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초긴장하고 있다. 바이러스와 기후 위기 때문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호흡기 질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종으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던 것이었다. 숲이 파괴되고 생물종 간에 벽을 허무는 행동이 이어지면서, 바이러스가 면역력 없는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온난화로 발생한 기후 위기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기후 위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식량 위기, 재난으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 수인성 질병, 폭염 등이 나온다. 이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어 대응이 어려운 게 동물들이 매개하는 질병이다. 물론 기후 위기는 자체로도 인류를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위기라고 말할 정도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된 것은 2007년 일이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총회 때로, 기후변화가 전적으로 인간 책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5년에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2도까지 억제하자는 파리 기후 협약이 채택됐고, 2018년에는 IPCC 총회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45% 줄이고, 2050년까지 순-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특별 보고서도 채택됐다.

하지만 눈에 띄는 행동의 변화는 별로 없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온난화를 막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8~10년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전 세계가 합의한 파리 협정이 실제 적용되기 시작하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지금의 풍요와 편리함 속에 빠져 있다. 이미 누려야 할 것의 3.5배(전 세계 평균은 1.7배)를 누리고 있으며, 우리가 쓸 수 있는 탄소 배출 허용 총량(탄소 예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걱정뿐이다.

아니, 오히려 남은 것을 최대로 사용할 생각에 여념이 없는 듯싶다. 상처 입은 채 절멸 상황으로 치닫는 지구의 수용 능력(지구 생태 용량)에 맞추어 살아간다거나,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는 듯싶다.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다. 살인적 폭염, 폭풍, 가뭄, 홍수, 산불,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식량 문제와 서식지 파괴로 종의 멸종이 예고되지만, 파리 기후 협약 때 제출한 감축 목표 이행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모든 나라가 자발적 감축 목표를 다 지켜도 2100년 3도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지구가 회복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북반구 영구 동토층의 메탄가스가 방출되어 8도 이상 올라갈 수 있다. 이런 현실에도 위기의식은 높지 않다.

그러고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나 기후 위기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규정돼 있는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침범한 인간의 교만, 탐욕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대 의대 이왕재 교수도 계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변이를 두고 "하나님의 영역인 선악과를 따먹고도 부족해 생명나무 열매를 건드린 결과"라는 표현을 썼다. 기후변화로 발생한 지금의 기후 위기도 그렇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을 허용된 만큼 사용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선악과'를 계속 따먹고 살아온 결과가 기후 위기다.

온실가스는 우리 욕망이 빚어낸 결과이고, 기후 위기는 신음하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다. 고통 중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메시지를 계속 무시한다면, 5개월 이상 이어진 호주 산불이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을 숨진 것보다 더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할 때까지 말이다.

지구는 하나님이 '참 좋다' 하셨던 곳이다. 지금도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시다. 그 지구가 지금 회생하기 어려운 마지막 숨인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머잖아 지구 회복력이 없어질 것이란다. 매년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있으며, 식량과 에너지, 자정 능력 등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생태 자원을 써 버리는 날짜(생태 환경 초과일)가 매해 앞당겨지고 있다. 2019년에는 7월 29일(한국은 4월 17일) 고갈되어, 그 후 미래 세대 것을 당겨썼다.

특별히 기후는 폭염, 자연 재난,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전염병 확산, 식량 부족, 기후 난민 증가가 과학자들의 예측보다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어떤 상황이 닥쳐야 위기의식이 높아질까. 그래도 청소년들이 앞서 위기에 둔감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를 시작한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 정상회담장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가 이 위에 올라와 있으면 안 된다. 대서양 건너편 나라에 있는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다.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 가고 있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뿐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른가. 신음하는 지구가 애타게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내년에 신기후 체제가 출범한다. 어찌 보면 신학의 위기요, 교회의 위기이지 싶다. 그동안 생태신학이 신론·그리스도론·인간론 등을 새롭게 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하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물론, 사회 변화는 너무 더디기만 하다. '더 이상의 것은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누리겠다고 하는 자기 선언이 절실하다.

지금의 신학과 교회만으로는 인식의 전환은커녕 욕망의 사회를 바꾸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욕망을 점점 더 키워 지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물론 탐욕에서 자유로운 삶, 적은 것에 만족하는 삶은 쉽지 않다. 덜 시원하고 덜 따뜻하게, 고기·자동차·플라스틱 없이 사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에너지전환, 쓰레기 제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함께 가자고 청하는 일은 더욱 쉽지가 않다.

무엇이 됐든 시작해야 한다. 후회할 새도 없다. 지금이라도 신음하는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 내는 데 시간을 들이자. 우리가 위기를 위기로 정확히 인식할 수만 있다면, 지구 이웃을 향한 기도 어린 걸음을 내딛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지리라고 본다.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의 욕망이 그동안 점점 커져 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 정확히 기후 위기를 마주해야 한다.

때로 과학자들이 내놓는 위기 예측을 보면서 큰 두려움에 휩싸여 우울해지고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지구와 수많은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두려움을 사랑으로 넘어설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기심·탐욕·편리함에 주저하면서 적당히 실천하고 책임을 전가해 왔다면, 위기 상황 자체를 피하거나 부인해 왔다면, 사랑으로 뛰어넘으라고 하신다. 혼자는 힘들 수 있으니, 가까이 지내는 이들, 교회 교우들과 함께라면 더 좋다. 기후 위기를 마주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지를 솔직히 나눈다면 다를 것이다. 그것이 기후 위기의 순간을 온전히 대면하게 하는 문을 열 것이다.

함께 만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라면, 가장 크게 고통받으면서 사라져 가는 생명과 마주하는 일부터 해 보기를 권한다. 늘 그렇듯 기후 위기도 약자가 더 취약하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어른보다는 아이와 노인이 취약하다. 동물도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양서류·파충류가 포유류보다 빨리 멸종한다. 상황이 나빠질수록 그들이 겪는 고통은 커질 것이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 앞에 침묵하지 않고 기도하고 저항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혹은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머물러 보자. 온전히 머물면,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필요를 채워 주는 행복의 세잎클로버(공기, 물, 흙, 수많은 생명)를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절망하고 있는 기후 약자들은 물론, 미래 세대들까지 가슴에 품고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살기까지 '기도·공부·행동'하리라고 믿는다.

2월 26일(재의수요일)부터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위기를 부추기고 책임 전가해 온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서 보자. 극심한 고통 중에 죽어 가는 생명들과 함께하고 계실 주님,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를 기다리는 그들 피조물 앞에 바로 서 보자.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이번 사순절 기간에 한국교회와 공동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 걸맞은 '탄소 금식'을 진행한다. 기후 위기로 하나님의 피조물이 심히 고통 중에 있으니, 소소하더라도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 일이라면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함께하는 교회들에는 매주 하나씩 주간별 주제와 행동 변화를 요청하는 '액션 플랜'을 나눌 수 있도록 웹 포스터를 만들어 제공되고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기 △일회용(플라스틱) 금식 △전기 사용 줄이기 △고기 금식 △전등 끄고 기도의 불 켜기 △종이 금식 △지구를 살리는 거룩한 습관을 들이는 실천을 한다.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더불어 실천하도록 '40일 실천 카드'도 제공하고 있다. <지구 이웃과 함께하는 40일의 묵상 여행>(동연)도 펴냈다. 어떤 것이든, 욕심껏 소비해 온 삶을 회개하고 '주님만으로 족하다'고 고백하는 영적 여정을 걷게 도울 것이다.

이제 기후 위기를 피하고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기후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주님의 고난과 피조물의 고통을 묵상하면,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풍성히 살게 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함께 기후 위기를 인정하고 주님을 만나 보자.

다행히 아직 기회가 있다. 함께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할 수 있는 기후 행동을 만들어 공개적으로 선포해 보자. 그러면 기후 위기에 맞서 행동하는 이들이 보일 것이고, 그들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화석연료에 기초한 모든 산업 기반 구조 확대에 저항해야 할 수도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를 우리 공동체 안에 수용하기 위해 시간과 재정을 써야 할 수도 있다.

주저되더라도 뒤돌아서면 안 된다. 하나님의 선물인 피조물을 존중하면서 지속해 가는 삶이야말로, 그 삶을 보편적으로 살아 내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요, 삶의 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서 창조 세계를 살리는 '기후 회복을 위한 40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 내어 신음하는 지구 동산의 '진정한 중보자'가 되자. 그렇게 우리와 후손, 모든 생명이 골고루 풍성하게 살게 하기를 기도한다.

유미호 / '모두가 골고루 풍성한 삶을 살기까지' 교육하고 실천하는 일을 하는 살림 코디네이터. '환경 선교사 양성'을 비롯해 △계절에 말 걸기 △플라스틱 프리 △환경 살림 나눔 발전 △탄소 금식과 같은 절기별 신앙 실천을 진행하는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센터장이다. 연세대 신학과와 연합신학대학원(기독교윤리학)에서 공부했다. 1991년 이후 그리스도인과 함께 하나님이 '참 좋다'고 하신 일, 녹색 그리스도인과 녹색 교회를 세우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그 내용은 <생명을 살리는 교회 환경 교육>(동연)에 담겨져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