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김성수 총장님과의 대화는 참으로 유익했다. 이 시대에 중요한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성공회대학을 이끌고 있는 김 총장은 소탈했고, 열려 있었으며 오늘의
역사가 요구하는 신앙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고뇌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신앙이 깊은 사람은 결코 자신의 삶을 연출하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꾸미려고 작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소탈하고 자연스러우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 자체로서 자신을 상대에게 알리는 일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회대학교에 들어서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두런두런 아무런 수식 없는 담백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가 있다. 김성수 총장이 바로 그이다. 기자가 성공회대학교를 찾아간 그 날도 그이는 누군가 얘기를 나누면서 거의 온몸을 기울여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를 믿기 어려울 만큼 아무런 선입견의 때가 없는, 격식이나 권위나 위엄 같은 온갖 인위적인 겉치레를 다 벗은 그이의 천진하다고나 할 태도에는 마주앉은 사람을 금방 무장해제 시켜 버리는 힘이 들어 있었다.

김성수 총장은 성공회를 대표하는 교구장 주교로 재임하던 지난 시기 가난한 이들의 인권과 권익, 이 나라 역사의 고비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87년, 6.10국민운동본부 대회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교단의 최고 책임자로 용단을 내림으로써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분수령을 이룬 역사적 기점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서울교구장 재임 때 도시 빈민들의 비인간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1986년 ‘상계동 나눔의 집’을 시작으로 도시빈민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를 대한성공회의 중심사회선교로 정착시켰다. 이 운동의 결실로 ‘삼양동 나눔의 집’ ‘봉천동 나눔의 집’ ‘성북 나눔의 집’ ‘송림동 나눔의 집’ ‘수원 나눔의 집’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으며 이는 한국 교회의 중심적 빈민선교운동이자 모범적인 지역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김성수 총장의 정신지체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남달라 일생을 그들과 생활하면서 장애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정신지체인들의 권익과 복지, 자립을 위한 사업을 실시하고 교육함으로써 장애인 권익에 기여하고 있다. 자신의 전재산인 경기도 강화군 온수리 소재의 토지(약 20억원의 가치)를 사회에 기증하여 이를 바탕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곳에 성인 정신지체인을 위한 자활 훈련시설인 ‘우리 마을’을 건립하여 새로운 사회복지운동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고갈됨이 없이 새 것이 길어 올려지고, 나무토막같이 딱딱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주변의 힘든 사정에 마음을 기울이고 함께 풀어주려는 따뜻한 존재의 그늘이라고나 할까.

<인터뷰>

일시 / 9월3일(월)
장소 / 성공회대학교 총장실
참석자 / 김성수 총장, <뉴스앤조이> 한종호. 김종희 기자, CBS 나이영 기자, <한겨레> 조연현 기자

 

 

▲대담에 참여한 사람. 우측부터 CBS나이영 기자, 한겨레신문 조연현 기자, 뉴스앤조이
한종호, 김종희 기자. 끝에 있는 분은 성공회대 홍보실장 박성순 신부
ⓒ뉴스앤조이 신철민

한종호(이하 한)  우리 사회에서 “아, 그 교회!” “그분”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갑자기 숙연해지고 양심이 뜨거워지는 그래서 무언가 나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하는 감동을 제대로 줄 수 있는 교회나 신앙인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 본다면, 개신교 교회의 전반적인 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맙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교회의 정체성과 신앙인의 자화상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의 양적 규모가 비록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미지가 굳게 서 있다면 종교적, 사회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지. ‘소수의 의인’일지라도 이들이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동안 쌓여 왔다면 개신교의 위상은 사뭇 달랐을 것이야. 오늘날과 같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위태한 시대에 교회가 줄 수 있는 것들은 매우 귀중한 종류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았겠어? 그런데 교회는 자신을 기꺼이 십자가에 던질 ‘소수의 의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대중들의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구미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쪽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른 ‘영업’을 하려고 드니 이게 되겠어, 안되지. 이러다 보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영적 양식을 제공하고, 사회적 진로에 대한 깊이 있는 발언을 하는 힘은 사라지고 마는 위기에 처하고 있는 거라구. 많은 신앙인들이 진정한 예수의 삶을 따르는 일보다는, 자신의 소망을 채우는 일에 보조자가 되는 예수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세상의 작은 자들과 함께 하는 예수는 교회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토요일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돌아볼 수 있지. 이 방송을 특별히 정치인들이 봤으면 좋겠어. 우리가 사는 사회에 그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고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지. 장애인이 잘 사는 나라가 정말 잘 사는 나라야.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돼야 살만한 세상이 되는 거지. 지금 우리 나라는 외형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됐는지 모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잘 사는 사람은 너무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너무 못 살고 있거든. 이럴 때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지. 결국 우리는 나사렛 예수께서 갈릴리 선교 현장에서 최우선으로 그분의 시선을 모았던 상대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아야 해. 그런 모습을 세상 속에서 신앙인들이 재연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양식을 만들어 나눌 수 있는 교회적 기초가 되고 회복되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해.  

김종희(이하 김) 요즘에는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이 학교가 더불어 살아가는 걸 가르치는 대학,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보다는 아홉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대학으로 실현됐으면 좋겠어."
ⓒ뉴스앤조이 신철민

요즘 기도는 ‘돈을 좀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많아. 베드로학교가 집을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 새로 만들어주려고 그래. 총장이나 주교라고 하는 사람이 맨날 돈 기도만 하고 있으니. 하나님도 안쓰러우셨는지 교육부에서 고맙게도 요청한 금액의 반을 주더라구. 또 우리 학교가 대한민국에서 꼭 있어야 할 대학, 교수님들이 더 연구하셔서 글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게 인격을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기도도 드리지. 재단이사장이 새천년관을 하나 지어줬는데 아직도 80억원을 갚지 못하고 있어. 근데 이자 달라는 얘기 한번 안 해. 그것만도 고맙지, 뭐. 빚도 갚지는 않은 채 얘기하는 게 미안하지만 베드로학교 지을 때 돈이 또 모자라면 빌려달라고 해야지. 어찌됐든 이 학교가 더불어 살아가는 걸 가르치는 대학,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보다는 아홉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대학으로 실현됐으면 좋겠어.

 얼마전 학생들이랑 영화를 보고 오셨다던데?

학생들이 농활을 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칭찬을 하더라구. 얼마나 기분이 좋아. 그래서 서울 가면 영화 한번 보러 가자 그랬지. 그래서 얼마 전 <엽기적인 그녀>를 봤어. 아, 그 여자 멋있대. 얼마 전 뮤지컬 본 것도 대학마다 동아리 있잖아. 걔네들 격려하려고 그랬어. 중요한 건 공부 외에 다른 취미생활 정말 잘하면 좋겠어. 그런 얘들이 그냥 이쁘고 좋아. 그런 애들 위해서 학교가 뭔가 해줘야지. 역 앞에서 청소도 같이 하고 그러면 그게 좋지. 다른 학생들도 나도 총장이랑 어디 가려면 빗자루 들고 쓸어야겠다 그런 생각 하게 되잖아. 공부벌레가 세상에 나가서 잘 되는 건 아니거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인간성을 배울 때 사회가 건강해지는 거 아니야? 대학이 정말 그렇게 됐음 좋겠어.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학생이 2천명 좀 넘으니까 가능한데 2만명, 3만명 되는 곳도 총장 마음먹기 달렸지. 나는 10명 데려간다 하면, 50명 100명 데려가면 되지. 극장 하나 전세 내서 다 같이 가서 보면 되잖아(곁에 있던 박성순 신부(홍보실장) 지난달 총장님 봉급이 적자 났습니다. 학교에서 판공비로 쓰라고 카드 줬는데 학교 돈 쓸 게 아니라면서요).

다른 교수나 직원들보다 봉급이 조금 더 많으니까 그런데 쓰라는 거 아냐. 그게 평등한 거지. 어떤 때는 월급이 다 달아나니까 집에서 혼도 나. 그러면 내가 마누라 야단쳐.

 강화도에 장애인 시설을 갖추느라 재산을 거의 쏟아 부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쎄 그런 것도 가족들한테 고맙지. 이런 거 한다 그럴 때 아들이 내 땅이라고 덤비면 못하잖아. 가족들이 다 동의했으니까 했지. 나 혼자는 못했지. 뭐든지 그래. 나 혼자서 한다고 되는 게 아냐. 설사 혼자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는 거지

 2년 전 성공회대 근처로 이사왔을 때 처음에 당황했던 게 빌라에 장애아들이 꽤 있더라구요. 가만히 보니까 성공회대 안에 성베드로학교가 있더군요. 제 아이가 다섯 살인데 장애아들에게 거리감 없이 친하게 지내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자기와 다른 아이와 거리감 없이 지내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어떤 면에서는 장애인학교가 동네에 있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것은 성공회대학교가 그런 기본적인 정신을 갖고 있고 대안학교 출신 아이들을 따로 뽑는다든지 양심수 자녀들을 따로 뽑는 것이 결국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먼저 배려하고자 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고요. 그것이 바로 예수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항상 주류에 편입하려고 하면서 자기도 망가지고 이웃도 해치게 되는 거 같은데요.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인의 자화상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성공회대학교가 의미 있는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바깥에서 볼 때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에게 너 이게 무슨 학교야 물으면 베드로학교라는 건 아는데, 가봤어 하면 열 놈 중에 한 세 놈만 가봤다고 하거든. 요즘엔 가 봐라 가 봐라 자주 얘기해. 대한민국에 약 200개 대학이 있지만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부속학교를 가지고 있는 곳은 우리 학교밖에 없지.

조연현(이하 조) 학교 들어오다 보니까 ‘열림/나눔/섬김’이라는 말이 있는데, 성공회대학교에 참 어울리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도, 열림/나눔/섬김의 정신이 부재해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건 아마 교수님들이랑 전임총장 이재정 신부가 만든 말 같아. 그런 어휘도 신영복 교수가 꽤 많이 만들어내지. 그런 좋은 글씨 써주고 돈을 받아야 되는데 돈을 안 받아. 그거 잘하면 돈 되는 건데 말이야(웃음). 왜 돈을 안 받지. 6~7년 동안 성공회대학교가 바짝 올라간 것 같아. 우리 대학을 가리켜 진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침묵을 지킬 때 성공회대 교수들이 바른 소리 하니까 진보로 보이는 거 아닐까. 성공회대 교수가 잘못된 거 잘못됐다 얘기하니까 진보라는 소리 듣는 거지, 다들 얘기하면 우리보고 진보라고 얘기하진 않지

나이영(이하 나) 주위 분들을 보면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이건 아니다 하는 분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분들에게 과감하게 말씀을 하시는 편인가요, 그저 이해하고 넘어가시나요.

그냥 말을 편하게 하는 편이지. 우리 교수들이 난 죽을 때까지 여기 있겠다, 목 잘리면 갈 데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얘기 못할 거야. 교수지만 옳지 못한 거 얘기할 때 그 사람이 더 돋보이고 그 사람이 있는 성공회대학교가 빛나는 거거든.

 신앙인과 교회가 이 시대에 무엇을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할까요.

 

 

 

 

▲어린아이 같은 미소처럼 사는 김성수 총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금 질문한 생각의 중심에는 교회가 우리 사회에 어떤 양식을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회가 오늘날 가슴 벅찬 희망의 나라를 보여주기보다는 현실에 시달린 개인적 심성에 대중요법적인 단기적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고 봐. 단지 개인적인 성취에만 주력하게 하면서 묵상이나 영적 감동을 신앙의 주제로 삼으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 아니야? ‘은혜’라는 말이 사회적 변화에 영향력을 깊이 미치는 기독교 신앙의 능력에 적용된다면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증언하라’ 하신 예수 선교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이다’의 기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누가복음이 증언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께서 회당에서 인용한 이사야 61장의 정신과 방향에 대한 지시가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못한 거지. 예수께서 자신의 선교 목적을 이토록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셨듯이 한국 교회도 이제는 자신을 고통의 한복판에 던져서 풀려나야 할 자를 풀려나게 하고, 눈감았던 자를 눈뜨게 해야 돼. 병든 자들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뜨거운 감격으로 사랑의 능력을 발휘해야지. 자신들은 끼리끼리 잘 모이면서, 이웃을 위해 나서야 하는 궂은 자리에는 가지 않는 이기적 신자들의 모형이 한국 사회의 비신자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깨우쳐야 한다구. 그것만이 아니야. 신앙인들은 ‘내 탓이오’ 하는 깊은 자기 반성과 이 시대의 고민을 품고 깊이 기도해야 해. 몸으로 사는 실천적인 기도 말이야. 성공회가 비록 수는 작지만 시대의 흐름과 풍조를 거슬러 올바른 것을 얘기하는데 나름으로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거든. 작은 목소리지만 분명한 신앙인의 입장을 뚜렷하게 세워 나가야지. 그런 뜻에서 1인 피켓 시위도 나타난 것 아닌가.

 사회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풍토가 건강해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총장님은 개인적으로 ‘내 탓이오’를 통해 자기 성찰을 놓치지 않으시는데, 이렇게 양 날개를 갖춘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런데, 때로는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봐. 좋은 것도 참고 기다리면 더 빛나 보이고 나쁜 것도 참고 견디면 나중에 회개하고 고칠 수 있는 거지. 아니면 맨날 싸움밖에 안 된다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연 희망이 있는가 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는데요.

 

 

 

 

▲이젠 일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세상이면
좋겠어. ⓒ뉴스앤조이 신철민

어느 시대고 희망이 없는 시대는 없는 거 같아. 그 희망을 어떻게 이루는가 하는 게 문제지.  성공회에서 이뤄진 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자니까 어쩌구 저쩌구 칭찬들을 하는데 사실은 내가 아니지. 그렇게 일궈온 우리 신부들이 훌륭한 거지. 사실 내가 대표자니까 그런 평가받는 거지,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 내가 지금 성공회대 온지 1년 1개월 됐지만 내가 어디 가든 상석에 앉아. 난 그게 큰 불만이야. 내가 뭘 했다고 단지 총장이다 교구장이다 그런 거 때문에 대접받는데, 이젠 일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세상이면 좋겠어. 우리 시대에 훌륭한 신부님이 없었으면, 목사님들이나 나라를 걱정하는 학생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왔겠어? 단지 그저 장(長)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깃발을 정확하게 들었다 놨다 하는 그것뿐이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 사람 가는 길에 잘못된 거 있으면 고쳐주길 바라고 그런 거뿐이야. 앞으로 시대는 정말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이 대접받았으면 좋겠어.

 낮은 곳에서 섬겨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상석에 앉아서 누리려고 하면서 신앙이 오염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의 파워 엘리트 중에 비리와 부패 고리에 연루되어 오염된 신앙의 사례가 나타나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십니까?

한국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 중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사회의 타락과 부패의 사슬에 관련되어 있는 현실 앞에서 당혹하게 돼. 상석에 앉아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이거든. 개신교인들이 정치,경제,문화,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하게 되면, 그 분야는 그만큼의 의로움과 그만큼의 정결함이 보완되어 나가야 하는데 종교적 이중성만 심화하는 현실이 팽만하니 참 안타까운 마음이야. 결국 손가락질 받는 지도급 인사와 손가락질 받는 개신교도들의 동일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지. 사실 한국 교회는 공동체적 관심을 기르기보다는 내면의 영성을 키우는데 주력해 왔거든.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에 크게 주력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해. 또한 한국 사회의 여러 도전에 대하여 교회 공동체가 나름의 집단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도 깊은 관련을 갖게 되는 것이지. 나사렛 예수께서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힌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된 거지.

 지도자 내지 신앙인의 표상으로 삼아도 모자라지 않을 분이 있다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

뭐, 김수환 추기경이겠지. 혼자 살아서 그런지 욕심도 없고 어려운 시기에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가 된 것도 그런 분이 뒤에서 든든히 서 있어주니까. 때때로 그분이 어려운 입장이지만 할 얘기는 하거든.

 가슴에 와 닿는 얘긴데, 우리 개신교는 그런 지도자가 없을까요.

 

 

 

 

▲욕심이 없으면 가능하지. 사실 나도 그런 욕심이
생기거든 ⓒ뉴스앤조이 신철민

욕심이 없으면 가능하지. 사실 나도 그런 욕심이 생기거든. 예를 들면 우리 대학이라고 돈이 왜 안 필요해. 어느 부자가 와서 내가 10억 낼 테니 내 아들 좀 넣어줘 하면 솔깃하지 않겠어. 하지만 넣어주면 안되지. 농담으로 그런 얘기하지 누구든지 1천억만 가져와라, 내가 사표 쓰고 딱 받아놓고 난 나오겠다, 학교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그런 유혹이 왜 없겠어? 하지만 그런 유혹을 뿌리쳐야지.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나 시국 문제와 관련해 사회 지도자들이 입장도 표명하고 그러는데 총장님 이름은 보이지 않는 것 같던데요.

그것도 내가 참여 안 한 것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것도 있는데, 전부 보면 정말 오래간만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사람들이 아니야. 전부 겪으신 분들이야. 그런 걸 할 적엔 누구누구 참여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다들 훌륭하니까 서명을 하는 거고. 난 그러지 못하거든.

 신영복 교수 같은 분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같은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보이지 않게 큰데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사상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신영복 교수님 책에 보면, 그 더운 여름 죄수들 7~8명이 몸도 움직일 수 없고 서로 짜증이 나는데 누군가 벌떡 일어나 옷을 벗어서 다른 사람에게 부채질을 하는 얘기가 나와. 그것만 생각해도 너무너무 훌륭해. 다른 사람은 저런 병신 그러지만 이 사람은 얼마나 기쁘겠어. 섬김의 모습, 상상만 해봐. 얼마나 멋있어.

 끝으로 독자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요즘엔 한 달에 한 번씩 주일학교 아이들 설교를 해야 하는데, 정말 고민이야. 3주는 아이들이랑 예배드리고 한 주는 어른 예배에 참석하지.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신부님이나 주교님에게 미안해. 그런데 아이들이랑 신나게 노는 게 좋아. 요즘엔 동화책 가져와 읽어주기도 하지.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는 말씀이 있잖아. 이 아이들의 심성을 가졌으면 하지.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으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으리라고 여기고 무언가 보람있는 뜻을 품기보다는 말초적이고 소비적인 흥밋거리에나 탐하는 인생살이가 되거든. 그것은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경박하게 만들어. ‘경박하다’는 것은 단지 그 성품이 가볍고 못미덥게끔 촐랑거린다는 뜻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의 병이 드러나는 증상’이지.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칫하면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그런 경박증에 걸리기가 쉬워.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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