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예배와 삶은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다른 '소위 종교들'과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등한 종교적 표현일수록 종교 의식은 화려하고 복잡하며, 또한 예배의식 가운데서는 번문욕례적 용어가 많이 사용되지만, 의식이나 예배가 구체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런데 때때로 기독 교회가 그런 저등한 종교성에 사로잡혀 온 역사적 경험이 많이 있어 왔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은 종교 의식이 화려해 가는 것, 그리고 종교 의식을 행하는 장소가 화려해져 가고 장엄해져 가는 것과 예배와 삶의 분리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같이 가는 경우가 많았음을 드러내 준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에서의 예배와 삶은 어떤가?"를 깊이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그 대답을 해야 하는 이들은 우리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때때로 일상적인 삶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바를 예배에서 찾으려 하기도 한다. 모든 종교들에서 이런 시도는 무수했고, 심지어 기독교 교회 안에서도 이런 시도는 끊임 없이 있어 왔다. 우리들의 세속적인 삶의 모습이 현저 할 수록 우리는 이 세속과는 다른 거룩한 장소를 갈구하고, 거룩한 시간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의 예배와 삶은 그렇게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을 읽는 이들은 누구나 잘 알게 된다.

예배는 우리의 삶을 대신하거나 대치하는 것이 아니며, 삶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 전체를 주님의 창조와 구속의 은혜로 살고 있음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또 그렇게 살아 가겠다는 더 강한 헌신의 다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우리의 삶 전체의 총화요, 정수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적 기독교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반드시 예배해야 하고, 예배한 자답게 살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주께 예배를 드리고 온 주일 저녁에 우리는 주님께 무엇인가 잘 해 드렸다는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공로 의식에 사로 잡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예배를 드린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주께 드려야 하는 구속받은 우리의 정체성에 충실할 것을 다시 다짐해야 할 것이다. 주일에 예배를 드린 사람답게 한 주간 동안도 매일매일과 순간순간을 주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자들로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자들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런 자들로서 생각하고, 그런 자들로서 느끼고, 결단하고 성령님에 의존해서 노력해 가면서 말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은혜이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은혜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은혜로 주어진 것을 자랑 할 수 없을 것이고, 오직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드신 주님의 은혜일 뿐일 것이다.

만일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이 컬럼을 읽는 이들만이라도, 아니 나 자신이라도 진정 이렇게 산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만한 세상, 맛 있는 세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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