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회로 들어가는 입구. 벌써 2년 가까이 텐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텐트를 '시민 불복종 텐트'라고 부른다. 무더운 여름에도 차디찬 겨울에도 시민들은 번갈아 가며 텐트를 지켰다.

시민 불복종 텐트는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산 골프장 건설 계획 때문에 생겼다. 고양시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산황산골프장증설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해 지난 2014년부터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진행해 왔다.

산황산에는 이미 골프장이 있다. 업체는 골프장을 증설하겠다며 고양시에 부지 용도 변경을 신청했고, 고양시는 이를 받아들여 개발제한구역의 용도 변경을 허가했다. 골프장이 증설되면 녹지 파괴는 물론이고 산기슭에 사는 주민들 생존권이 위협받는다. 증설 예정 지역에서 직선거리 300m 떨어진 곳에는 고양시민 식수를 책임지는 고양정수장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범대위는 이후 시에 개발제한구역 용도 변경의 직권 취소를 요구하며 싸움을 시작했다. 범대위는 2018년 12월부터 고양시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산황산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다. 당시 고양시 공무원들은 강제로 텐트를 철거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 환경운동가가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고양시의회 건물 입구에서는 매주 목요일 8시만 되면 기도회가 열린다. 2월 6일 기도회에 참석한 나들목일산교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환경운동가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나들목일산교회(이진아·유형석 목사) 교인들을 중심으로 '산황동골프장증설백지화기독교대책위원회'(대책위)가 결성됐다. 고양시 지역 교회 5개(나들목일산교회·동녘교회·백석교회·주날개그늘교회·성공회일산교회)로 구성된 대책위는 2019년 1월 2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산황동 골프장 증설 백지화를 위한 목요 기도회'를 진행해 왔다.

목요 기도회는 1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2월 6일 목요 기도회가 열리기 전 만난 유형석 목사는 "골프장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도회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섯 교회가 순번을 맡아 돌아가며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고 했다.

유형석 목사는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산황산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범대위 활동이 끝나는 날까지 기도회를 이어 가겠다고 했다. 그는 "환경을 지키는 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이기도 하고, 범대위 활동과 연대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시민단체가 앞장서 하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 부끄러운 마음으로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공동의장(맨 오른쪽)은 목요 기도회와 함께 투쟁을 이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공동의장도 할 수 있는 한 매주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조정 의장은 지난해 초, 공무원들의 강제 텐트 철거에 항의하기 위해 17일간 단식투쟁했다. 기도회 시작 전 만난 조 의장도 골프장 증설 계획이 변하거나 확정된 게 없어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1년 사이 산황산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다. 우선 골프장 증설을 계획한 운영사가 자금난으로 파산했다. 또 국토부가 지난해 5월 3기 창릉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며, 교통 대책으로 백석동에서 서울문산고속도로를 연결하는 자동차전용도로 신설 계획을 밝혔다. 노선도에 따르면 도로는 산황동을 관통하는 것으로 돼 있다. 고양시는 신설 도로가 골프장 예정지를 관통할 것이기 때문에 골프장 증설 계획이 취소될 것이라며 범대위에 텐트 철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범대위 입장에서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힌 셈이다. 조정 의장은 "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생기면 그곳에 사는 각종 동식물과 산기슭에 사는 주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산을 지키기 위해 골프장 증설을 막은 것인데, 또 다른 파괴로 이어지려 하니 운동을 그만둘 수 없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재준 시장은 지난해 3월 28일 '나무 권리 선언문'을 작성해 일산 호수공원에 비석도 세웠다. 조정 의장은 "선언문에 보면 '나무는 오랫동안 살아온 곳에 머무를 주거권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산황산을 지키려는 건 이 시장이 이야기한 나무의 권리를 지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왜 자신들의 행정에 역행하는 일을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매주 목요일 8시 고양시청
추위에도 어김없이 열린 기도회
"예배가 우릴 하나 되게 해"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 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컴컴한 어둠을 뚫고 우렁찬 찬송 소리가 들려 왔다.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기온에도 경기도 고양시청 앞 로비에 나들목일산교회 교인 27명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마스크도 착용하고, 두터운 겉옷과 모자, 목도리 장갑 등으로 몸을 꽁꽁 싸맸다.

나들목일산교회는 가정교회 7개가 돌아가면서 목요 기도회를 준비한다. 이날은 마두가정교회 차례였다. 참석자들은 함께 찬양을 부르고 '자연을 위한 기도'를 낭독했다.

"생명의 하느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깨우쳐 주소서. 그들이 숲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기억하겠나이다. 그들이 도시에서 겪는 푸대접을 기억하겠나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보호자, 섭리자의 역할을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 주게 하소서. 우리가 들짐승을 잔인하게 대하지 않도록 금지하소서."

교인들은 예배를 마치고 이재준 시장에게 보낼 엽서를 작성했다(사진 위). 엽서에는 이재준 시장인 지난해 3월 발표한 '나무 권리 선언문' 사진을 실었다. 사진 제공 조정

설교 없이 진행된 기도회는 약 15분 만에 끝났다. 참석자들은 준비해 온 따뜻한 차로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 담소를 나눴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김예은 양은 산황산 상황이 안타까워서 기도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 참석하실 때마다 따라오려고 노력한다. 한 명이 싸우는 것보다 다 같이 하면 더 힘이 나고 좋을 것 같다. 환경운동가들이 기운 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한다"고 말했다.

자녀를 데리고 온 박지혜 씨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자연을 그대로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동참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도회에 벌써 10번 가까이 참석했다는 정찬현 씨는 사람이 자연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정 씨는 "기도회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배이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계속 참여하는 중이다. 예배가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 산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시민 불복종 텐트'는 환경운동가, 지역민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24시간 지킨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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