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 바울 사역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 이야기> / 벤 위더링턴 3세 지음 / 오현미 옮김 / 이레서원 펴냄 / 232쪽 / 1만 4000원

신약학자가 이렇게 소설을 잘 쓸 수 있을까. 책을 통해 로마가 지배했던 고린도 상황과 역사와 배경을 아는 것도 유익했지만, 역사를 재구성하는 저자의 상상력에 더 감탄했다. 드라마를 보는 듯했고, 고린도가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 아이밀리우스의 양자 제안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니가노르 모습이 그려진다. 알렉시아 얼굴을 보며 달아오르는 그의 얼굴이 보이고, 친구 검투사 크라쿠스의 든든한 모습도 느껴진다.

책을 추천한 한 교수께서는 타임캡슐을 타고 그 시대를 여행한 것 같다고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살고 사역했던 고린도의 배경과 문화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당시 법과 신화와 의술과 화폐와 목욕탕과 사법제도와 노예제도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챕터마다 그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룬 읽을거리가 있어 책이 풍성하다. 바울서신 배경사라 해도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던 내용은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 니가노르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에라스도 가정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눈으로 보고 경험하면서 예수님을 더 알고 싶다고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특별한 회심을 체험하고 경험해서 믿기로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하는 가정과 믿는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고 성도가 되고 싶어 하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교회'라고 하면 머리부터 흔들고 부정하면서 "너희나 잘 믿으라"고 하는 시대다. 1세기 예배하는 공동체 모습과 예배자 모습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책을 통해 바울 시대의 사회적·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문화를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가정 보고 변화되는 니가노르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게 된 것이 더 좋았다. 무언가 특별한 게 아니다. 노예라고 차별하지 않고 한 가족으로 여겨 성찬에 같이 참여하도록 기다려 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배려하고, 연약한 자에게 예언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우리 교회를 떠올려 보게 된다.

교회에서 더 상처받고 싸우고 낙심하는 일이 많은 오늘날이다. 교회에 실망해서 떠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교회를 떠나서 가나안 신자가 되는 게 자랑이 아니겠지만, 더 이상 교회다움을 기대할 수 없기에 오랫동안 썩었던 부분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이 땅에 꼭 필요한 교회가 세상에서 불필요한 기관이 된 것 같다. 교회를 떠올리면 감동이 있고 가고 싶어야 하는데, 힘들고 슬프고 기대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도와 예배자를 떠올리면 예수님의 향기가 느껴지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더 독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하게 사는 것 같다. 예수님을 섬기기보다 예수님 이름을 이용해 신의 권위로 자신들 배를 불리고 있다. 에라스도 가정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데, 우리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권위를 끌어와 자신의 욕망과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니가노르가 보고 감동한 에라스도와 카밀라의 가정은 아름다운 초대교회 모습을 보여 준다. 니가노르에게 그렇게 본이 되는 사람이 있었기에, 아이밀리우스에게 유혹을 받는 중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하나님 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신약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 필자는 은혜로운 교회와 경건한 성도 모습을 떠올려 본다. 강요와 억압과 협박과 폭력이 없고 자유와 존중과 배려와 온유가 있는 교회,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거짓이 없고 관용과 이해와 관심과 정직이 있는 성도를 소망해 본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영민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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