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국 교계에 균형 잡힌 신학과 세계관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복음주의 기관들이 반동성애와 극우 편향 인사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이상원 학회장)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원종천 회장) 소속 10개 지회 중 하나로, 2000년 만들어졌다.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원하 교수(고신대), 김동춘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박득훈 목사(성서한국) 등이 학회장을 역임했다. 이들은 기독교 윤리와 가치를 개인의 삶과 사회 전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연구해 왔다. 매년 가을 열리는 정기 학술 대회에서 다뤘던 주제는 △공공신학 △사회적 차별 △직업윤리 △환경문제 등이었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는 그동안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매 학술 대회에서 다양한 인물로 발표자를 구성했다. 아직 반동성애 운동이 교계 전반에 퍼지기 전인 2014년, 학회는 '동성애 특별 포럼'을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반동성애 운동가 길원평 교수(부산대)와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자캐오 신부(길찾는교회)가 함께 발제자로 나왔다.

그러나 이상원 교수가 학회장이 된 2018년부터 정기 학술 대회는 반동성애 일색이 됐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는 2018년 11월 5일 송전교회(권준호 목사)에서 정기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학회는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김종준 총회장) 용인노회와 함께 '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조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주최했다.

주제 발표자는 학회 회원과 외부 강사로 구성한다. 학회는 외부 강사로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동하는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과 조영길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앤에스)를 초대했다. 염 원장과 조 변호사는 각각 '동성애 파고에 맞선 하나님의 의병'과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독재'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논평은 학회장을 역임했던 김동춘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논평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무차별 공격과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가, 참가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용인노회에서 참석한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당신 소속이 어디냐.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놓고 모욕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동춘 교수는 당시 학술 대회가 마치 반동성애·반정부 집회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학술 행사라면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반대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며 "반동성애 강사들 말이 끝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아멘' 소리가 뒤따랐다. 마치 학술 세미나가 아니라 부흥회 같았다"고 했다.

반동성애 단체가 진행한 뉴스앤조이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상원 교수(사진 왼쪽). 뉴스앤조이 박요셉

지난해에는 10월 28일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에서 '낙태에 대한 기독교적 조명'를 주제로 학술 행사를 열었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와 용인시기독교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이번에도 외부 강사는 반동성애 일색이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이명진 소장과 엄주희 부소장이 각각 '복음주의 생명 운동', '헌법이 말하는 생명과 윤리: 낙태죄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해석과 입법 형성'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두 번의 학회를 경험한 일부 회원은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있다. 김동춘 교수는 "이상원 교수가 학회장이 되고 나서 학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쪽 입장에 치우친 이들로만 발표자를 구성해 반동성애·반낙태 흐름으로 몰아간다"고 지적했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 임원을 역임한 한 회원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술 대회를 준비할 때 주제와 강사 선정은 학회장 이상원 교수가 도맡았다. 대개 어떤 쟁점을 주제로 세우면 학술 행사 취지에 따라 양쪽 관계자를 불러 토론을 진행하는데, 이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이런 점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회 보수화가 계속되리라고 전망했다. "학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규모가 작으니 좀처럼 신진 학자가 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학회 사정상 학회장 영향을 받기 쉽다. 이상원 교수나 다음에 학회장이 될 신원하 교수도 이미 여러 차례 회장을 역임했다. 기존 신학자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 이렇게 되면 논조가 보수적으로 흘러가기 쉽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는 학회장 이상원 교수에게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가 받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취재를 요청했다. 그는 "<뉴스앤조이>와는 인터뷰하지 않는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는 외부 강사로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초대했다.

기독교 월간지 <월드뷰>(김승욱 발행인)는 2018년 1월호 주제를 '개혁인가? 보복인가? 적폐 청산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정했다. 편집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 청산에 공정성과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여러 편 게재했다. 이 일은 소위 '<월드뷰> 사태'라고 불리며 교계에 논란이 됐다.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전 이사 이인철 변호사는 적폐 청산이 원칙이나, 문재인 정부가 기준 없이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주장했다. 조영길 변호사도 적폐 청산 적용 대상이 "이전 정권 담당자들에게 집중되거나, 노조들보다는 사용자들에게, 좌파 단체보다는 우파 단체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썼다. 김철홍 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자기 의에 매몰되어 심판자가 되기로 자처한 한국판 자베르들의 칼춤"에 비유했다. 이상원 교수는 현 정권이 주사파에 몸담은 인사를 중용하고 젠더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동성애 독재를 실현하려 한다고 썼다.

2018년 1월호가 발간된 후, 논조에 반대한 일부 편집위원이 사임하고 독자들은 구독을 해지했다. 이들은 <월드뷰>가 발행 기관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손봉호 이사장) 정체성을 훼손하고 정치 편향성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는 2018년 5월 임시총회에서, <월드뷰>와 분리하고 2019년 5월부로 공식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월드뷰>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3대 사역(연구·교육·출판) 중 하나였다. 1989년부터 기독교학문연구회(기독교학술세계관동역회 전신) 회원 간 소식지로 출발해, 2000년대 월간지로 격상됐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는 한국교회에 균형 잡힌 세계관을 보급해 신앙과 삶의 이원화를 극복한다는 사명으로, 손봉호·이만열·강영안·신국원 교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폴 스티븐슨 등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는 국내외 여러 석학의 글을 소개했다.

<월드뷰>가 보수 성향을 띠기 시작한 건 발행인 김승욱 교수(중앙대) 이력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김 교수는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초기 회원으로 실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2010년부터 <월드뷰>를 담당한 그는 제작비를 마련하고 구독자를 모집하며 토대를 닦았다. 초기 <월드뷰>는 정치 편향성을 보이지 않았지만, 김승욱 교수가 2016년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잡지에도 뉴라이트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관계자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김 교수가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면서 내부적으로 시끄러웠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월드뷰> 책임자가 뉴라이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월드뷰>가 그쪽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사회는 김 교수에게 발행인을 사임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2018년 1월호 사태 이후 갈등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월드뷰>는 2018년을 맞아 편집위원을 대거 교체했다. 극우 성향을 종종 드러내던 김철홍 교수(장신대), 한정석 전 KBS PD, 국정교과서 지지 성명을 한 이상규 교수(백석대)가 합류했다. 이외에도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승구 교수(합신대), 조영길 변호사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관계자는 "우리는 보수나 진보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을 넓게 수용하려고 한다. 손봉호 이사장의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단에 치우친 이들이 전체 담론을 장악하는 건 지양하고 있다. 이사회가 편집위원 교체와 공동 발행인 체제를 권면했지만, 김승욱 교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드뷰>는 2018년 5월 동역회에서 분리된 후에도 계속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반동성애 활동가, 보수 성향 인물들이 인터뷰어와 필진으로 합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를 주제로 법무부장관·국정원장을 역임한 김승규 장로(할렐루야교회)를, 12월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북한 주민'을 주제로 김태훈 변호사(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를 인터뷰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반정부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한 인물이다.

이정훈 교수(울산대)는 지난해 11월호에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 공화주의 철학'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트루스포럼 회원들도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를 주제로 기고했다. 12월호에는 이용희 대표(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북한 인권을 다루는 글을 썼다. 올해 1월호에는 정동수 목사(사랑침례교회)와 제양규 교수(한동대)가 필진으로 참여했다.

평소 반동성애 진영이 펼치던 메시지가 <월드뷰>에 그대로 게재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승욱 교수는 1월 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월드뷰> 분리 과정과 논조 변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일부 회원이 <월드뷰> 발행인 자격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리를 강행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느 날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30년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해 왔다. 내 전문 분야(경제학)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소신으로 참여했다. <월드뷰>에 국정 교과서를 지지하는 글을 싣거나 한 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지 내가 국정교과서 필진이라는 이유로 비판했다. 나는 이사회에서 이런 건 부당하다고 설명했다"고 언급했다.

논란이 됐던 2018년 1월호는 편집위원들이 사전에 기획한 의도와 달랐다고 했다. 김 교수는 "1월호 주제로 '사회 통합'을 고려했다. 마침 적폐 청산을 두고 개혁이냐 보복이냐로 사회가 양분된 상황이라, 양쪽 입장을 담아 보자는 차원에서 이를 다뤘다. 보수와 진보 측 각각 3명의 인사에게 글을 요청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진보라고 생각했던 3명 중 1명이 보수 성향 글을 썼고, 2명의 논조는 중립이었다. 안팎으로 우경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해명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좌파·우파 모두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2018년 1월호를 계기로 편집위원에서 사임한 진보 성향 인사 중 몇몇은 내가 추천한 사람이기도 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월드뷰>에 참여하는 필진들이 반동성애·보수 성향 일색으로 교체됐다는 지적에는 "편집위원회에서 진보 측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니 자연스럽게 보수 성향만 남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그는 "편집위원들이 주로 인터뷰어와 필진들을 추천·섭외한다. 그렇다 보니 비슷한 성향의 인물들이 결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욱 교수는 "그러나 자세히 따지면 정치·종교·동성애·경제 등 주제에 따라 각각 지향점이 다른 인물들이다. <월드뷰>가 어느 한쪽 진영에 물들었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기초해서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반론] - 1월 4일 오후 2시 30분 현재

이상원 교수는 1월 4일 학회 운영과 관련해 <뉴스앤조이>에 반론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주제와 강사 선정을 도맡고 일방적으로 학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학회 운영과 강사 선정은 철저하게 학회 임원회에서 논의와 합의를 거쳐 이루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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