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신의 은총으로 공소시효가 지난 일입니다." 리옹대교구장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이 2016년 8월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린 주교 회의 기간에 발언한 내용이다. 베르나르 프레나 신부가 1970년대 후반부터 1991년 사이, 가톨릭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참여한 아동 70여 명을 성추행한 사건을 두고 한 말이었다. 프랑스 국민은 분노했다.

1월 16일 개봉하는 영화 '신의 은총으로 Grâce à Dieu'(2019, 프랑수아 오종 감독)는 '프레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바르바랭 추기경 발언에서 가져온 문구를 제목으로 삼았다. 아동 성추행 피해 생존자들이 2015년 '라파롤리베레'(해방된 목소리)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사건을 공론화하는 과정을 그렸다. 진실을 감추려는 가톨릭교회와 진실을 드러내려는 피해 생존자 그룹의 대립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197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간 벌어진 프레나 신부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소재로 다뤘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영화는 프레나 사건 피해자 알렉상드르(멜빌 푸포 분) 이야기로 시작한다. 상류층 출신인 그는 현재 한 가정의 아버지로, 프레나에게 아동 성추행을 당했는데도 가톨릭 신앙을 잃지 않고 지켜 온 40대 남성이다. 프레나 신부가 여전히 아동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숨겨 온 진실을 끄집어낸다. 알렉상드르는 2014년, 프레나의 성추행 사실을 교회에 알리고 추기경과 이메일도 주고받지만, 교회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교회는 오히려 알렉상드르가 프레나 신부를 대면하게 해 용서를 종용하고, 함께 손잡고 기도하게 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 과정에서 프레나는 피해자들 아픔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소아성애는 질환이며 이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문제 제기에도, 교회가 과거의 상처는 긁지 않고 두어야 아물 수 있다며 넘어가려 하자 알렉상드르는 프레나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알렉상드르가 프레나를 고소했다는 소식은 프랑수아(드네 메노셰 분), 에마뉘엘(스완 아르라우드 분)을 비롯한 프레나 사건 피해 생존자들을 '라파롤리베레'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게 한다. 카메라는 알렉상드르-프랑수아-에마뉘엘 순으로 시선을 옮기며 이야기를 전한다. 피해 접수 사이트를 구축하고,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법률 지원을 이어 가는 장면을 관찰자 시선으로 조명한다.

피해 생존자들은 수십 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생생하게 증언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몸서리친다. 혐의를 인정하는 프레나 신부 입을 통해, 그리고 교회와 한 피해자 가족 간 주고받은 서한을 통해 1991년에 교회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바르바랭 추기경 역시 프레나의 아동 성추행 전력을 최소 2007년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축복하는 사제단. 중앙에 있는 사람이 극 중 바르바랭 추기경이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피해 생존자들이 연대해 만든 라파롤리베레 기자회견 모습. 종이를 읽고 있는 남자가 프랑수아. 당시 피해 생존자들은 대부분 40대였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스틸컷

프레나 사건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 성직자의 성범죄와 은폐 시도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올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교구에서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뤘고, 2019년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성역의 범죄'는 스페인 가톨릭 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뤘다. 두 작품 역시 진실을 감추는 데 급급한 교회 모습을 보여 준다.

현재 프레나 신부는 수십 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교회에서 파문당한 상태다. 바르바랭 추기경은 성범죄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신의 은총으로'는 피해 생존자 가족 또한 긴 시간 고통받아 왔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가족들은 교회의 침묵 때문에 함께 고통을 겪거나, 교회 편에 서서 피해 생존자와 다투기도 한다. 이렇듯 성직자의 성범죄는 한 사람의 신념 체계, 한 가족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릴 정도로 치명적이다.

1994년 호주가톨릭교회에서 성추행 사건에 대응하는 보좌주교에 임명된 제프리 로빈슨은 교회의 추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그는 2004년 직분을 내려놓으면서 성범죄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제작 <성 권력 교회>(분도출판사)를 펴냈다. "모든 성추행은 성이라는 형태를 통한 권력 남용이다"(10쪽)고 언급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종교적 믿음을 직접 상징하는 이들에 의한 성추행은, 그 종교가 지금까지 제시해 온 대답들을 무너뜨린다. 여기서 남용된 권력은, 다른 사람들의 은밀한 삶 깊은 곳까지 들어가도록 허용하는 영적 권력이다. 성직자와 하느님 사이의 유대는 떼려야 뗄 수 없으며, 그래서 마치 하느님 자체가 가해자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성추행은 그 종교의 상징들이 지닌 힘을 산산조각 낸다." (269쪽)

영화 '신의 은총으로'나 제프리 로빈슨이 남긴 글은 뼈아프다. 단지 가톨릭교회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도 목회자 성범죄와 교회 및 교단의 은폐 시도 등 숱한 유사 사례를 경험하고 있다.

'신의 은총으로'는 제69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받았다. 영화 '신의 은총으로' 포스터

영화 마지막에 카메라는 "아직도 신을 믿어요?"라고 묻는 아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알렉상드르 모습을 비춘다.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회복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회복의 가능성은 '해방된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울부짖으며 연대하는 피해 생존자들 곁에 어떻게 서야 하는지 고민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제프리 로빈슨이 남긴 아래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성추행은 언제나 교회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그러나 처음 사건들이 드러났을 때 교회가 단호하게, 연민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응답했더라면 그 손상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가장 큰 불만은 은폐와 부인, 그리고 사제와 수도자를 피해자보다 더 중요시하고 그들을 다른 자리로 발령 내는 데 있었다. 모든 사제와 수도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이제 교회는 바로 이 문제에서 기존의 방식을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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