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1월 24일 오후 1시 총신대학교 종합관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공개세미나에서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가 발표한 ‘현대 한국 사회 속에서 목회자와 신학자의 사명’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 ⓒ뉴스앤조이 신철민
2007년은 한국교회에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100년 전 조선민족이 나라를 잃고 민족 공동체로서의 소망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평양을 중심으로 ‘1907년 대부흥’을 일으키셨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2007년을 맞으며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돌아보시고 100년 전 부흥과 영광을 일으켜주시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 많은 목사와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했던 부흥은 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다른 이슈들로 한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았고 또한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이랜드 사태’는 그간의 한국 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였다. 우리는 이 두 사건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넘어서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과연 한국 사회에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하였다. 전자가 기독교의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가와 관련된 문제라면, 후자는 기독교 복음을 세상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비평

한국교회가 이토록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인구에 회자된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00년 인문학 잡지 <당대비평>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의 권력집단화를 우려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언론학자는 “나는 기독교가 지금처럼 사회적 도덕과 개혁을 외면하는 기복 신앙에만 머문다면, 한국 사회의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종교 문제만이 아니다. 그건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문제는 곧 한국 사회의 문제임을 밝히며, 한국교회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언종유착과 권종유착의 고리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문학자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난 이후에 일반 언론은 성역으로 여겨졌던 ‘종교 권력’에 메스를 대기 시작하였다. 2001년 한 주간지는 커버스토리로 ‘가장 무서운 집단, 종교권력!’을 다루며 한국교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고, 이 이후 주간지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여러 단면들을 보도하고 비평하는 일들이 지속되었다.

공중파에서도 한국교회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2004년 10월 2일KBS는 특별기획 ‘한국 사회를 말한다-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를 다루었다. 이로 인해 교회와 사회의 대립각은 더욱 예리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현재에까지 지속되고 있다. 2007년 들어, MBC에서 ‘목사님 우리 목사님’ 편을 통해 교회의 세습 문제와 재정 문제를 고발하고, 이어 PD수첩이 ‘투기꾼인가 목자인가?’ 편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교회나 교회 지도자의 불법적 재산 증식에 대해 비난했고, SBS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현장취재물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 사회적인 비평에 대해서 한국교회의 자성과 비평은 시기적으로 뒤늦고, 그 질과 양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3년 <기독교 사상>은 특집으로 ‘참을 수 없는 종교 권력의 가벼움-개신교 종교 권력, 오만의 끝은 어디인가’를 다루고, 같은 해 기독 계간 잡지 <새길 이야기>는 ‘종교 권력과 사회 개혁’ 제하의 기획 특집물을 다루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자성과 비평은 한국교회 내에서 공유되지 않았고, 한국교회는 오히려 언론과 사회의 질타에 대해서 집단행동을 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2007년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이랜드 사태’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 이 사건들은, 지속적이고 매우 객관적인 사회적 비평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보인 여전한 태만과 무책임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인문학자가, 그리고 다음에는 저널리스트들이, 그리고 이제는 일반 대중이 일어나 한국교회를 비평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이러한 현상은 세상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예수님은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소금과 빛’에 대한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세상에 드러나며,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본질적인 것, 그래서 그것이 있으면 ‘소금’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 그가 전한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다. 사람들 앞에 비친 ‘너희 빛’은 ‘너희 착한 행실’임을 보여준다. 빛의 속성으로서 숨겨질 수 없는 것을 강조하며(마 5:14), 이것은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호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소금과 빛’을 통해 가르친 궁극적인 결과(마 5:16)를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빌 1:11)라고 표현한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의의 열매’, 즉, 예수님의 표현에 의하면 ‘착한 행실’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의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소금의 본질인 ‘예수’와 ‘그의 복음’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종말론적 순결함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열쇠를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하게 될 때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지식’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여 알아가는 살아있는 지식을 뜻하는 것이고, ‘총명’은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진 통찰력 또는 분별력을 뜻한다. 기독교 메시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 사랑은 반드시 ‘지식’과 ‘총명’으로 더욱 풍성해져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면, ‘사랑,’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고 ‘상황 속에서 적용되는 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모아질 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고 이때 종말론적이고 현재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상황’을 분별하라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지식’과 ‘총명’이 모아져야 하는데, 특별히 ‘상황 속에서 적용되는 분별력’과 관련하여 한국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와 문화는 매우 다원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목회자와 신학자의 인식 자체가 함께 깊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목회자와 신학자는 개인 윤리적인 측면만을 주목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한국 상황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지나칠 수 없는 상황적 요소들에 대해서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종식된 세계적인 흐름과 무관하게 냉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특별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는 해방 전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공주의적이고, 친미적인 성격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이 반공주의가 사회적으로 재검토되고 있고,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성찰에서 빈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잔해로서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멍에와 같은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쇠퇴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유일하게 그것이 첨예하게 대립되어지는 곳이 한반도라면, 위에서 언급한 한국 개신교의 태생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증오와 용서치 못하는 민족적 문제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시장 경제 원리’로 새롭게 통폐합하고 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도 국내에서 논란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이 경제적 질서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삶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시스템과 그로 말미암은 결과들에 대하여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성찰이 긴급하게 필요한 때다.

한국의 문화적 상황은 ‘관용’을 중시하는 종교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다원적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를 선포하고 살아내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신학자의 신학적 성찰과 목회자의 목양적 접근이 시급하게 필요한 실정이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교회는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구약에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아보고, 그들에 대한 학대에 대해 당신 자신의 백성을 죽이겠다고 경고(출 2:21~24)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며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눅 10:29~37)도 같은 맥락이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불러일으키고, 실제적인 대안을 목양적으로 찾는 일이 필요하다.

‘신학함’이 결여된 목회, ‘사역함’이 결여된 신학

목회자와 신학자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과 해석을 목회자들은 신학자에게 요청하고, 유익을 얻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신학자는 신학적 관심뿐 아니라, 목양적 관심에 의해서도 신학을 하여 신학 연구의 축적물을 목회자들과 일반 성도들과 공유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연구의 방향과 주제를 목회 현장과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상호 협력뿐만이 아니라, 목회자는 목회의 현장에서 신학을 해야 하고(doing theology), 신학자는 신학 연구에 있어서 목회적 자세를 가지고(doing ministry)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신학함’이 결여된 목회, ‘사역함’이 결여된 신학이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나아가 신학과 목회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결여와 분리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속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목회자는 신학자이어야 하고, 신학자는 또한 목회자이어야 한다.

목회자와 신학자의 함정: ‘자기 합리화’

사회 속에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게 하는, 목회자와 신학자의 중차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여러 걸림돌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함정은 ‘자기 합리화’의 문제다. 목회자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상이 현실 목회 현장에서 불가능하며, 전통으로 굳어진 비본질적 형식을 타파하고 끊임없는 갱신을 이루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더군다나, 교회 성장이라는 지속적인 부담을 안고 목회를 하면서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훼손되고 왜곡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는 목회적 소명을 걸고 회복하고 갱신해야지, 미루고 자기 합리화에 안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학자들은 주로 교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교단의 신학적 전통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신학적 토론과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교단의 신학적 전통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그 교단에 속하기로 결정한 신학자의 신념적 또는 신앙적 결단이지만, 교단 신학이 지향하는 바와 동떨어진 비본질적인 전통이나 교단 정치와 관련된 부분 때문에 시대와 상황이 요구하는 신학적 논의나 연구를 기피한다면, 이는 신학자의 소명을 타협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신학자는 신학함을 통해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재의 교회가 온전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목회자와 신학자가 진정으로 자신들이 갖는 보편적인 역할과 시대와 상황 속에서 부여된 사명을 가지고, 목회 현장과 교회 전반, 그리고 구체적 삶의 정황과 상황에 대하여 신학하고 (doing theology) 사역하지(doing ministry)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늘 현상적인 문제를 붙들고 씨름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학자와 목회자가 함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행실’과 ‘의의 열매’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사명을 회복한다면, 이를 위하여 ‘예수님의 복음’에 기초하여 ‘사랑’에 ‘지식’과 ‘총명’을 더한다면, 바울의 기도처럼 종말론적으로 순결한, 그리고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김형국 / 나들목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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