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됐다. 미국 하원의원은 12월 19일, 권력을 남용해 지위를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입하도록 지시하고, 의회의 탄핵 조사 당시 증인 출석을 막는 등 비협조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인 '백인 복음주의' 진영이 균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잡지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12월 19일 '트럼프는 탄핵되어야 한다 Trump should be removed from office'는 제목으로 사설을 내놨다. 마크 갈리(Mark Galli) 편집장은 사설에서, 전통적으로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번 탄핵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고 했다.

갈리 편집장은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다양한 정치적 신념에 부합하는 정의를 따르며,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 사람들을 가능한 한 너그럽게 대하도록 이끌어 왔다"고 언급했다. 그런데도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게 된 것은 "트럼프는 행정부 잘못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으며 그가 사업하면서 보여 준 부도덕한 행동들, 여성을 대하는 방식 등 도덕적 부분과 관련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헌법 앞에 한 서약을 배반했다. 탄핵 과정은 대통령의 도덕적 결핍을 부각했다. 대통령'직'과 미국, 국민의 영혼과 미래에 해를 가했다. 대통령의 그 어떤 긍정적 태도도 지독히 부도덕한 지도자 아래 직면하는 도덕적·정치적 위험과 균형을 이룰 수 없다."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당파적 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0년 전 빌 클린턴 탄핵 때도 부도덕한 대통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사설을 발표했다는 것을 상기했다. 갈리 편집장은 "트럼프가 탄핵되어야 한다는 결정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때문이 아닌 창조주의 십계명을 믿기 때문"이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펜스 부통령과 함께 미국 남부 '바이블 벨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미국 복음주의를 이끈 빌리 그레이엄이 창간한 <크리스채너티투데이>가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자, 그 아들 플랭클린 그레이엄은 잡지를 비난하는 글을 12월 20일 페이스북에 올렸다. 플랭클린 그레이엄은 트럼프의 강력한 우군 중 한 명이었다. 이 글은 현재(12월 24일 오후 1시) 42만 명에게 '좋아요'를 받으며 25만 회 넘게 공유되는 중이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사설의 한 줄에도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크리스채너티투데이>를 공격했다. 그는 아버지가 트럼프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졌으며 "트럼프가 우리나라의 역사적 순간을 위한 사람임을 믿었다"고 썼다.

빌리 그레이엄 아들이 아버지를 언급하며 트럼프를 탄핵 반대에 힘을 싣자,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빌리 그레이엄 손녀 제루샤 듀포드(Jerusha Duford)가 나섰다. 그는 <레드레터크리스천>에 '빌리 그레이엄의 유산 스스로 말하게 하라 Let Billy Graham's legacy speak for itself'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듀포드는 "정치는 사람들을 양극화했고 할아버지는 이를 알고 멀찍이 떨어져 계셨다. 할아버지는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셨다. 복음주의자라면 중간에 서서 양쪽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고 썼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은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에 기반한 트럼프의 이주민 정책들을 비판해 온 복음주의 사회참여 단체 '소저너스' 짐 월리스 대표는, 이번 일이 2020년 대통령 선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2월 20일 <소저너스>에 기고한 글에서 "<크리스채너티투데이> 사설은 백인 복음주의 지지의 견고한 벽에 금을 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한국과 법이 달라 즉각 업무에서 배제되지는 않는다. 빠르면 2020년 1월경 상원의원에서 탄핵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전체 상원의원 100명 중 67명 이상이 찬성해야 최종 파면된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 의원이 53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파면까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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