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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도 '안전한 대화 공간' 필요해"…'회복적 서클'로 교회 갈등 다룬다
[인터뷰] '교회 내 갈등 조정 및 화해자 훈련 과정' 이끄는 평화교회연구소 반은기 연구원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20.01.23 15:47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설교를 수십 차례 표절한 목사를 취재한 적이 있다. 장로들이 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표절을 부인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교인들 뒤로 숨었다. 교인 100명이 안 되는 교회는 그때부터 목사 편과 장로 편으로 갈라졌다. 예배당 점거와 농성, 각종 집회로 1년 가까이 몸살을 앓던 교회는 결국 목사 측이 모두 떠나면서 갈등을 일단락할 수 있었다.

교회가 둘로 쪼개지고 나서 양쪽 교인들을 만났다. 떠난 쪽이든 남은 쪽이든, 모두 수십 년을 함께한 교인들과 안 좋게 헤어졌다는 사실에 아쉬움과 원망,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표면적 갈등은 끝났지만, 내적 갈등은 여전했다.

교회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할 때다. 교회 분쟁은 이런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대부분 일부가 교회를 떠나 공동체가 둘로 쪼개지는 극약 처방으로 문제가 일단락된다.

평화교회연구소는 교회 내 갈등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회 내 갈등 조정 및 화해자 훈련 과정'을 열고 있다. 올해는 2월 10일부터 2박 3일간 경기 김포시 문수산성교회(황인근 목사)에서 진행한다. '회복적 서클'이라는 대화 기술로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참가자들은 교육 기간에 회복적 서클을 직접 실습하며, 대화와 경청, 공감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운다.

훈련 과정은 평화교회연구소 반은기 연구원이 지도한다. 반 연구원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평화와갈등전환학을 수학했다. 2014년부터는 비폭력평화물결·평화교회연구소 등에서 회복적 서클을 인도하고, 교육청·경찰청 등에서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교회 내 갈등 조정 및 화해자 훈련 과정'과 회복적 서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기 위해, 1월 22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반은기 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회복적 서클은 갈등과 관련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하고 경청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어 크고 작은 갈등이 늘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대개 쉬쉬하거나 '은혜'라는 이름으로 대강 덮으려는 경향이 있다. 교회야말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와 경찰서, 시민단체에서 회복적 서클을 지도하는 반은기 연구원. 그는 대화와 경청, 공감으로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믿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브라질 빈민가에서 시작한 '서클'
10여 명이 둘러앉아 대화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점 도출
최근 학교·경찰 도입 추세

- 회복적 서클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회복적 서클은 브라질 환경운동가 도미니크 바터가 소개한 대화 기술이다. 인디언 공동체가 갈등을 겪을 때 둥그렇게 둘러앉아 대화하는 방식을 참고해 만들었다. 1990년대 중반 브라질 빈민가에서 사용되기 시작해 주변 사회에 퍼졌고, UN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는 최근 교육청·경찰청 등이 회복적 서클을 기반으로 '회복적 생활 교육', '회복적 경찰 활동' 등을 시도하고 있다.

회복적 서클은 갈등 당사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세 단계, 사전·본·사후 서클로 진행한다. 사전 서클에서 중재자는 구성원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해 갈등 상황을 이해하고 본 서클에서 나눌 주제를 선정한다.

본 서클에서는 당사자들이 중재자 진행에 따라 자신들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이들은 경청한다. 본 서클은 내부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자리다.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 겪는 갈등에 대해 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평규 2~3시간에서 최대 8시간 대화를 나누고 나면 참가자들은 스스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점을 도출한다. 이때 해결점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약속들로 정한다. 사후 서클에서 이렇게 정한 해결점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 실제로 회복적 서클로 갈등을 해결한 사례를 소개해 준다면.

한 시민단체에서 대표와 실무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적 있다. 서로 간에 쌓인 감정의 골이 깊어 자칫하면 단체가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서클로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 대표는 그동안 자신이 업무를 지시하는 방식과 표현 때문에 실무진들 감정이 크게 상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대화하기 △감정을 상하게 하는 표현 지양하기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기 등 구체적인 이행 사항을 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교계에서는 회복적 서클이 생소한 개념이지만, 학교나 경찰서에서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고등학교에서 시범 사업으로 도입한 '회복적 생활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다. 2년 동안 학교 폭력률이 7%대에서 0%대로 감소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갈등이 발생했을 때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퍼진 게 계기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같은 경우에는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했을 때 회복적 서클로 이를 해결하기도 한다. 도미니크 바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창 재난과 관련한 회복적 서클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댐이 붕괴해 피해를 본 수십 개 마을이 있는데, 마을 주민과 지자체, 해당 기업이 참여하는 서클이었다.

반 연구원은 처벌만으로는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반은기

- 갈등을 대화로 푼다는 말은 자칫 나이브하게 들릴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잘잘못을 가리고 시벌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학교를 예로 들고 싶다. 일반적으로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가 구성된다. 가해자 잘못이 확인되면 법에 따라 처벌한다. 이러한 방식은 가해 학생은 물론 피해 학생도 완전히 회복시키지 못한다. 가해 학생은 운이 안 좋아서 걸렸다는 식으로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피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억울해하는 경우가 많다.

회복적 서클을 진행한다고 해서 처벌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처벌을 병행할 수 있다. 하지만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회복적 서클에서는 폭력에 가담한 학생과 피해 학생이 함께 대화를 나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가해 학생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진정으로 깨닫고 사과하고, 피해 학생도 온전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

- 모든 과정이 화해와 치유로 끝나지는 않지 않나.

물론 회복적 서클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한국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서클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초기 단계가 가장 어렵다.

회복적 서클은 무조건 용서와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약속을 만들게 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서클을 진행한 단체 중에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싸움만 하다가 결국 해체된 곳도 있었다.

부부가 갈등을 겪다가 서클을 진행한 경우도 있다. 이들은 결국 이혼을 선택했지만, 모두가 동의한 결정이었다. 긴 시간 대화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발견했고, 따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교인들, 기도 제목 나누지만
갈등 상황 나눌 창구 없어
섣부른 조언으로 상처 주기도
대화하는 구조 만드는 일

- 지난해부터 교회 분쟁 해결을 위한 중재자 양성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회복적 서클로도 교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교회에도 회복적 서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 학교 폭력 문제로 학생들 가정을 방문한 적 있다. 4~5곳을 방문했는데 집집마다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1년 넘게 학교 폭력과 가정불화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교회에는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왜 자신들이 겪은 문제를 털어놓지 못했을까, 교회는 왜 이들의 문제를 알지 못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쳤다.

오늘날 교회는 교인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 제목을 나누긴 하지만, 터놓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만한 창구가 없다. "이런 문제가 있어요", "이런 갈등을 겪었어요"라고 하면 목회자들은 조언을 건네기 바쁘다. 사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경청과 공감이다. 섣부른 조언은 이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실제로 회복적 서클로 교회 분쟁을 다룬 사례가 있었다. 재정 담당자가 비리를 저질러 교회 공동체가 갈등을 겪는 경우였다. 담당자는 처벌을 받았지만, 후유증이 컸다. 교회가 나름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담임목사와 교인 모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교인들 간 신뢰 관계가 깨졌고, 목사도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방관하고 있었다.

회복적 서클을 진행하며 목사와 교인들은 서로의 심경을 나눴다. 목사는 솔직하게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교인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교회가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교회가 분쟁으로 깨지는 경우도 있다. 목사가 문제를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교인들이 심각하게 목사를 내몰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교회 자체를 무너뜨리거나 해치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회복적 서클에서 중요한 건 잘잘못을 따지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공동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합의점을 만드는 일이다.

회복적 서클은 갈등 당사자의 자발적 참여를 필요로 한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사진 제공 반은기

- '교회 내 갈등 조정 및 화해자 훈련 과정'에는 어떤 이들이 참석하면 좋겠는가.

최근 한 목사를 우연히 만났다. 작년에 우리 교육을 들은 분이었다. 그는 교회 안에 '평화화해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다고 했다. 교인들이 갈등을 겪으면 안전하게 이야기하며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회복적 서클을 상설화한 것이다. 목사는 교회 안에 갈등뿐 아니라 지역사회 문제까지 함께 다뤄 보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회복적 서클은 교인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러한 일을 함께할 목회자와 교인들이 세미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했다. 그 안에는 싸움을 일으킬 힘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회복할 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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