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각으로 9월 14일 밤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 초석을 놓았다고 하는 성공회 예배당인 워싱턴 국가 대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에 모여서 국가 기도 예배(National Prayer Service)를 드렸다.

한편으로 보면 이는 이 어려운 순간에 미국 전체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기를 염원하고 다짐하며, 주께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기원하는 국가적인 규모의 예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사실 누가 어떤 순서를 맡고, 그 예배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려는지를 알기 전에는 필자의 마음에도 (이것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미국인들의 한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려나 하고 호기심과 일종의 부러움에 찬 마음으로 미국 방송의 생방송을 지켜 보기 시작했다.

부쉬 대통령이 "추도의 날"(Day of Remembrance)을 선포하고, 수많은 이들을 이 예배당에로 초청하여 국가 기도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고, 속속 도착하는 미국의 요인들,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내외, 포드 전 대통령 내외, 부쉬(George Bush) 전 대통령 내외,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와 딸 등등이 도착하고 거의 마지막에 부쉬 대통령(George W. Bush) 내외가 예배에 참석하려 오는 모습, 그리고 이 예배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가 설교를 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은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평소에는 새로운 이교주의적(new paganistic)인 모습을 드러내던 미국이 이런 비상시에는 기독교 정신을 다시 살려 내는 것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소위 예배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굳혀 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예배를 인도하러 같이 들어선 이들이 성공회 감독과 성직자들, 천주교의 추기경, 연합 감리 교회의 목사, 유대교의 랍비, 이슬람교의 성직자 등등이었다는 것에서만 온 것이 아니다. 찬송을 할 때는 그래도 전통적인 찬송이 많이 사용되었지마, 미국 자체를 높이는 듯한 곡도(America the Beautiful) 예배 중에 포함되었고, 상당히 이것을 미국적인 의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또 참석자들의 태도와 모습에서도 그런 생각이 배어 나왔다.

대통령 경호원들이 기도 시간에도 눈을 뜨고 주위를 지켜 보아야 한다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만 했다(지난 화요일 10시간 동안 에어포스 원을 타고 있어야 했던 미 대통령의 안전에 대한 고려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이들은 그저 의식으로 이 일에 참여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앞부분에 있던 역사 속의 대통령들과 그들 주변의 이들만 보아도 말이다.

이 소위 예배식을 지켜 보면서 우리 마음 속을 떠도는 궁극적 질문은 과연 이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누구신가 하는 것이었다. 모든 예배 순서 진행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용어 사용에 있어서 매우 신중했다. 이슬람교 성직자는 아마 코란의 한 부분을 읽고, 그에 근거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God) 또 "주"(Lord)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상당히 많은 이들이 이 전례를 따랐다. 산상수훈의 8복을 읽었던 천주교 추기경도 아마 "주"라고 했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주의 복음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언급한 이는 연합 감리교회의 목사와 빌리 그래함 뿐이었다. 연합 감리 교회의 목사는 한편으로는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자고 하면서 기도를 시작하여 여기 모인 이들이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듯했으나, 여러 신앙의 대상을 대표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이상스러운 기도를 드린 듯했다.

빌리 그래함은 이 상황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노력을 했고, 십자가가 우리의 죄를 없앴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임을 말하기도 하고, 그런 신앙에로 초청도 했으나, 그는 자신이 말하듯이 이미 나이 먹어 힘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도 강하게 주었다.

그의 특성적인 사자후는 연약해졌고, 결국 이 십자가에로의 초청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 주요한 이유는 이런 복합적인 예배식에서 행한 설교였다는 그 정황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 이상스러운 상황에서 떼어낸 그의 설교는 상당히 미국적이었지만, 그리고 정치적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복음 증거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그가 미국은 영적인 갱신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이 소위 예배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가장 멋있는 말은 거의 마지막 순서에 죠지 부쉬 대통령 자신이 행한 연설이었다는 것도(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평가를 내리도록 할 것이다) 이 예배식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연 누가 예배를 받으셨는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 알라?, 유대교의 여호와? 이 셋이 다 구약에 근거하고 있으니, 구약의 하나님? 그들의 예배식의 첫 순서로 불렀던 "우리 조상의 하나님"(The God of Our Fathers)? 물론 각자가 생각이 달랐을런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도회와 예배식? 요나를 다시스로 인도해 가던 선상의 선원들과 승객들의 기도회는 그런 것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의 기도회를 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사회를 맏았던 성공회의 여성 감독이 시사하듯이, 여러 신앙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집"(house of prayer)에 함께 모여 한 하나님, 그들이 각기 다르게 부르는 한 하나님께 예배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종교 다원주의적 하나님은 이런 예배식의 상황 가운데 있는지 모른다.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이라고 하실까? 그들이 언급했던 베드로와 바울은 무엇이라고 했을까? 예배식이 마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오늘 아침에 그 예배에 대해서 참으로 엄숙한 모든 신앙의 예배와 기도라고 보도하는 것 앞에서 오히려 나의 마음은 어두워졌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예배를 받으신 것일까? 아니면 그의 거룩한 이름이 모독받으신 것일까?

이 예배식은 미국이 기독교 정신에로 돌아오고, 영적인 부흥에로 돌아오는 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이교주의로 향하고 있다고 하는 또 하나의 징표가 아닐까? 이 예배를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을 보여 주지 않을까? 전쟁을 앞두고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보려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해 보려는 또 하나의 시도는 아닐까? 우리의 마음은 우울해진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예배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예배가 의식으로만 흐른 것의 전형적인 예 앞에서 우리는 참된 예배의 정신을 천명하고, 예배의 대상을 분명히 하고, 우리가 예배하는 이를 분명히 전하면서 "함께 하나님을 높이세, 하나님께 경배하세"라고 권면해야 할 것이다.

배경 사상 이해를 위한 홈페이지 소개
http://my.netian.com/~wminb
http://seunggoo.com.ne.kr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