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 냉전의 종식과 21세기 탈냉전의 국제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패러다임이 제시돼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절정은 「문명의 충돌」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93년 여름 「포린 어페어즈」지에 기고한 같은 제목의 논문이었다. 이 논문은 기존의 정치경제적 관점에서의 국제정치사 서술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문명사적 관점에서 새롭게 국제질서의 변화를 다뤘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연장선상에서 저술된 이 책은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만이 세계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수단이다」는 문제의식에서 집필된 것이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문명의 개념은 야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문명이 아니라 언어 종교 등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로서 세계 여러 지역에 자리잡아 온 문명권들을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상 최초로 세계정치가 다극화, 다문명화 됐고 이 과정에서 서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아시아 문명의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이 확대됐다고 보고 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역사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드는 역사 속에는 수많은 문명들이 존재했고 수많은 문명들이 흥망을 거듭해왔다. 특히 이 문명들이 인간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은 재고해 봐야 할 점이다. 그리고 이런 고찰을 통해 세계를 보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미래상을 제시해준다. 지금, 그 미래상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사뮤엘 헌팅턴의 저작을 통해 알 수 있다. 헌팅턴은 전세계를 7개의 문명으로 나눈다. 서구 기독교 문명, 동방 정교 문명, 이슬람 문명, 인도의 힌두 문명, 일본 문명, 유교 문명, 아프리카 문명이다.  전쟁은 이런 문명들의 단층선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문명의 충돌이론의 핵심이다. 즉, 전쟁이라는 것이 단지 국익, 안보 같은 것 때문이 아닌 문명이라는 요소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명간의 전쟁에서 중요한 것으로, 위에서 문명을 나눌 때 봤듯이, 종교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명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문명으로 헌팅턴은 서구 기독교 문명을 들고 있고 서구를 중심으로 이론을 펼쳐나간다. 특히 서구와 이슬람의 대립을 중심으로 펼쳐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이슬람 문명을 피의 경계선을 가진 문명으로 설정한다.

특히, 이런 이슬람과 서구의 대립을 단지 이슬람 문명 하나만이 아닌 다대(對)일적인 모습으로 본다. 즉 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편향되게 본다. 이것은 앞서 말한 냉전의 사고 방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 냉전 기간 동안, 소련과 미국이라는 양극으로 세계를 분할한 것과 같은 것이다. 헌팅턴의 이론은 너무 서구 중심적이다. 또한 너무 현실주의적이다. 단지 문명이라는 것을 자신의 이론의 도구로서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구시대적 사고 방식에 빠진 헌팅턴은 이제 더 이상 나아갈 곳은 없다. 더 이상 서구 대 비서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헌팅턴의 이론에 대한 반론으로 "문명의 공존"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이자 헤센 평화 및 갈등연구소 소장인 하랄트 뮐러는 '문명의 공존'(이영희 옮김.푸른숲)을 통해 헌팅턴의 주장들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 환상인지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헌팅턴 주장의 요체는 앞으로의 세계질서에서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 국제질서를 파괴할 중요 변수라는 것이다. 중동의 이슬람과 동아시아의 유교를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장애물로 규정하고 있는 헌팅턴은 타 문명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명간의 분쟁과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인류 공존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뮐러는 비판한다.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헌팅턴의 단순 이론이 각광을 받는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적, 희생양을 찾는 욕구에 헌팅턴이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뮐러는 이 책에서 '문명의 충돌' 이론의 함정을 드러내고 문명간의 대화, 공존의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헌팅턴은 이슬람-유교 동맹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과 북한의 대 이슬람 무기판매를 언급했다. 그러나 헌팅턴은 서구, 특히 미국의 대 이슬람 국가 무기 판매량이 중국과 북한의 판매량의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오늘날 이란의 가장 중요한 민간 핵기술 파트너는 러시아인데 그렇다면 이는 정교-이슬람 동맹을 의미하는가. 헌팅턴은 보스니아분쟁에서 서구 국가들이 가톨릭인 크로아티아와 동맹을 맺었고, 정교국가인 그리스는 세르비아를 도왔으며 이슬람지역은 보스니아의 모슬렘에 명백한 지지를 보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뮐러는 헌팅턴의 '피비린내 나는 이슬람'이라는 편견 때문에 보스니아 전쟁의 역사적 진실까지 왜곡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뮐러는 결국 낯선 것에 대응하는 적절한 처방은 '폐쇄'가 아니라 '개방'이라고 역설한다.

서구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강자는 약자에게 다가갈 때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강자가 먼저 약자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뮐러는 "세계 정치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우리 대 너희'의 단순한 도식에 끼워 넣는 시도에 정면으로 반대한다"며 "문명의 충돌은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며, 따라서 인간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을 말한 것은 문명의 충돌로 인한 지구촌의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요, 문명의 충돌 같은 어마어마한 신종 전쟁을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 아닐까. 뮐러 또한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국민 대중의 심성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불가항력적 사건이 각인되어 미래의 역사가 어두움을 치달을 것을 염려하여 헌팅턴의 반대 이론으로 '문명의 공존'이라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세계 인류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열정적인 학자라 볼 수 있겠다.

필자의 칼럼 주제도 위 두 사람과 같이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관심이다. 위 두 분의 관심은 총체적 지구촌에 관한 문제이고 필자는 지구촌의 문제 중 종교인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그래서 필자의 주제는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기독교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이다. 이는 여러 종교가 함께 공존하는 다원문화사회에서 이제 기독교는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요, 다종교 사회 속에서도 기독교가 건재하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다.  

지난 주 5천명 이상의 인명을 졸지에 앗아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쟁을 눈앞에 두고 세계인들은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고한 인명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테러들의 만행을 누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랴. 인류의 평화를 위해선 인간을 담보로 한 테러행위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입장에서 테러를 뿌리뽑는다고 미국이 테러의 배후 인물로 꼽고 있는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를 숨겨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무참히 공격하는 것은 신중한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위시한 그 주변 국가들은 거의 이슬람 국가들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주변국인 이슬람 국가들은 미국(기독교 국가)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이슬람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 들여 중동지역 전체가 이슬람 문명으로 단합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만일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 종교로 단결하여 미국을 적대시하게 된다면 이는 정말로 헌팅턴이 예언한대로 문명간의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와의 충돌은 이슬람교가 들어간  전세계 각 나라 구석구석으로 확산되어 상상할 수 없는 충돌과 전쟁이 산발적으로 전세계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류는 상상할 수 없는 회오리에 말려들게 될 것이다.    

이를 염려해서 부시 대통령은 이슬람 사원을 방문하여 이슬람교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고 있지만 막상 미국의 무력공세로 아랍인들이 어려움을 당한다면, 이슬람교인들의 마음은 하나로 뭉쳐 미국을 적대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내에 있는 이슬람교도들도 테러집단을 도와 聖戰(성전)을 구실로 알라신을 공격하는 미국(기독교)을 적대시하고 미국과 싸우는 일에 협조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헌팅턴이 말한 대로 문명간의 대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명간의 충돌을 피하고 문명간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 필자는 오늘날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 '종교간의 대화'를 제의하는 바이다. 이는 바로 문명의 충돌을 염려한 헌팅턴의 마음이요, 인류의 평화공존을 바라 본 뮐러의 입장이다.  다종교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충돌을 피하고 공존을 위해서 우리의 종교적 독단을 버리고 계속 문명간의 대화(=종교간의 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우리가 계속하여 미시적 안목으로 나만을 위해, 우리 교회만을 위해, 우리 교파만을 위해, 우리 종파만을 위해 신앙한다면 아마 우리 대에 우리는 엄청난 문명의 충돌을 체험하고 말 것이다. 이미 문명의 충돌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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