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1. 괜스레 서두가 길어질 것 같지만 지금 이 글을 쓴다는 게 썩 그리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미리 밝혀 두고 싶다. 관심받는 것에 그토록 목매는 자에 대해서, 그리고 이미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고무되어 한참 우쭐해 마지않는 자에 대해서 굳이 눈길 한 번 더 줄 필요가 있나 싶어서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수많은 언론이 그의 근황을 다루는 마당에 한마디 더 보탠다는 게 다소 객쩍은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한국교회와 보수주의 정치의 만남에 주목해 온 연구자로서, 오늘날 그가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는 존재감을 일부러 외면하거나 얕잡아 보는 것 또한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께름칙한 감정을 눌러가면서 꾸역꾸역 자판 앞에 앉는다.

2. 우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어쨌든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는 지난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종교-정치 지도자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전임 대통령 탄핵 이후 꽤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혼돈에 빠져 있던 보수 우파 진영을 다시 집결시키고, 단시간에 무시 못 할 정도로 세력을 불려 놓은 사람이 바로 전 목사다. 지난해 여름부터 그의 부름에 열렬히 호응한 이들이 천천에서 만만이요, 그가 개최하는 집회 비용 마련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여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서 그의 말 한마디에 '아멘' 혹은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목소리도 우렁찼거니와 그의 명에 따라 기꺼이 '순국殉國' — 이것이 무슨 의미건 간에 — 하겠다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존에 보수 진영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도 전 목사와 함께 한 카메라 프레임 안에 잡혀 보고자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도 심심찮게 연출되곤 했다. 한마디로 전광훈 목사는 지난 한 해 보수 우파 진영에서 확 뜬 스타이자 마지막 회에 등판한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3. 따라서 전광훈의 언행이 거칠든 말든 품행이 방정하든 말든 그는 주목받아 마땅한, 아니 주시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해서 오늘날 막나가는 언행과 사람의 이목을 끄는 쇼맨십을 자기 무기로 삼는 극우 정치인들이 세계 곳곳의 정치판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동방예의지국'이라 한들, 이 세계적 추세에서 예외라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이미 한국 교계는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계속 고수해 오던 속옷의 기능을 제쳐 두고 그걸 목회자 개인에 대한 충성 맹세의 시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시답잖은 말에 희희낙락 '아멘!'으로 화답하는 신자가 적지 않은 곳 아니던가?

전광훈 목사는 새해에도 문재인 대통령 퇴진 집회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4. 트럼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실 최근 들어 전광훈 목사가 취하고 있는 행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그 핵심 '복음주의'(좀 더 정확히는 은사주의) 기독교 지지 세력의 종교 정치적 전술로부터 상당한 영감을 얻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단서의 실마리는 전 목사가 2018년 6월 퓨리탄퍼블리싱을 통해 출간한 스티븐 E. 스트랭 저, 오태용 역의 <하나님과 트럼프>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조심스럽게 추정하건대 전광훈 목사가 최근 1년 반 동안 개신교 안팎의 논란을 무릅쓰면서 취해 온 일련의 선택들은 바로 <하나님과 트럼프>의 내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5. <하나님과 트럼프>가 전광훈 목사에게 주었으리라 짐작되는 영향을 좀 더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이 책 한국어판이 출간된 2018년 6월경 전 목사가 처했던 상황을 잠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전 목사는 19대 대선 정국에서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를 위해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또한, 2018년 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뽑는 선거 과정에서 생긴 잡음과 갈등 때문에 한기총 내부에서 자신을 견제하던 세력, 즉 최성규나 엄기호 목사 등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송에 얽혀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전 목사는 위중한 수술을 한 후 간병인 도움 없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정을 헤아려 보면 <하나님과 트럼프>가 출판된 시점에 전광훈 목사는 그야말로 인생의 최저점을 찍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계 정치판에서 속 쓰린 패배를 맞본 데다가 아픈 몸으로 영어囹圄의 상태에 있었으니, 나름대로는 생사를 오간다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6.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전광훈 목사는 <하나님과 트럼프>를 출판하는 일을 진행시켰고 책 맨 앞부분에 짧게나마 추천사까지 덧붙였다. 거기서 전광훈은 오늘날 전 세계가 "동성애, 이슬람, 북한의 핵 위협" 등의 문제로 "역사상 가장 큰 위험"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지도자로 세워 위에 열거된 '위험'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거라는 기대를 피력했다.

7. 한국 보수 개신교계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친미·반공주의 성향이나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동성애/이슬람-혐오야,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전광훈 목사가 이 책 추천사에서 표현한 정치적 입장 자체는 그리 새롭다 할 게 없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님과 트럼프>에 담겨 있는 내용은 전 목사에게 여러 이유에서 다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 듯하다.

8. 짐작건대 그 이유 중 하나는 2017년 미국과 한국에서 보수 세력의 운명이 극명하게 엇갈린 사실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저자 스티븐 E. 스트랭이 미국에서 이 책을 출판한 때는 2017년 말이다. 그때는 트럼프가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이 선거 결과로 2017년 초 미국에서는 8년 동안의 민주당 집권이 끝나고 공화당 소속의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에 들어서게 되었다. 반면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7년은 한국 보수주의 진영에게 패배와 상처와 얼룩진 한 해였다. 2017년 3월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전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정식으로 인용되었고 그보다 두 달 후인 5월에 진행된 19대 대선의 결과로 9년 동안의 보수 세력 집권이 끝나고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 보면 2018년도 초중반 무렵 전광훈 목사는 말 그대로 깊은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에게 바다 건너 미국에서 들려온 트럼프의 기적 같은 정치적 성공담은 귀가 솔깃한 얘기였음이 틀림없다.

9.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과 트럼프>가 전광훈 목사에게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것은 어쩌면 스트랭이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은사주의적 기독교 관점에 입각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는 방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은사주의적 기독교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적 관점을 지닌 '복음주의' 전통에 속한다 할 수 있고 좁게는 성령세례와 방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오순절 계통의 기독교 부흥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통 속에서 은사주의자들은 성서에서 하나님이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거나 예언자나 사도들이 신비체험을 하고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한 것을 그대로 믿을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에도 세상에서 하나님이 택한 인물들을 통해 그런 이적과 기사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적 입장을 취한다.

10. 이쯤에서 은사주의 혹은 신사도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스케치해 본다면, 그 시작은 1980년대(혹자는 1970년대 후반으로 잡기도 한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풀러신학교에서 선교와 교회 성장을 가르치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와 존 윔버(John Wimber) 등은 세상의 악한 영을 상대로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을 벌여 승리를 쟁취할 필요성을 강조했는가 하면 켄 걸릭센(Kenn Gulliksen)과 마이크 비클(Mike Bickle) 같은 이들은 이 같은 신학적 입장을 기반으로 각각 빈야드(Vineyard) 운동과 켄사스 국제 기도 운동(IHOP)을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이러한 자칭 현대의 '예언자'나 '사도'들은 기성 교회나 교단 테두리를 벗어나 부흥 집회와 세미나,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메시지를 전파하고 공유하면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들은 '통치 신학'(Dominion theology) 혹은 '(하나님의) 왕국 신학'(Kingdom theology)에 입각해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와 사회변혁을 하고자 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정치나 경제 그리고 예능이나 예술 등의 영역으로 이루어진 세속 사회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은사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사회 각 분야에 적극 진출해 정상의 자리에 오르고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11. 이러한 역사를 감안하면 은사주의 계열의 <카리스마 Charisma>라는 잡지의 운영자이기도 한 스트랭이 <하나님과 트럼프>를 어떤 관점에서 서술했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내용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흐름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것으로 드러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런 이야기들이 빛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의 선거전을 후원한 복음주의 진영의 엄청난 지지뿐 아니라 몇몇 은사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의 초기 지지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그것은 여태까지 거의 다뤄지지 않은 관점이다…. (중략) 나는 또한 현대의 선지자들로 인정된 몇몇 종교 지도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들 가운데는 오직 그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방 왕인 고대 바사의 고레스왕같이 도널드 트럼프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고 선거 전에 확실하게 예언한 이들이 많았다. 그 선지자들은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는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자 보시라, 그가 이겼잖은가!"(19쪽)

12. 이 부분만 읽고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1980년대부터 이미 당시 '플레이보이'로 정평이 나 있던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가 장차 대통령이 되어 타락해 가는 미국을 하나님 품으로 되돌릴 인물이라는 한 '선지자'의 예언이 있었고, 2016년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실제로 성취되었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은사주의자들이 트럼프의 인격적 부족함이나 신앙적 무관심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이를 그의 약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돋보이게 하는 자질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록 트럼프가 인간의 눈에는 여러모로 흠결이 많아 보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를 이사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예루살렘에 돌려보내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한 이방 왕 "고레스"에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 이쯤에서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바로 이처럼 기독교 은사주의적 관점에서 서술된 트럼프의 성공담이 전광훈 목사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8년 여름 전 목사가 두 달 정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취한 일련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소 후 전 목사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광화문에서 '건국 70주년 기념식 및 8·15 국가 해체 세력 규탄 범국민대회'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얼핏 이 행사는 그동안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 개신교 세력이 개최해 온 수많은 '구국 기도회'식 종교 정치 집회 중 하나로 비추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 가지 면에서 이 집회는 이전 것들과는 사뭇 결을 달리하고 있다.

14. 그중 하나는 전광훈 목사가 이 범국민대회를 한기총과 별도로 주관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전 목사가 당시 한기총의 (순복음계?) 주류 세력과 관계가 틀어져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엄기호 대표회장 체제의 한기총은 정치적으로 우편향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전 목사가 주도하던 '문재인 정권 퇴진 운동'과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부터 이미 보수 개신교 내부의 주류 세력은 정치권의 구 우파 세력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혹은 중립을 지키면서) 암묵적으로는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데 힘을 실어 주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 2018년만 해도 대다수 주요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은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어 주었고, 그에 따라 '종교인 과세' 등의 문제에서 원하던 바를 어느 정도는 챙겨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당시 한기총 주류 세력이 '문재인 하야'나 '현 정권 퇴진'을 모토로 내건 전광훈 목사의 범국민 집회에 참여할 리는 만무했다. 재미있는 지점은 이 같은 보수 개신교 세력 내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오늘날까지도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나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등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지만 문재인 정권과 어느 정도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전광훈 목사 측은 이들을 비롯한 여러 대형 교회 목사들이 현 정권 눈치를 보느라 광화문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내다가 최근에는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을 '좌파 목사' 혹은 '주사파 목사'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15. 이 '범국민대회'에서 더욱 관심을 끄는 점은 전광훈 목사가 바로 이 대회를 계기로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은사주의자 중 하나인 변승우 목사(사랑하는교회)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변 목사는 신사도 운동과의 관련성이나 과도한 신비주의 혹은 은사주의적 경향으로 아직까지도 국내 여러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트럼프>의 영향 때문인지 전광훈 목사는 여러 교단의 손가락질에 개의치 않고 변승우 목사와 함께 범국민대회를 공동 주최했다. 이 대회에서 전 목사는 변 목사를 보수 우파의 애국심으로 잘 무장된 "젊은 스타 목사"라 추켜세우며 앞으로 그와 힘을 합칠 의사를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러한 전 목사의 기대에 화답하여 변승우 목사는 자신이 담임하는 사랑하는교회 교인들을 다수 동원해 범국민대회에 참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무대에 올라와 마음껏 극우적인 정치 발언을 쏟아 냈다. 그렇게 시작된 전광훈과 변승우의 밀월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2018년 11월에 전광훈 목사는 다시 한번 변승우 목사와 손잡고 '문재인 퇴진 총궐기 대회'를 주관했는가 하면, 12월에는 길자연·지덕·이용규 목사 등 과거 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냈던 이들과 함께 사랑하는교회 헌당 예배 및 임직식에 참석해 변 목사에게 덧씌워진 '이단' 혐의를 벗는 데 적극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지난해 3월 1일 한기총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발언하고 있는 전광훈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16. 해가 바뀌어 2019년이 1월이 되자 전광훈 목사는 다시 한번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도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 한국교회총연합이나 한국교회연합 등 다른 보수 개신교 교회 연합 기관의 등장으로 한기총 자체의 위상이나 그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 전광훈 목사는 큰 어려움 없이 선거에서 이기고 2월 15일 정식으로 한기총 대표회장에 취임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날 전 목사가 취임식을 마친 후 곧바로 2부 행사를 열어 퓨리탄퍼블리싱에서 출간한 두 개의 서적, 즉 2016년 총선 직전에 나온 <이승만의 분노>와 2018년 6월에 나온 <하나님과 트럼프>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책 중에서 전광훈이 직접 저술했다는 <이승만의 분노>는 우남雩南 이승만의 전기 같은 것으로, 그 기조는 일찍이 유영익이나 송복 같은 뉴라이트계 학자들이 2000년대 초부터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재평가하자는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하나님과 트럼프>는 비교적 최근에 미국의 보수 세력이 트럼프를 앞세워 거둔 승리를 은사주의적 기독교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아직도 탄핵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개신교) 극우 세력이 목매어 듣고 싶은 성공담이자 새롭게 모방하고 싶은 종교 정치적 각본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래 놓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 전광훈 목사는 자신의 한기총 대표회장 취임식을 하면서 두 책을 통해 일종의 출사표를 던지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출사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 자본주의, 친미-반공주의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이승만의 '기독교 건국론'에 트럼프식 쇼맨십 정치술과 은사주의 '영적 전쟁'론을 새롭게 가미하여 다시 한번 보수 우파의 부활을 꾀해 보려는 종교 정치적 기획을 담고 있다.

17. 그런데 2019년 전반기에 전광훈 목사는 마침내 한기총의 대표회장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종교 정치적 기획을 마음껏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기총 내에서도 전 목사의 노선에 여전히 불만을 가진 세력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는 데 있다. 대표회장을 뽑는 선거 때부터 전 목사는 공공연하게 한기총을 발판으로 해서 현 문재인 정부에 저항하는 보수 우파의 시민운동을 활성화하고 2020년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을 원내에 진출시키겠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다녔다. 실제로 대표회장이 되자 전 목사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라는 별도의 정치조직을 한기총 주관하는 행사와 엮는가 하면, 몇 달 치 사무실 임대료를 미납하면서까지 외부 정치 활동을 한기총 자체의 살림살이보다 더 중요시하기도 했다. 그러자 한기총 위원들 중에 전광훈 목사의 전횡을 문제 삼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은 전 목사를 상대로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 및 고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부 저항에 직면한 전 목사는 여러 차례 긴급 임원회를 소집해 자기 정적들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키거나 영구 제명하는 방식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18. 2019년 전반기에 전광훈 목사는 변승우 목사에 대한 끊임없는 '이단' 시비 때문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전 목사는 2019년 3월 5일 열렸던 긴급 임원 회의에서 변승우 목사와 이예경 선교사 등 은사주의적 기독교 인사들을 정식으로 소개하고 이들을 한기총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교계 각처에서는 변승우 목사 및 신사도 운동의 '이단성'을 문제 삼으며 전광훈 목사의 독단적 결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전 목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근 한 달이 넘도록 일관되게 변 목사 편에 서서 그의 신학적 입장에 어떠한 '이단성'도 찾을 수 없다고 강변했다. 그뿐 아니라 변승우 목사에게 '이단' 혐의를 제기한 소위 '이단 감별사'들에게 도리어 한기총 명의로 '이단' 판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 내부뿐 아니라 한국 개신교계 전체에서도 상당한 개인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변승우 목사의 '이단' 혐의를 벗기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정점이라도 찍듯 전광훈 목사는 2019년 4월 21일 한기총이 주관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를 변승우 목사의 사랑하는교회에서 개최해 변 목사가 한기총이 인정하는 '정통' 기독교 지도자임을 다시 한번 공공연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해 4월 한기총 임시총회에서, 변승우 목사(왼쪽)가 세운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부흥총회를 한기총에 정식으로 가입시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19. 결론적으로 말해 전광훈 목사는 <하나님과 트럼프>의 한국어판 출판을 계기로 일종의 '은사주의적 전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애초부터 그의 신앙과 신학 전반에 이미 은사주의적 성향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지적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전광훈 목사가 2018년 여름, 그러니까 <하나님과 트럼프>를 출간하고 선거법 위반으로 감옥에서 두 달 정도 있다가 출소한 뒤 취한 일련의 행보들에서는 그 이전과는 사뭇 다른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20. 일단 예전의 전광훈 목사는 한기총이나 기독자유당 활동을 통해 정치·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긴 했으나 일차적으로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 내지는 청교도영성훈련원 원장의 정체성이 좀 더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2018년 여름 이후의 전광훈은 점차 광장에 나가 싸우는 '예언자' 혹은 '투사'의 면모를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19년 여름부터 문재인 정권 퇴진 운동에 전력을 쏟기 시작해 매주 일요일에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 광장에서 예배 형식을 띤 시국 집회를 개최하면서 그 모임을 '광야 교회'라고 지칭하고 있다. 즉 '광야' 같은 광장을 마치 '교회'로 삼겠다는 얘기인데, 이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전광훈 목사는 앞으로도 (적어도 총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 광장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21. 더군다나 전광훈 목사의 최근 설교를 찾아 들어 보면, 요즘 그는 부쩍 자신의 신비체험, 즉 일종의 가사 상태에서 천국과 지옥을 방문하고 왔다는 간증을 자주 하고 있다. 이러한 간증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이를 통해 전 목사는 자신이 '사도'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전광훈 목사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발언이 나온 배경에도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선택된 종교-정치적 지도자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사고방식이나 사용하는 개념들 역시 은사주의자들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다.

22. 마지막으로 사족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빤스'를 입에 물고서 자칭 '선지자'요 '사도'라 일컫는 전광훈 목사에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한 이사야 선지자의 겸양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세상 돌아가는 중심에 서 있는 분께서 이런 직언에 귀 기울일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서명삼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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