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이 나왔더라고요."

지인을 만나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 책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책이든 첫인상에서 딱 떠오르는 느낌이 있는데,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세컨리폼) 역시 제목을 듣는 순간, 선명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최근 유튜브와 카카오톡에서 손봉호 교수에 대한 '가짜 뉴스'가 돌고 있는 것을 본 터라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혹시나 루머에 대한 해명이나 (설마) 본격적인 '손봉호 평전'은 아닌지 책 정보를 확인한 후, 책을 살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는 '뭐 그런 책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제대로 읽고 최소한의 검토는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작동했다. 호기심 반, 우려 반, 사명감 반, 약간의 반감이 더해진 마음으로 책을 받았다.

제목을 들었을 때의 첫인상과 달리, 실제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훑어보니 오타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전체 편집이나 디자인 등 물성을 따졌을 때 책의 완성도가 썩 나쁘지 않아 보였다. 159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분량도 만족스러웠고, 판형도 내가 좋아하는 판형이었다. 저자 소개는 약간 부실하다 싶었지만, 자기 어필이 좀 지나친 요즘 저자들에게 받은 인상에 비하면 나쁘진 않았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출간한 전혀 처음 들어 보는 출판사임을 감안하면(저자 박남훈 목사의 1인 출판사로 보인다), 칭찬할 만한 첫인상이었다. 덕분에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안도감은 딱 거기까지였다.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 박남훈 지음 / 세컨리폼 펴냄 / 160쪽 / 1만 2000원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저자 박남훈 목사는 우연히(?) 2011년 2월 손봉호 교수가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참고로, 이 인터뷰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 선거 문제를 지적하며 한기총 해체 운동이 시작된 상황에서 진행한 인터뷰다]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일곱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일곱 가지 질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질문이 장황해서 나름대로 정리했다).

1.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가?
2. 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독설에는 어떤 의미의 층위들이 깔려 있는가?
3. 왜 한국교회는 독설을 퍼붓는 그에게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는가?
4. 그가 교회를 이렇게까지 비판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5. 저런 발언을 하는 손봉호 교수의 사고 체계는 무엇인가?
6. 한국교회 원로로 여겨지는 손봉호 교수는 교수, 사회 활동가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가?
7. 한국교회가 망해야 한다는 걸 보니 손봉호 교수는 한국교회의 적이 아닌가?

일곱 가지 질문을 제시한 저자는 나름대로 손봉호 교수의 기존 책과 발언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검토하고, 활동 이력도 추적하고, 신학적·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을 한다. 결론에서는 질문의 역순으로 답을 제시해 '손봉호 교수는 누구인지' 결론을 내린다.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하고자 애를 쓴 것은 보이는데, 중간중간 보이는 논리의 비약은 안쓰러웠고, 개념의 혼동, 자료의 왜곡 등에는 헛웃음이 났다. 결론을 미리 유출하자면 '손봉호 교수는 복음은 없고 윤리만 강조하는 사람이며 사회주의혁명의 전사이고 한국교회의 적'이라는 것이다. 마치 세발자전거로 협곡을 뛰어넘으려는 무모한 도전을 본 듯한 아찔함이 들었을 뿐 드라마틱한 재미나 감동은 전혀 없었다. 드라마도 이 정도로 개연성이 없으면 곤란한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저자가 손봉호 교수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는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이 셋 모두 너무 기본적인 내용이라 치명적이면서도 황당할 뿐이다.

첫째로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손봉호 교수를 비판하기 위한 자료를 선택적으로 취합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나름대로 손봉호 교수의 책도 인용하고 여러 자료를 섭렵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인용하는 내용은 손봉호 교수의 전체 저작이나 칼럼, 인터뷰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거니와, 이력의 종착지는 결국 '성서한국 공동대표'직이다. 손봉호 교수가 성서한국 공동대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재 그가 맡은 다른 일들 중 얼마나 큰 비중이 있으며 '손봉호'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인지 이 책은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 또한 성서한국 내에서 손봉호 교수의 영향력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도 분석하지 않은 채, 공동대표 6인 중 1인이라는 연결 고리 하나에만 집중한다. 현재 손봉호 교수가 맡고 있는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기아대책 이사장, '1등 신문 <조선일보>'의 윤리위원장직 같은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손봉호 교수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성서한국이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분석뿐 아니라 똑같이 '손봉호의 윤리 프레임이 덧씌워진' <조선일보>의 정치적 계보도 분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둘째로 이 책에서는 그나마 선택적으로 관찰한 자료마저 맥락을 제거하고 왜곡하기 일쑤다. 이 책이 가진 문제의식의 시작은 손봉호 교수가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는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고 하고 "한국교회는 완전히 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9년 전 한기총 해체 운동을 시작한 시기에 한기총의 금권 선거 운동으로 불거진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비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라는 맥락을 제거하고 저 발언을 한국교회를 저주한 것으로 이해해 버린다. "한국교회는 완전히 망해야 한다"는 발언도 원문을 찾아보면 "완전히 망해야 다시 살 수 있다"는 내용인데, '다시 살 수 있다'는 쏙 빼 버리고 "망해야 한다고 했으니 한국교회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라고 왜곡해 버린다. 그런 식이면 밀알이 썩어야 열매를 맺는다 하신 예수님은 밀알을 저주하신 것인가? 심지어 손봉호 교수는 '기윤실 운동은 실패했다'고 발언한 바도 있는데, 손봉호 교수는 기윤실의 적인가?

셋째로 저자는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왜곡한 자료에 뜬금없고 무리한 해석까지 시도한다. 예컨대 저자는 "윤리적이라고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윤리적이어야 한다"라는 손봉호 교수의 발언을 직접 인용하고는 이 발언이 "개신교를 윤리 이데올로기에 가두려는 전략"이라고 비난한다. 윤리적이라고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으면서 기독교적 구원의 독특성과 칭의의 은혜을 강조한 후에,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윤리적 실천과 성화의 과정 역시 필요함을 언급하는 이 기본적인 문장도 이해하지 못한 채 '윤리 이데올로기' 운운하는 것은, 저자야말로 목회자로서 기초적인 신학 소양도 갖추지 못한 채 손봉호 교수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에 가두려고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보고 싶은 자료만 보고 선택적으로 몇 문장만 뽑아 왜곡하는 것에서 예견된 일이지만, 이런 잘못된 자료 선택과 해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결론까지 끼워 맞추는 논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지만, 나쁜 책은 분명히 있다. 분명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 생각보다 많다. 나는 이 책을 내용의 부실함만으로는 그렇게 나쁜 책이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누가 읽어도 분별이 어렵지 않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거나 감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정상적인 독자들에 대해서는 이성과 감성, 신앙에 끼치는 해악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책을 이렇게 쓰면 안 되고, 논리를 이렇게 전개하면 안 되고, 이렇게 사고하면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주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기에는 좋은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윤리적'으로 나쁜 책이다. 저술 동기부터 자료 수집, 논리 전개 모두가 불온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이 윤리적으로 나쁜 것은 대부분의 윤리적 문제가 그렇듯, 이 책을 둘러싼 맥락 때문이다. 저자가 손봉호 교수에 대해 이런 무리한 비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 박남훈 목사는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이유로 지금 이런 비난을 하는 것인가?

나는 사실 '박남훈 목사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지만, 책에 언급되는 내용만으로도 그의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①전광훈 목사의 반정부 선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②분당우리교회의 '낙타와 하루살이' 설교 파문 당시 반동성애 진영이 분당우리교회와 손봉호 교수를 향해 던졌던 비난 논리를 책에서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③손봉호 교수를 이데올로기의 전사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이정훈 교수의 분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④손봉호 교수를 빌미 삼아 결론적으로는 성서한국을 비롯한 복음주의 개혁 진영을 비판하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반복되는 종북 논쟁의 자료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런 내용을 연결해 보면 박남훈 목사가 대략 어떤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정보를 얻고 누구의 해석 틀로 정보를 해석하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 책이 나온 타이밍 역시 위에 언급한 배경과 무관하지가 않다. 백종국 교수가 기윤실 웹진 <좋은나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손봉호 교수를 향한 공격은 2019년 6월 18일 이후 급증했다. 6월 18일은 31명의 기독교계 원로가 전광훈 목사 행보를 비판하고 자숙할 것을 권하는 성명을 발표한 날이었고, 손봉호 교수도 이 성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백종국 교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튜브에서 '손봉호 좌파'라고 검색하면 손봉호 교수를 비난하는 영상이 20개 정도 나오는데, 이 중 19개가 이 성명 발표 이후에 게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확인해 본 결과, 이 영상들 역시 모두 사실상 손봉호 교수를 빌미로 성서한국을 비롯한 복음주의 개혁 진영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이 책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2017년 11월 24일, 서울 종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회관 앞에서 명성교회 세습 철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손봉호 교수. 뉴스앤조이 이용필

더해서,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시발점이 된 <시사저널>의 9년 전 인터뷰 역시 흥미로운 자료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6월에 '한 좌파 인사'의 소셜미디어에서 이 인터뷰를 보았고 이 인터뷰가 좌파들이 한국교회를 비아냥대는 데 사용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고 쓰고 있다. 그래서 6월 28일 <한국기독타임즈>에 짧은 칼럼을 기고했고, 이를 발전시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자료를 찾다 보니, 6월 23일에 이 인터뷰를 이정훈 교수가 페북에서 공유한 기록도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유튜버들도 심심찮게 이 인터뷰를 언급하는 것을 보았다.

특정한 시점부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갑자기 집중 공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사람이 똑같은 논리로, 그것도 똑같이 앞뒤 맥락을 자른 무리한 논리로 공격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그 공격의 중요한 근거가 무려 9년 전의 인터뷰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관련된 내용을 살피면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정확하게 정체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특정한 진영을 중심으로 한 가지 소스와 그에 대한 논리가 전파되면 그것을 받아서 일사불란하게 유튜브로, 카톡으로, 심지어 이런 책으로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언론에서 많이 보도된 '가짜 뉴스 공장'처럼 조직화된 것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이렇게 동시에, 여러 사람을 통해 반복 재생산되어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배경에 특정한 조직이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일이 신앙의 이름을 입고 행해지고 있다는 데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가 있다. 선택적 자료 수집, 왜곡, 논리 비약, 이데올로기 프레임 씌우기 등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보다 성경의 핵심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정죄하고 비난한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하며, 마치 딱새의 둥지에서 먼저 부화해 다른 알을 밀어내 버리는 뻐꾸기 새끼처럼 자신과 이념이 다르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들이 가진 것이 진정 신앙인가? 이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진정 교회인가?

이런 이들이 한국교회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회라고 비판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이런데도 한국교회가 망하지 않고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가? 손봉호 교수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이 가장 잘해 주고 있다.

개봉동박목사 /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헤매다가 '또다른숲'이라는 교회를 만들었다. 새로운 신앙의 형태와 습관을 찾는답시고 온갖 잡다한 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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