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탈진실'(post-truth)은 양극화로 치닫는 현대사회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진실보다 감정 혹은 신념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난민 이슈, 반동성애 운동에 이어 태극기 집회까지 다양한 사회 담론에서 탈진실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탈진실의 세상에서는, 객관적 사실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내용을 바꾸어 버린다. 많은 '가짜 뉴스'가 그렇듯 순도 100% 거짓된 뉴스는 없다. 실제 일어난 일을 분석하면서 음모론이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덧붙여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이것이 가짜 뉴스, 즉 허위·왜곡·과장 정보다.

이런 왜곡 정보들이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블로그 등이 아닌 '언론'을 통해 재생산될 때 문제는 더 커진다. <기독일보>는 1월 23일 "'유럽 기독교에 대한 공격, 지난해 최고치 기록'"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최근 한 단체에서 유럽의 각종 기록을 조사한 결과, 교회, 기독교 학교, 기독교 기념물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고 있는데, 일부 국가에서는 이것이 무슬림 이민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사는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1월 22일 자로 보도한 '반기독교 폭력, 유럽에서 교회 공격 역대 최고'를 거의 그대로 번역해 실은 것이다. 유럽에서 많은 성당이 방화·파손 등 공격을 받거나 사탄을 상징하는 낙서들로 채워지는 등 문제를 겪고 있고, 공동묘지에 있는 십자가상 또한 훼손되는 등 기독교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탈진실'의 세상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화재도 성당에서 일어난 일이면 모두 '반기독교 행위'가 된다. 사진 제공 위키미디어 공용

두 매체가 원자료로 언급하는 곳은 미국의 '게이트스톤연구소'(Gatestone Institute)다. 게이트스톤연구소 국제정책위원회(International Policy Council)는 1월 1일 '유럽: 2019년 반기독교 공격 역대 최고 Europe: Anti-Christian Attacks Reach all time high in 2019'라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서부 유럽에서 발생한 기독교 건물(Christian buildings)과 관련한 폭력 사건을 정리하고 있다. <기독일보>는 '기독교'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대부분 사건이 가톨릭 유적과 관련 있다.

특히 보고서가 인용한 프랑스에서 일어난 '반기독교 폭력'은 상당 부분 '크리스처노포비아'라는 웹사이트에서 가져왔다. 웹사이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이트는 기독교 관련 건물에서 발생한 모든 종류의 사건을 '반기독교' 사건이라고 소개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프랑스 언론들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객관적 정보를 썼지만, 크리스처노포비아는 이를 '의심스러운'(suspect) 화재로 분류했다. 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인종이나 종교 등이 특정되지 않아도 '의심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써서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게이트스톤연구소는 이 같은 사건을 비롯해 서부 유럽에서 발생한 의도를 알 수 없는 여러 폭력까지 전부 '반기독교'라는 카테고리로 묶었다. 정말 성당이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보고서에 나온 내용만 보면 모두 '기독교를 향한 공격'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크리스처노포비아는 물론 게이트스톤연구소도 '극우'로 분류되는 곳이다.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존 볼턴(John Bolton)이 회장을 역임한 이 단체는, 2008년 설립돼 '이슬람 혐오'를 퍼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이트스톤연구소가 만든 반이슬람 콘텐츠들은 독일·프랑스 등 각국 언어로 번역돼, 극우 정당의 난민 반대 정당화를 위한 선전·선동에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 화재가 발생해 프랑스에서도 기독교를 상대로 한 폭력에 우려가 깊다. 각종 예배 처소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화재를 놓고 우파 정치인들 역시 '반기독교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의도가 다양한 여러 폭력 행위를 '반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묶을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

실제로 프랑스 국가인권자문위원회(la Commission nationale consultative des droits de l’homme)가 지난해 4월 23일 발표한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주의와 싸움' 보고서에 보면, 성당 공격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단순 공공 기물 파손 및 절도'였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을 별다른 확인도 없이 그대로 인용한 두 언론은 공교롭게도 재림주 의혹을 받고 있는 장재형과 연관된 곳이다. 장재형은 한국 <기독일보>와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뿐 아니라, 한국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 등 수많은 기독 언론사 설립에 관여했다. 이 매체들은 하나같이 보수 내지 극우 성향 기사들을 생산하며, 서로의 기사를 인용·번역해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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