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ARMC 오수경 신임 대표가 '대중문화와 한국교회 속 여성 관찰기'라는 주제로 새해 첫 월례 강좌 발제자로 나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TV 드라마나 영화 속 여성 이미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성을 강조했다면, 지금은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여성 모습을 보여 주는 캐릭터가 눈에 띄게 늘었다. 페미니즘이 화두가 된 사회 현실을 대중문화가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교회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교회는 구성원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리더십에서 여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성에게 안수를 주는 교단에서도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여성은 극소수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온사상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대중문화 속 여성 묘사 변화를 한국교회 현실에 빗대 보는 강좌가 열렸다. 청어람ARMC는 1월 30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대중문화와 한국교회 속 여성 관찰기'라는 주제로 새해 첫 월례 강좌를 열었다. 청어람 오수경 신임 대표가 직접 발제자로 나섰다.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습 재생산 줄고
다양한 서사 보여 줘

오수경 대표는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업소 여성, 비혼 여성이 사회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연대하는지 드러났다고 말했다. KBS '동백꽃 필 무렵' 갈무리

본인을 '드라마 덕후'로 소개한 오수경 대표는 대중문화를 역동적 장르라고 표현했다. 드라마는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관습을 타파하는 시선을 담기도 한다. 문제는 대중문화가 사회적 관습을 재생산하는 경우다. 오 대표는 "대중문화는 어떤 것은 과도하게 재현하고 어떤 것은 소멸시켜 사회적 관습을 재생산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상징적 소멸'이라고 부른다. 그는 "상징적 소멸이란 사회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소수자 비중을 축소하거나 아예 재현하지 않는 것, 또는 부정적인 면을 과장 또는 왜곡해서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받아 결국 살을 빼 성공하게 된다든가, 장애인은 극 중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대중매체에 소수자가 등장해도 대부분 고정된 역할로만 출현했다. 여성의 경우, 외모와 몸매를 상품화하거나 '엄마는 슈퍼 우먼' 이미지를 입혀 육아와 일 모두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했다.

오수경 대표는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콘텐츠에 접근하고 비평할 수 있는 능력 - 기자 주)를 강조했다.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페미니즘' 렌즈로 비평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단일민족, 가부장적, 이성애자' 사회를 문제의식 없이 보이는 대로 보는 게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문화는 2016년 강남역 사건으로 촉발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변화의 기류를 보였다. △일하고 욕망하는 여성 △폭력에 맞서 연대하며 싸우는 여성 △비혈연 수평적 공동체 △퀴어 등 다양한 주체라는 서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화면 밖 대중문화 산업에서도 표준 근로 계약서 작성, 미투 운동, 미디어 노동자 인권 단체 설립 등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대중문화는 2016년 강남역 사건으로 촉발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변화의 기류를 보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중년·남성·목회자는 '과잉 재현'
젊은 세대는 '소멸'
'선한 영향력' 새롭게 해석하고
'미디어 리터러시' 공부해야

오수경 대표는 대중문화 속에서 확연한 변화를 느낄 수 있지만, 교회에서는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남성들만 가득한 교단 총회 현장과 총회 회의장 밖에서 진행된 '여성 목사 안수 허하라' 퍼포먼스를 보여 주며 "주방 허드렛일은 여성이 하고, 중요한 결정은 남성이 한다. 이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교회가 아니라 기독교 내부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오수경 대표는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어떤 것은 과잉 재현되고, 어떤 것은 소멸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교회는 여전히 중년·남성·목회자 등이 대표하고 있고, 이런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젊은 세대는 교회를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성 중심 교회 리더들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현상을 동성애·페미니즘 등 외부 공격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담을 더 견고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모습을 회복해야 할까. 오수경 대표는 먼저 교회가 줄곧 얘기해 온 '선한 영향력'을 새롭게 해석하면 좋겠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은 기독교인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회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 특히 여성 예능인들이 약진한 2019년 MBC 연예대상에서 연예인 박나래·안영미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수상 소감을 말해 화제가 됐다.

오수경 대표는 여기에 남녀 이분법에 갇히지 않고도 전 세대에게 사랑을 받는 펭수까지 언급하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쓰이는 '선한 영향력'이란 사회적 편견을 뚫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선한 영향력은 단순히 '착하고 선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존의 낡거나 잘못된 관습을 변화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교회에 필요한 것은 역시 '미디어 리터러시'였다. 오 대표는 대중문화를 세속적으로 치부해 온 관점이 교회를 사회에서 고립되게 만들었다며 "한국교회가 좀 더 멀리 보고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지향점을 제대로 세우고 현재를 읽어 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한국교회를 봐야 한다. 성경만 열심히 공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고립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덕 연구실장은 교회가 성과 속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눠 대중문화를 반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강의가 끝나고 이어진 2부에서는 오수경 대표와 김상덕 연구실장(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대담이 이어졌다. 김상덕 연구실장은 "기독교는 선하고 세상은 세속적이라고 구분 지어 말해 왔지만, 창조는 모든 걸 품는다"며, 교회가 성과 속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눠 대중문화를 반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틀을 넓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이야기해야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어떻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상덕 연구실장은 "미디어나 언론이 진실을 전하는지 체크해야 한다. '가짜 뉴스'는 믿고 싶은 걸 말해 주기 때문에 유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한 단계 나아가 사실(Fact)인지 진실(Truth)인지를 따져야 한다. 사실처럼 보이는 것도 여러 전후 관계를 따져서 이것이 공정한 것인지,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계속 묻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남성 중심 교회 환경에서 성 인지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오수경 대표는 "교회는 중년 남성 목회자 중심이다. 설교하는 여성, 예배 인도하는 여성은 왜 없는지, 당회에는 왜 여성이 없는지 계속 내부에서 질문을 만들어 내야 한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한 존재들이 현재 있는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수경 대표는 청어람ARMC가 앞으로 더 다양한 논의가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 힘쓰겠다고 했다. 오 대표는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부족하다. 예를 들면 각자의 입장에서 대중문화를 해석할 수 있지만, 그것을 편견 없이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플랫폼과 대화의 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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