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지정학적(geopolitical)으로 종전의 사회·공산주의 소련과 중국을 북방으로, 자본주의 미국과 일본을 남방으로 두고 이념 대결의 접촉점으로서 위상을 지녔다. 지경학적(geo-economical)으로 해양 경제 세력인 태평양과 상대적으로 소통하기 어려운 추운 툰드라, 건조한 사막지대, 초원을 주 무대로 하는 유라시아를 연계하는 교두보(bridge)와 회랑(corridor) 역할을 해 왔다.

이데올로기가 쇠락해 북방이 열리고 무한한 자원과 많은 인종, 국가들의 개혁, 개방 수요로 중앙아시아와 대륙에 빠른 개발과 성장이 예견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발전이 진행되고 있다. 해양을 통해 남방으로 가는 길은 이미 완전하게 열려 급격한 물류 교류와 자원 소통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되어 서로 하나의 섬으로 존재하며, 북한은 남으로는 오래 차단되어 있고, 북으로는 중국으로 이어지는 가녀린 연결 루트를 따라 물류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한은 남쪽으로는 원활한 교역이 가능하나 역시 북으로는 막혀 육상·해상·항공의 물류 유통이 제약되어 현저한 고비용을 무릅쓰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오늘날 남북·북미 긴장의 근본 원인이다. 남북한을 연계하고 원활한 소통과 물류를 회복하려면 남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 및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경제적 활력을 제고하고, 상호 협력 증진으로 새로운 경제 발전의 근본 틀이 만들어진다. 전 유라시아 발전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유라시아 철도 및 물류, 유통망 구축이 시급하다.

근래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강조한 동아시아 철도 구상은 그 중요한 출발이자 기반이다.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 노선을 경유한 시베리아-유럽 노선은 물론 중국-중앙아시아-중동 노선과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경유한 중국-베트남 또는 중국-인도차이나-인도(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 노선도 가능하다.

이번 중국 청두成都 정상회담(2019.12.24.)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두에서 유럽까지 1만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고속철도를 언급하며 "끊어진 남과 북의 철도·도로가 완전히 이어지고, 한반도에서 중국·유럽까지 그물망처럼 연결되는 유라시아 물류 혈맥의 완성은 다자 평화 안보 체제로 발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한 축이자 동아시아 공동 번영을 위한 방안이다. 이 같은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구상에 중국이 이번에 직접 화답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북미 간 핵 협상이 난관에 부딪혀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 상대의 양보와 선행 조치 또는 완전한 굴복을 요구하는 정황이 유지되는 상황에,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최근 '남북 간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대북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는 내용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상황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중국 청두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summit)에서 "동북아에서 철도 공동체를 시작으로 에너지 공동체와 경제 공동체, 평화 안보 체제를 이뤄 낸다면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 의지를 밝혔다. 그는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러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완화 추진 결의안을 논의한 데 이어, 리커창 총리와 회담하면서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동북아 철도 공동체를 함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방중 기간, 연이틀 동북아 철도 공동체 구상을 밝힌 문 대통령 모습은 이목을 끌 만하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의 대북 공조 대열에서 이탈해 중국·러시아와 함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일부 보낼 수도 있으나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 것이다. 더구나 중·러가 지난달 16일 유엔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고, 미국이 반대하고 나서는 등 대북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민감한 시점인 것은 사실이다.

동북아 철도 공동체 구상은 어려움에 빠진 북·미 협상과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 내겠다는 충정에서 발현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대북 제재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지난달 26일 남북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하고 1년을 맞았지만,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해소하는 일이 중요한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협상한다는 기대를 접고 내년에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상태여서 2017년을 방불하는 긴장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북·미 협상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 등 선제 조치에 나섰지만,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하지 않아 불만이 크다.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하노이 제안도 미국은 거부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 전체 그림을 제시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미 경색은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측이 조금만 뒤로 물러났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쟁점들이었다. 

근래 중국 <환구시보>는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북·미 간 상호 신뢰도 증가할 것"이라고 최근 시평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중·러의 남북 철도·도로 사업을 포함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 초안에 대해 미국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허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일본의 인도·태평양 구상, 한국의 신북방·신남방 정책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 모두의 평화와 번영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략) 평화가 경제가 되고 경제가 평화를 이루는 평화 경제를 아시아 전체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해 8월, 한국에서 한-중, 한-러 간 화물철도를 연결해 동북아 공동 화차 핵심 기술인 궤간 가변 대차를 비롯해 가변 연결기, 제동장치, 화차 구조물의 주행 안정성 시험을 진행했다. 이어, 중국 및 러시아 화차와 연결해 한국과 중국 등이 사용하는 준궤도에서 차량의 주행 안정성을 검증해 동북아에서 철도의 연계 운영 가능성과 비용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제 남북한 철도 연계와 물류 체계의 회복이 동북아 평화와 경제를 위해 절실해졌다.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 능력을 더 고도화하고 핵 폐기는 멀어지는 '제재의 역설'이 작동하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임을 미국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생각과 이해가 다소 다를지라도 길은 열려야 한다.

소통과 교류는 거래 비용을 줄이고, 문명을 교환케 하며,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는 경제사회학의 대원칙이 동아시아 철도에도 적용될 날이 올 것이다. 우리도 막연한 환상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위기 대응 능력을 높여 착실하게 준비해 남북한 평화 교류와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실현 등으로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견인해야 한다. 동아시아 철도와 물류 체계에 대한 준비와 전략을 갖춘 자만이 혜택을 선점하고 지역 평화와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김홍섭 /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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