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8-9「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약2: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오늘날 개신교는 십자가 은혜의 절대성에 감사한 나머지 그 중요성의 강조가 도에 넘치는 극단적인 표현을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가 된 것을 입으로 시인만 해도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하며 믿음에 따른 행위는 있든지 없든지 간에 구원하고는 전혀 무관하다고 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제물이 된 이 행위는 인간은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역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속의 행위를 성취할 수가 있으며 바로 이 대속의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에서 대속의 사건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8절과 9절의 말씀은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불필요하다는 뜻의 말씀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믿음에 합당한 행위의 열매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개신교는 다수의 지도자가(특별히 칼빈주의를 신봉하는 지도자)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의 말씀을 가르칠 때 예수그리스도 대속의 행위와 믿음의 행위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가르침으로 이 두 가지 행위를 각각 분리하여 명확히 인식하게 하는 말씀교육의 부재로 인하여 예수그리스도 대속의 행위인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만 일방적으로 강조하므로 믿음의 행위가 예수그리스도 대속의 행위인 은혜 속에 묻혀 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나타내는데 이는 행위라는 순수 낱말 자체의 동일성만 생각한 나머지 각각 그 행위의 주체자가 다른 것을 타부(taboo)시한 결과로 빚어지는 현상이며 이에 의하여 하나같이 스스로 구원의 딜레마(dilemma)에 빠져 입으로만 주를 외치게 하는 믿음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현 개신교의 실정이다.

이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카톨릭은 믿음에 행위의 중요성이 절대적임을 주장하는 강조가 지나친 나머지 각자의 주관적인 선행이 대속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 성경적 믿음에 합당한 행위보다 도덕적 윤리를 앞세우는 인위적인 선행이 곧 믿음의 증거로 또한 열매로 인정하는 구원론에 깊이 빠진 중세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현대에도 믿음의 행위와 인위적인 선행이 제대로 올바르게 구분되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선행에 대한 교훈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카톨릭의 현실이다. 이러한 신교와 구교의 지나친 구원론은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구원론이 아닌 것이다. 믿음의 행위는 대속에 본질은 아니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것이다.

마3: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7:21「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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