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교회 목사들이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성경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성경에 나왔다고 추정되는 내용이 아니라 정말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가르쳐 주면 사람들은 대개 불편해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은 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마 25:31-46).

사람들은 성경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후안 카를로스는 <제자입니까>에서 이를 '내가복음'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나라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나님나라'라는 용어가 설교나 기도나 대화에서 빠져 있다.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하나님나라는 이 단어 자체가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 곧 왕이시다. 왕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통치하는 분이요, 다스리는 분이시다. 인간 세계에서만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요, 만왕의 왕이시다. 하나님이 정치적이지 않다면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성경을 모르기에 미신과 마술 신앙과 같은 잘못된 신앙에 빠졌다고 본다. 성경을 많이 연구했다는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베뢰아 신자들처럼 합리적으로 의심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행 17:11). 생각 없이 성경을 본다면 몇십 년 교회를 다녀도 조금도 변하지 않을뿐더러 미신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하나님을 자기 안에, 교회 안에 유폐한다. 신앙을 원칙·교리에 가두거나, 내면적·개인적으로 축소하는 경향도 있다. 예수님이 오신 '지금'은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기도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에는 갱신설과 소멸설이 있다. 소멸설은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갱신설은 타락하고 부패한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어떤 주장이냐에 따라 사고방식과 행동이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성경에 여러 증거가 있지만,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할 때 '새로운'이라는 말은 네오스(neos)가 아니라 카이노스(kainos)이다. 네오스는 시간과 기원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엉망이 된 이 세상을 구출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 엉망이 되고 고장이 난 세상을 구출(치유·구원)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충격과 감격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구원받은 영지주의자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하늘 위로, 죽음 이후로 보내려고 안달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 세상은 우리가 도피해야 할 장소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말한 대로 "도피적 기독교가 아니라 형성적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영지주의 이단 '플라톤적 이원론'에 빠져 있다. 우리는 세상 너머를 향한 소망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소망을 지녀야 한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어 보면 복음을 좋은 충고로 만들거나,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크 엘륄은 <뒤틀려진 기독교>(대장간)에서 "실천 없는 기독교는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몇십 년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 잘 내고, 새벽 기도 잘 참석하고, 주일에 빠지지 않으면 좋은 신앙이라고들 말하는데, 예수님 말씀을 참으로 오해하고 있다. 매우 슬픈 일이다. 로마 시대에 복음은 왕이 등극하거나 바뀌었을 때와 같은 중대한 소식, 전쟁 승리와 같은 긴박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의미했다. 이렇게 중대하고 긴박한 소식이 곧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카이사르가 아니라 예수님이 복음이시다. 절대적인 것이 없으며 모든 게 상대적인 시대이다. 예수님 사건을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모른다. 기독교는 이제 마음의 종교, 자기 이익에만 신경 쓰는 종교가 되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려 하지 않는다. 자율적 존재가 되어 자기 생각대로 하고자 한다.

부활절마다 세계에서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부활을 기뻐한다. 예수님이 되살아나셔서 하나님나라, 새 창조가 시작되었으며 그분이 왕이 되셨다고 이야기한다. 왕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뤄 가야 한다. 톰 라이트는 "많은 교인이 하나님나라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할 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와 시간>(나단출판사)에서 "예수님을 통해 미래가 현재로 들어왔다"고 언급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것이다. 성육신은 예수님께서 창조 세계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작품 안으로 들어오셨다. 십자가 사건은 역사를 바꿨다. 부활 사건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이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하나님나라는 물질적이다. 그 나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 세워진다. 톰 라이트는 "나는 우리 시대 최대 과업 중 하나가 교회가 하나님나라 주제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가 지금 여기 임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 추구가 좋은 삶의 근본 형태라고 제시했다. 그는 덕이 있는 행동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인간 번영의 궁극적 목표라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대중 심리학이나 대중 설교와 매우 비슷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새 창조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인간을 창조 세계 청지기로 두셨다. 우리는 세상을 다듬고 유지하며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창조 세계가 인간이 자기 책임을 회복하기를 기다린다고 이야기한다. 로마서 8장은 죄가 창조 세계에 미치는 결과를 보여 준다. 창조 세계는 신음과 고통 속에 있다.

우리는 세상 속에 하나님을 반영하려고 하는 것을 '선교'라고 부른다. 세상의 갱신은 새롭게 갱신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세계관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데 결정적 요인이다.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사고와 대조되어야 한다. 성경은 단순히 우리 믿음을 판정하는 규칙이나 교리 묶음이 아니다.

하나님을 일상생활에서 분리한다면, 예수님 이야기는 정통적이고 성경에 근거한 듯한 가르침 수준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경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배제된다. 성경은 이야기식으로 구성돼 있고, 예수님도 이야기로 말씀하셨다. 삼위일체·성육신·속죄·부활 같은 교리를 믿으면서도 영지주의와 공모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알지 못하는 듯하다. 계몽의 세계에서 추상적 교리와 규칙이 '이야기'보다 우위를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을 이 땅에서 낚아채 하늘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독교가 상상력이 부족한 종교가 되고 말았다. 병든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를 극복하시고 죄의 권세를 깨뜨리셨다면, 하나님 백성은 예수님의 승리를 세상 속에 가져와야 한다. 이사야가 본 비전처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평탄해지는 것을 위해 지금 여기서 일해야 한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 요구가 정치가들에게 들리도록 외쳐야 한다.

이 땅이 하나님 통치 아래 있다고 믿는다면, 공공 영역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이 세상의 주님이자 왕이시라고 믿는다면, 사회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쳐야 할 것이다. 내적 삶을 중시하는 그동안의 추세는 공적 영역에서 우리가 자기 믿음에 따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예수님의 주권은 모든 국가의 기관과 조직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부정하고 부패한 거짓 집단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있다. 한 사람의 목사로서 부끄럽다. 자크 엘륄은 <뒤틀려진 기독교>에서 "교회는 세계를 정복하는 혁명 집단"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신칭의' 중심의 교리 싸움에 분주하다.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이신칭의를 강조한 것은 시대 상황에서 매우 중요했다. 복잡해진 지금 이 세상에서는 '복음의 전체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신칭의는 기독교 중심 교리 하나이지만, 행동과 실천이 없다면 이론적 허구에 불과하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이단에 빠지기 쉽다. 성경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하나님나라를 실천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 복음으로 깨어지고 뒤틀려지고 황폐화한 세상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쉐퍼는 "중생은 이제 작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무기 제조업자에게 평화의 도구를 만들라고 지금 외쳐야 한다.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드는 도성을 지금 추구해야 한다. 정의가 이 땅에 가득하도록 지금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교회는 복종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나라를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삶을, 시간과 몸을 고통받는 자를 위해 바쳐라. 지금 마음 상한 자를 위로하라. 지금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라. 지금 굶주린 자를 먹이라. 지금 바로 행하면 하나님나라의 빛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기를 요청받고 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2020년 새해가 왔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나라 지평을 확대해 가는 위대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지금 실천하는 자들이 되자.

박철수 / 목사, 한국복음주의연합 지도위원, 성서한국 이사, <축복의 혁명>·<하나님나라>·<두 개의 십자가>(대장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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