라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 노동자의 경우 연수취업비자를 받은 뒤 근무하던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자 올 데 갈 데가 없어지고 말았다. 사후관리업체나, 중기협, 노동부, 법무부 모두 소관업무가 아니란 이유로 발뺌만 할 뿐 도리어 불법체류자로 남고 말았다.

어쨌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애당초 포기한 채 그들은 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이 연수생이기 때문에 기술을 배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단지 연수란 이름으로 주당 60-70시간의 노동을 월 36만원 정도의 기본급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40여 국가에서 온 7만여 명의 연수생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법적으로 신분이 분명한 반면 나머지 22만 162명(2001년 7월 현재)으로 법무부가 밝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들이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가 작년 3월에 내놓은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에 따르면 이들은 사주에 의한 신분증 압류 및 인신구금, 폭행 등 기본적인 인권침해는 물론 강제적립금 제도와 입국과정에서 거액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송출비리, 또 국내에 들어와서 겪게 되는 사후관리업체로부터의 횡포, 산업재해 등 제도적인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제도적인 인권 침해 사례들은 국내의 이권 관계자들과 마찰 속에 보완 속도가 매우 더딘 실정이다. 특히 송출비리 문제는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이다. 이것은 현재의 산업연수생제도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기협) 연수협력단의 주관으로 운영되는 데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현재 중기협은 아시아 14개국의 46개 현지 송출기관에 의해 연수생이 모집되어 한국에 보내진다. 이들은 중기협에 연수생을 신청한 업체로 배정되고 동시에 중기협에서 허가한 송출기관의 한국사무소에 해당하는 사후관리업체로 관리 업무가 이관되도록 돼 있다.

이들 송출기관들은 중기협이 정한 비용(각 국가마다 다름)을 훨씬 웃도는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연수생들은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기본금 36만원 정도로 책정된 임금계약을 위반하면서 불법취업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과다한 송출비용이 이주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 폭행과 임금체불, 조기출국 조처 혹은 강제추방의 협박 등 숱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가능한 한 장기체류를 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 이들이 사후관리업체가 되어 국내에 들어온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인권 침해 사례 또한 적지 않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9년 10월 5일 경북 구미공단 내에 소재한 어느 섬유회사에서 폭행사건이 일어났다. 추석 연휴기간 동안 회사측에서는 중국인 연수생 17명(모두 여성)에게 식사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고, 연수생들이 이에 항의표시로 연휴가 끝난 뒤 출근을 하지 않자 회사측에서는 위로금으로 5만원을 지급했다. 회사측으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은 사후관리업체 M산업의 대표는 현장으로 내려와 중국인 연수생들에게 위로금으로 받은 5만원은 임금에서 공제할 것이며, 연수생 중 2명을 당장 출국시킬 것이고, 항공료 역시 본인 임금에서 공제하겠다며 고함을 치고 협박했다. 이날 야간근무가 시작되기 전 동료에게 열쇠를 건네주러 작업장에 들어온 연수생 1명을 왜 들어 왔느냐며 머리를 철문에 밀치고 주먹으로 귀와 머리를 폭행했다. 폭행을 당한 연수생은 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상담을 받은 상담소에서 강한 문제를 제기하자 M산업 대표가 내려와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폭행을 당한 연수생에게 치료비 등을 지불하였다. 상담소는 중기협에 이 회사의 사후관리업체 선정권 취소를 요구하였으나 가벼운 경고조치로 끝났다."

한국 사회의 왜곡된 의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열악한 노동환경을 거론하면, "돈 벌러 왔으니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임금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면 "그래도 본국에서 받는 임금보다 훨씬 많은 것 아니냐"고 차별대우를 당연시 해버린다. 심지어 이주노동자를 '열등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경우까지 작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자 곧 불법체류자들에게 있어선 이보다 훨씬 가혹한 노동환경이 형성돼 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일어난 어느 여성 노동자의 피해사례는 그 환경의 열악함을 대변해 주기에 충분하다.

이 여성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약점 곧 불법체류자라는 점을 악용 계속해서 성희롱에다 성 관계를 요구하는 한국인 남자 직원에 대해 자신은 이미 결혼을 한 점을 들어 거부해 왔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지자 이 사실을 회사에 알리게 되고 이 남자 직원이 쫓겨나게 됐다. 그러자 그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 여성을 고발, 연행까지 되어 보호수감 돼 있다. 신분의 약점을 이용해 치욕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법원에 계류돼 있다.

불법체류가 잘못인 줄 알지만 남의 나라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든 생활이라는 게 이들의 호소다. 그런 고통으로 병을 얻어 죽어가고 있는 이들 또한 자주 발생한다. 지난 7월 26일 선풍기 질식사로 사망한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구엔 만 칸(32) 씨도 그런 경우이다.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던 칸 씨는 회사로부터 장례비는 물론 위로비 한 푼 못 받은 채 가로가 되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이런 제도적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국내 인권단체들의 활동 또한 지속돼 오고 있다. 이들 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외노협은 벌써 6년째 제도개선 운동을 벌이고 있다. 작년 7월에는 대통령 지시로 정부와 여당의 합의안까지 나와서 2002년부터 실시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의원입법 과정에서 이 안은 중기협 관계자들과 이들의 로비를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보수 의원들의 반대로 입법에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8월 19일에도 외노협은 불법체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성명서 한 장을 내놓았다. 이 성명서는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제도의 개선 없이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와 탄압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정부와 여당에게 이주노동자 고용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을 즉각 제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로만 들리고 있는 현실이다.

국내 외국인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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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055-277-8779
경기북부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법률구조 센타  031-878-4090(kaneohe@chollian.net)
경산 외국인노동자교회 053-815-7842 (bokmin@chollian.net)
광주 외국인노동자센타 062-971-0078 (들꽃나라@chollian.net)
구미 카톨릭 근로자센타 054-52-2314 (kc2314@chollian.net)
대구 근로자 회관 053-253-1313
부산 카톨릭 노동상담소 051-809-8521 (katol@chollian.net)
대구 외국인노동자 상담소 053-256-0696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032-654-0664 (bmwh@chollian.net)
서울 외국인노동자 선교센타 02-3672-9472 (smcw@chollian.net)
시화일꾼의 집 031-497-7151 (snkg13@chollian.net)
안산 외국인노동자 선교센타 031-492-0569 (mworker@chollian.net)
안산 외국인노동자 센타 031-492-8785 (shimter@chollian.net)
안양 근로자회관 031-44-2876
양산 외국인노동자의 집 055-388-0988
엠마우스의 집 031-257-8501
안산 외국인노동자 사목센타 갈릴리아 031-494-8483 (galilea@chollian.net)
외국인노동자 샬롬의 집 031-594-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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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여성연합회 외국인여성노동자 상담소 02-708-4181~3 (kcwu8@chollian.net)
광주 외국인 근로자 선교회 062-951-7993 (KAFW@chollian.net)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부산) 051-802-3438 (noja@chollian.net)
안양 전진상 복지관 이주노동자의 집 031-443-2876 (aycc@chollian.net)
여성교회 여성이주노동자 센타 02-2266-1850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02-795-5504 (a0011@chollian.net)
대전 외국인노동자와 함께하는 모임 042-623-2387
명동 카톨릭 외국인노동상담소 02-779-2049
인천 카톨릭 외국인노동상담소 032-765-1094
한국 여성노동자 단체 협의회 02-869-1347
부산 외국인 근로자 선교회 051-522-0497
희년선교회 02) 858-7829 (jubileekorea@jubilee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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