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사건 이후 보복공격을 소리 높여 외쳤던 미국이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은 현실 앞에서 고뇌하고 있다. 애초에 예상했던 대대적인 공습보다는,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것만큼 동맹국들의 지원이 강력하지 않고 미국 내부적으로도 넘어야 할 장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은 전쟁을 시작한다해도 그 과정과 끝맺음에 있어서 자칫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21일 부시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전쟁 불사론>을 천명했으나 일반적인 전망과는 달리 즉각적인 행동이 없었고 내부적으로는 전쟁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견해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와중에, 과연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가 선언한 대로 장기적이고 전례 없는 전쟁 계획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에서야 그 대략적인 윤곽을 만들어 내느라고 쩔쩔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식의 반응조차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전쟁이 유야무야 되면서 새로운 방식의 평화가 이루어지면 좋겠으나, 미국이 이런 상황에 몰려서 전쟁을 그대로 포기할 듯 싶지는 않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 없이 오스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격 목표로 삼아 전쟁 선포를 했을 때부터 일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의 목소리도 제법 커지고 있다.

유럽, 전쟁 수행의 정당성 위해 확실한 증거 요구

지난 9월말에는 브뤼셀에서 반 테러 전쟁 지원 문제와 관련한 나토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나토가 직접, 그리고 당장에 미국의 전쟁 수행 과정에 참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다소 기존의 입장에서 후퇴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여기에는 미국이 나토 전체를 충분히 통솔해가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요인도 있겠지만, 오스마 빈 라덴의 관련 증거를 확실히 내놓으라는 유럽국가들의 다그침에 대해서 미국이 똑 부러지게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기인하는 일이었다.

나토의 유럽 국가들은 오스마 빈 라덴 관련 증거가 불투명하다면서 이런 식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목표로 삼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으며, 유럽의 반전 운동과 이슬람 국가들의 결속을 가져오는 역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 테러 연합 전선에 유럽 국가들을 묶어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나토 소속 국가들의 반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미국은 나토 지원이 안정성 있게 확보되지 못할 경우, 영국과 단 두 나라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여럿이 모여 반 테러 연합전선의 모양새는 만들 수 있을 지 모르나 내부 통솔의 복잡성으로 인해 전쟁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반전 평화 운동도 사건 발생 이후 서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뉴욕과 보스턴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 직후의 격노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로서는 이러한 목소리가 용납되기 어려웠지만 사건의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반전 평화 운동의 영향력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앞서 언급했던 브뤼셀에서 반 테러 연합 결성을 위한 나토 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에, 나토의 남부 사령부가 있는 이태리 네이플에서는 대대적인 반전 평화 운동이 벌어졌다.

이 밖에도 유엔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자칫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을 다량으로 발생시켜 인도주의적 참극을 빚어낼 수 있다고 언급하고 나섰다. 세계 최강의 미국과, 가난하고 헐벗은 아프가니스탄 게다가 미국의 공격을 피해 피난 가는 난민들의 모습이 언론 매체에 계속 방영되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심리적인 정당성을 잃어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즉, 변변한 무기조차 갖고 있지 못한 나라를 쳐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공격은 다만 군사적인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표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정책의 준비가 있지 않고서는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 되고 있다. 9월 27일자 <뉴욕 타임>지는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공격 계획이 군사적 목표를 넘어서서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국가건설의 구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부시가 미국의 지난 정책이 다른 나라의 정치문제까지 관여하는 바람에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을 비판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자기 자신이 그런 정책적 오류와 문제를 계승하려는 것은 반성적으로 짚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문제제기를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섣불리 이 기회에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옹립하려는 구상까지 관철하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파키스탄 내부에서 탈레반 지지세력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은 결전태세에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이 전쟁을 미국의 의도대로 끝맺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고 하겠다.  

미 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사건 발생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차분해지면서 전쟁 결정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사건 초기 미국의 분위기와 언론의 논조를 분석한 영국 <가디안>지 워싱턴 특파원 매튜 엥겔은 “미국 사회, 전쟁지지 분위기가 휩쓸면서 이론(異論)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로 치닫다(No room for Dissent as Spirit of Flagwaving Sweeps the Nation)”라는 제목의 기사를 런던으로 타전했다. 그는 이 기사를 통해 전쟁에 대한 일사불란한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반역죄(treachery)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던 것이다.

캐나다의 유력지 <토론토 스타>지도 즉각 비판적인 논조를 밝혔다. 이 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미국을 전쟁 쪽으로 몰고 가고 있으며, 언론들도 이에 대해서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비판을 했던 것이다. 이 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전쟁”, “전쟁행위”, “십자군”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응방식의 선택을 전쟁으로 결론짓는 것에 대해 미국 언론들이 무비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신중론, 전쟁은 하되, 제대로 하자
미국 책임 자성론, 미국의 대외정책 자체를 반성적으로 시정해야

사건발생 1주일이 지나자 논의의 수준이 달라졌다. 물론 대세는 전쟁지지 쪽이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 <워싱턴 포스트>지 등 양대 신문은 테러 대응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다소간 신중한 논조를 매우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신중론의 논리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도 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전쟁을 일단 시작하면 예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니 좀더 준비된 대응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신중론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하자는 것이고, 전쟁수행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준비가 보다 철저해야 한다는 것에 그 초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미국 책임 자성론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가진 오만과 패권주의가 테러를 자초했다는 것에 그 주안점이 있다.  

신중론의 틀은 유럽의 문제제기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유럽은 미국의 보복 전쟁 수행의 정당성을 전폭 인정하고 지지하면서도, 대 테러 연합전선 결성과 전쟁 수행에 대해서 네 가지 조건을 내놓았던 것이다. 첫째, 미국의 독자적 행동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반드시 국제적 논의구조 속에서 전쟁수행의 틀을 짤 것. 둘째, 오사마 빈 라덴의 범행임을 입증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다. 셋째, 테러 조직 근거지에 대한 정확한 목표를 설정할 것과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막을 수 있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넷째, 유엔의 지지를 확보하라.  

이러한 조건은 미국의 전쟁 수행에 있어서 국제사회의 지지 협력을 획득하는 과정이 보다 치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뉴욕 타임>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9월 22일 사설에서, 외교적 기반을 보다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보복 전쟁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 군사행동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제기한 것이었다.  

한편, 양대 유력지와 버금가는 지를 비롯하여 <보스턴 글로브>를 비롯하여 진보적 매체들은 테러의 자초 책임이 미국 자신에게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하며, 테러 발생의 근본을 척결하는 노력, 즉 미국의 대외정책 노선 수정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했다. < L.A. 타임>지는 지난해인 2000년 4월 찰머스 존슨이 쓴 기고문 “미국인들 미국 대외 정책의 역풍에 직면”을  싣고는, 미국이 현재와 같은 제국적 행동방식을 유지하는 한, 이에 대한 세계적 반발로서의 역풍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스턴 글로브>지는 베트남 반전운동 세대를 비롯하여,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으로 전쟁을 선택한 부시 정권의 정책에 반기를 든 반전평화 운동이 성장 추세에 있다는 기사를 관심 깊게 실었으며,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 조나단 파워는 미국이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가지고 있는 오만을 수정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군사행동보다 언론의 위력이 보다 강함을 입증해나가야 할 것(their pens could become mightier than America' sword.)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대표적 칼럼니스트 윌리암 파프(William Pfaff)는 이번 사태의 대응은 경찰과 정보기관의 관할 사안이지 군사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렇게 될 경우, 이슬람 문명권의 혁명적 결속을 가져오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그 자신이 반전평화운동가이기도 한 하워드 진은 진보적 매체인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국가테러가 제3세계의 억압과 빈곤을 불러 온 역사적 원인에 주목해야 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올 전쟁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부를 새롭게 사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체제의 경제적 불균형을 개선해나가는 일에 미국의 지도적 역할이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미 언론의 보도의 대세는 전쟁지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자성론의 힘은 전쟁의 전개과정에서 차차 여론의 대세를 얻어갈 것임을 미국의 역사는 예견케 한다. 베트남 전쟁의 경험은 미국 사회 내에 반전평화운동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언론 비평가 노만 솔로몬의 베트남 전쟁 반대에 나섰던 미 상원의원 웨인 모스(Wayne Morse)에 대한 주목은 의미 있다.

웨인 모스는 통킹 만 사건으로 격노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베트남 전쟁 전면개입과 대통령의 전쟁지휘권을 대폭 강화시킨 1964년 8월의 상원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던 두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그의 반대는 여론의 포화 속에서 그를 정치적 고립으로 몰아갔고, 결국 그 다음 선거에서 그에게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1968년 2월, 미국의 베트남 전쟁개입 과오가 검토되기 시작한 상원의 대외정책 위원회의 현실은 그의 목소리가 역사의 새로운 대세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베트남 반대 정치가 웨인 모스의 역사적 교훈 직시해야

미국의 개전 선포, 이것은 현재 대세를 장악하는 바이지만 결국 미국의 패권체제가 쇠퇴해 가는 마지막 고비의 사건이 될 것을 예감케 한다. 그리고 새로운 미국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민중과의 전쟁으로 그쳤어도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이슬람 문명권 전체와의 대결을 각오해야 할 지 모르며, 지난 2차 대전 종식 이후 미국이 자초하여 씨를 뿌린 반미(反美)운동의 현실을 감당해야 뿐만이 아니라 지난 시기와 비교해서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의 부시정권은 이러한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여 자신의 진로를 바르게 선택하지 못하면, 지금 전쟁 지지를 표명하고 있는 바로 그 언론으로부터 향후 매우 신랄한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출발은,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선택하면서 정의로운 세계질서의 틀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일에 있을 것이다.  

김민웅 / 뉴저지 길벗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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