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한 사람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 마더 테레사



큰 것과 많은 것을 쫓아가는 세상

▲마더 테레사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크고 많은 것을 쫓아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큰 권력, 큰 명예, 큰 교회, 큰 땅, 큰 손, 많은 돈, 많은 사람을 거느리며 살기를 원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70% 이상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한다. 미래 사회를 책임질 젊은이들의 꿈이 돈 많이 버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온통 큰 것과 많은 것에 노예가 된 듯하다. 큰 건물을 선호하고, 넓고 큰 집을 좋아하며, 많은 돈과 많은 땅을 쫓아 살아가는 것을 보면, 진정 우리 사회는 물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우리 시대에 성공한 사람의 상은 아마도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을 거닐며 큰 건물에서 사는 재벌’일 것이다. 자신들도 성공하여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을 거닐며 큰 건물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이 성공하려면 손과 발로 성실하게 일하고 땀흘려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법과 양심을 무시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큰 것(大神)을 숭배하는 종교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사람을 거닐며 큰 건물에서 사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삶의 가치와 종교는 무엇인가.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랑과 평화, 정의와 나눔이라는 삶의 가치는 무의미하다.
  
이미 기독교를 포함하여 이 땅의 종교 역시 큰 것에 노예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신도들에게 큰 것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에서 흔히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땅을 더 넓히고 집을 큰집으로 옮기고, 높은 자리를 얻게 되고, 자식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사업이 번창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큰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교회요, 능력이 많은 교회로 인정받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불교 역시 대웅전(大雄殿)의 크기로 그 사찰의 불심을 가름한다. 그래서 대웅전이 크고 화려한 절일수록 신도들의 수가 많다. 얼마 전에 해인사에 60억 짜리 ‘청동대불상’을 세우려 했다가 실상사 수경 스님이 이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니까 해인사 스님들이 대거 몰려가 폭력을 휘둘러 사회의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에 서로 참회의 기도를 함으로써 일단락 되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교회는 큰 건물을 세워 교세를 높이려 하고, 불교는 큰 불상을 세워 불력을 키우려 한다. 종교는 이미 그 본연의 소명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종교는 어느덧 물신의 종교가 되었으며, 이미 종교가 아닌 것이다.  


대중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교회

큰 것(大神)을 숭배하는 한국 종교는 참된 진리를 쫓고 참 신앙을 찾기보다는 많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 대중을 모으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대중만이 큰 교회를 세우고, 대중만이 큰 불상을 세우며, 대중만이 교세를 확장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한 종교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호감을 얻고, 대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神)을 너무나도 쉽게 왜곡시키고, 그들의 메시지도 대중의 구미에 맞게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은 참되지 않다. 기독교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대중의 우매함을 폭로했지만, 개인은 참된 선을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집단적 사회 곧 대중은 선동적이며 뻔뻔하며 진리를 쉽게 왜곡해도 묵인이 되는 이상야릇한 집단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철저하게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한 개인,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사람, 고독한 한 노인, 고통받는 한 학생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막대한 자금과 거대한 프로그램으로 오직 대중을 충동하고 대중을 선동하여 대중을 위한 목회를 할 뿐이다.
  
강남의 대형교회의 신도들은 대중교회에 익숙하여 쉽게 자기 개인을 묻힐 수 있고 철저하게 자기 개인을 숨길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간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자기는 사회에서 타협하고 불법을 서슴없이 자행한 후에 교회에 와서는 대중과 더불어 손쉽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회에는 철저하게 개인은 없다. 오히려 개인이 있는 것이 불편하고 대중목회에 걸림돌만 될 뿐이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대중을 위해 한 개인의 눈물과 배고픔과 서러움을 외면하는 한국 교회를 향해 마더 테라사 수녀는 자신은 단 한 사람, 한 개인을 위해 주의 일을 했노라고 말하고 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결단코 대중의 구원을 위해 일하지 않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많은 칭송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결단코 대중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 한 사람, 한 개인의 구원을 위해 헌신했을 뿐이다.
  
목회자가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라 단 한 사람뿐이다. 단 한 사람만을 껴안아야 진실되게 안을 수 있다. 대중을 위해 설교하고, 대중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대중을 위해 목회하는 자는 어쩌면 위선자요, 사업을 위한 목회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안을 수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다. 그래야 진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 어린양을 위해 오신 예수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99마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을 위해 오셨을 뿐이다. 주님께서 만약에 99마리 대중의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그들을 위해 일하셨다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헌신과 주님의 십자가는 하늘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님은 앉은뱅이, 눈먼 자, 문둥병 자를 고치실 때도 한 사람, 한 사람씩 고치셨다. 주님은 단 한 사람을 붙잡으셨고, 그 사람을 진실되게 사랑하셨으며,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주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양을 버리고 99마리 대중에게로 가셨다면, 나머지 99마리도 잃으셨을 것이다. 잃어버린 단 한 마리 어린양을 찾아 나섰고 그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주님은 우리 모두의 주님이 되셨던 것이다.

마더 테레사 역시 가난하고 버린 받은 한 사람을 끌어안지 않았다면, 단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4만 2천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바다에 한 방울의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학문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만남도,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난도, 우리의 슬픔도, 우리의 삶은 다만 한 방울의 물을 붓듯 진실되어야 하리라. 우리가 한 방울의 물을 붓듯 정성스럽고 진실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공허하고 빈겁데기만 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단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많은 남자, 많은 여자를 거느린 사람에게서 우리는 진실된 사랑을 볼 수가 없다. 많은 돈, 많은 재산, 높은 명예를 누리며 살아가는 정치인들에게 우리는 진실된 삶을 볼 수가 없다. 그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재산과 명예를 얻는다해도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인 아내, 단 한 사람인 남편, 단 한 사람인 친구를 진실되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도 자기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을 품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랑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마더 테라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분이신 주님에게만

우리가 믿는 주님은 단 한 분이다. 단 한 분이신 주님에게 우리는 모든 것을 드릴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분이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수없이 많은 신들(大神)을 섬기고 있다. 우리가 한 분 주님을 섬기지 않고 우리의 신앙이 물신(物神), 욕신(慾神), 명신(名神) 등을 섬긴다면 그 사람은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 우리 교회가 한 분 주님을 섬기지 않고 대중을 섬긴다면, 대신(大神)을 섬긴다면, 그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번에 한 사람씩,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교회는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버림받는 한 사람, 고통 당하는 한 사람, 가난한 단 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교회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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