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육아育兒가 육아育我'인 사회를 꿈꾸는 전업 활동가." 정치하는엄마들(공동대표 김정덕·백운희) 전 공동대표 조성실 씨는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2017년, 젖먹이 아이를 안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던 '열혈' 활동가 조 씨는 2019년 이용호 국회의원(무소속) 비서관을 거쳐 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창립 멤버 조성실 씨는 지난 2018년 <뉴스앤조이>와 '진격의교인'으로 만났다. 당시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현실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 기회가 온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왔다. 정의당은 2월 10일 조성실 씨 영입을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 국회의원 비서관으로서의 현장 경험 등을 높이 샀다. 조 씨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 정의당은 당원 투표 70%, 시민 선거인단 투표 30%를 합산해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한다.

기초의원인 아버지를 보며 학창 시절부터 정치인의 꿈을 꿨다는 조성실 씨를 2월 11일 국회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인터뷰 이후 1년 반 만에 만난 그는 이전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하나를 물어보면 꼬리에 꼬리를 문 이야기가 나왔다.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느낀 보람과 한계,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기까지의 고민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 조성실 씨가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당사자 정치' 필요성 절감한
11개월 2주간의 비서관 생활
"가만히 있어도 아이 죽는 사회
구조 바꾸지 않으면 해결 안 돼"

- 지난번에 봤을 때는 활동가였는데, 그사이 국회의원 비서관도 했다. 어쩌다 국회에서 일하게 됐나.

고향 지역구 의원이기도 한 이용호 의원실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눈여겨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유치원 3법' 사태를 지나면서 관련 법안에 목소리 낼 수 있는 의원이 국회 안에 있는지 여부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의원실에서 제안이 와서 정치하는엄마들에 알리고 비서관으로 합류할지 말지 논의했다. 논의 후 국회 안에서 '정치 하는 엄마'가 되고자 공동대표·운영위원을 사퇴하고 비서관에 취직했다.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됐다. 

- 비서관 생활을 11개월 2주간 했다. 국회 안에서는 어떤 일에 주력했는가.

이용호 의원이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다. 정치하는엄마들에서 활동하면서 어떻게 아이들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 많이 고민했다. 의원실 들어가서도 관련 법안을 공부하고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하는지 연구했다. 그러다 2019년 3월경, '하준이 엄마' 고유미 씨가 정치하는엄마들을 통해 연락해 주셨다.

하준이 사건은 2017년 10월 발생했다. 하준이네 가족이 과천 서울대공원에 갔다가 말도 안 되는 사고를 당했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경사진 주차장에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지 않고 세워 둔 차가 굴러와 하준이와 고 씨를 덮쳤다. 엄마 손을 잡고 있던 하준이는 영원히 엄마 곁을 떠났다.

주차장법 개정안이 올라오면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심의한다. 하준이 어머니는 아이가 떠난 지 1년 반이 지났는데도 사고 현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분노하셨다. 그분이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 청와대에 국민 청원을 올려 14만 명에게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관련법 개정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현장 관료들이 변하지 않으니, 하준이가 사고를 당한 주차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의원실에서 서울대공원에 자료를 요구했다. 왜 그대로인지 해명하라고. 그쪽 실무자가 처음에는 엉뚱한 액수가 적힌 자료를 보냈다. 몇 억이면 주차장 평탄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십수 억이 든다고 말을 바꿨다.

알고 보니 의원실에서 자료를 요구하니까 대충 아는 업체에 견적을 문의했고 그때 받은 답을 의원실에 전달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사고가 재발하는 이면에 있는 행정 시스템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어도 관료들은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어떻게 사고를 다 막아요?'라고 되묻는다.

가만있어도 죽는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나. 하준이도 그렇고, 어린이 생명안전법이라고 불리는 민식이법, 태호·유찬이법, 해인이법, 한음이법 모두 '사고'로 발생한 일이다. 우리나라 스쿨존 사고 현황 자료를 제공받아 들여다보니, 사고가 발생하는 곳에서 반복되더라. 이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노력해서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에서, 국정감사에서 떠들기 전에는 관련 기관들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행정기관을 실제로 압박하는 건, 국민도 민원도 아닌 국회다.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을 질타하면 언론이 이를 보도한다. 그러면 공론화가 된다.

하지만 의원들은 눈앞에 놓인 수많은 사안 중 국정감사에서 어떤 것을 언급할지 선택해야 한다. 그때 당사자 정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비서관을 하면서 가장 한계를 느낀 점이 이 부분이다.

조성실 씨(맨 오른쪽)는 11개월 2주간의 비서관 생활에서 어린이 생명안전법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정치하는엄마들과 함께 관련 법을 공론화하기 위해 힘썼다. 사진 제공 조성실

- 국회에 이미 '여성', '엄마' 정치인은 많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여성 정치인이 많기는 한데, 자세히 보면 판검사, 고위직 공무원, 대기업 출신, 교수 등 전문직이 많다. 엘리트 계층 여성이 정치권의 부름을 받기 더 쉬웠으니까. 그 시절에는 '엄마'라는 정체성이, 지혜로울 수는 있지만 못 배운 사람, 정치 같은 고귀한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그 고정관념을 깨려는 것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엄마'로서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여기에 현실 정치를 '하는' 엄마가 되려는 것이다. 한 생명을 낳아 기르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기르는 게 너무 어렵다. 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육아의 기쁨과 중요성을 몸과 마음으로 실감하려면, 실제로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일이냐 양육이냐 두 가지 선택지만 주는 게 아니라, 선택지 자체를 바꿔야 한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이 '경력 단절'을 고민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고용 단절'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크게 관심 두지 않았으니, 우리가, 당사자가 직접 하겠다는 것이다.

- 국회의원이 되면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은 법안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칼퇴근법'이다. (사진을 보여 주며) 아들이 그린 그림인데, 여기 보면 달이 뜬 놀이터를 그려 놨다. 비서관을 그만뒀더니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하루는 큰애가 "하나님, 우리 엄마 절대 국회로 돌아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더라. 나한테는 "엄마, 다음 취업은 아빠 회사로 해. 아빠는 7시에는 꼭 오거든"이라고도 말했다. 8살 아이가 '칼퇴근'을 알고 있는 거다. 부모가 일을 하더라도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다고 칼퇴근법이 부모에게만 적용하는 법이어서는 안 된다. 비혼이거나 자녀 없는 사람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법이어야 한다. 갑자기 아이 때문에 집에 가야 할 때, 그 일을 다른 사람이 메꾸는 구조로 만들면 안 된다. 그러면 '맘충'이 되는 거다. 동료끼리 혐오를 부추기는 시스템이 아닌, 전체적으로 근무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칼퇴근법을 바로 정착시킬 수 없다 하더라도,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진일보하는 방향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국회 일이 바빠 귀가가 늦어지는 일이 잦아지자, 아이는 달이 뜬 놀이터 사진을 그렸다. 사진 제공 조성실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다양한 생각 있어
찬반 이데올로기적 신앙 벗어나
서로 차이 인정하고 이야기 나눠야
생명의 소중함 아는 정치인 되고 싶다"

- 학창 시절부터 '기독 정치인'을 꿈꿨다고 들었다. 신앙적 고민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기독교인들은 '같은 사람이면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정치하는 게 좋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기독교인이 정치를 하면, 내용에 상관없이 그게 곧 '하나님의 정치'라는 식이다. 나도 그랬다. 정치인을 꿈꿀 때부터 의원 신우회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상상했다. 제헌국회가 기도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감동받기도 했다. 기독교가 핍박받아서는 안 되고, 종교의자유를 지키는 일이 사회의 다른 공공선보다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정치'가 무엇인지, 여러 모임을 찾아다녀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다.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하면서 현실 정치를 배우기도 하고 신앙도 바뀌었다. 처음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당시 내 상황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에도 육아·고용 등을 놓고 여러 상황이 펼쳐졌는데, 이건 남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만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사회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활동하면서 단체 안에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기독교인들을 만나고,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내가 신앙을 너무 이데올로기적으로 생각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신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본다는 건,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사안에는 무조건 찬성이나 반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기독교에서 얘기해 온 정의가 어떤 정치로 표출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하나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하는엄마들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답이 꼭 하나가 아니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 생명안전법에 대해 큰 틀에서는 찬성하지만 좀 과한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의문이 든다고 해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고 각자 생각하는 대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의견을 나눌 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 국회에 '기독 정치인'이 없는 게 아니다.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가.

약자와 함께 울고 웃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여기서 약자는 나 자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물어보면 다 손을 들지만, 도움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물어보면 아무도 답을 안 한다. 도움받는 사람은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조성실 씨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 제공 조성실

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 국회에서 일하며 알게 된 건데, 한국은 '위탁 가정'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다. 보호시설에 사는 아동이 늘어나니까 UN에서 위탁 가정 제도를 권고했다. 정말 돌봄이 필요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단 몇 년이라도 가정에서 사랑을 느끼면서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대한민국에서 위탁 가정에 참여하는 가정은 760세대밖에 없다. 실무자들에게 물어보면 제도 자체가 중산층 외벌이 가정에 맞게 짜여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금전 지원은 전혀 안 하는데, 누군가는 전적으로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몇 년만 위탁한다고 해도 최소 해당 아동과 친해질 수 있도록 휴직 기간이라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 '760'이라는 수치는 나에게 커다란 경종이었다.

한국교회에서 생명이 너무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가정이 필요한 수많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일을 실천하는 것도 교회의 사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뜻있는 가정이 조금 더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간과 자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전도하는 것 외에도 나의 삶으로 하나님나라 가치를 살아 낼 수 있는 일, 실생활에서 더 접근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실천 가능한 일이 많다. 이 같은 일을 발굴하고 우선 의제로 삼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그런 맥락에서 '엄마' 정치, '기독' 정치를 하고 싶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