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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 같았던 2019년의 한국교회
우리들의 내버려 둔 시간…무관심 속 끼이고 떨어지고 부딪히며 무덤이 된 텍스트들
  • 김윤동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12.13 20:05

무엇으로 한국 개신교, 한국 교계의 2019년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역사 속에 우리의 시간을 기록할 때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경적을 울리며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한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말을 내뱉는 (자칭) 한국 교계의 대표 목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단 총회 자리에서 열어 준 '합법'을 가장한 불법 세습,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교회 내 성 관련 사건/사고들, 성서의 이름을 빌려 정당화하는 차별·혐오·배제 등 브레이크 페달이 고장 나 버린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보는 것 같다.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다(로마서 1:26)

요 근래 수 해 동안 교회는 '명확한 선 긋기'와 관련한 움직임들을 보여 왔다. 오랫동안 교인 정체와 감소를 겪은 교계는 그야말로 풍문으로만 들어오던 위기가 몸소 체감되는 시기여서 그런지, 작게는 개교회 내에서, 멀리는 교단 총회나 교단 간 연합체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내부 단속'으로 방향을 정한 듯 보인다.

이전에는 내부에 교리나 결정에 반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더라도 소수자 그룹으로 그 존재를 용인하거나 침묵으로 거부권을 표현하는 등 관용적이면서도 유연한 의사 결정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 일관된 방향을 정하기보다 대사회적인 '이미지'를 고려한다거나 또는 선교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해 왔지만, 이제는 거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그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익집단' 수준의 종파주의적인 결정이 팽배해졌다. 대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차별의 언어를 유통·생산하는 주요 기지가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난민·노동·빈곤·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집토끼'들만의 이익과 입맛에 부합하는 결정만 일관적으로 내고 있다. 교회가 다양한 사람들과 삶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신비를 좇아 달음질하기보다 가장 쉽고 편하게 본능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행동주의적 정치만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성서는 이익집단의 특수한 이익을 관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주술적 기제로서, 어떤 대상을 향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물론 한국 개신교 내 뿌리 깊은 반지성주의, 곧 교회 조직 안위와 보전을 가장 우선시하고 수직적인 구조를 고착시키는 이 풍토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스토리가 해체되고, 맥락으로 성서를 이해하는 태도가 결여돼 있다. 곧 성서가 다양한 사회·문화·역사적인 씨줄과 날줄이 얽혀 있는 텍스트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인용한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고 계속해서 부끄러운 욕심을 부추기도록 내버려 두는 이들 또한 존재한다. 혐오주의자들을 적절히 윤리적으로 타이르거나, 그들의 논리 없는 논리를 비평적으로 분석하며 적대적으로 -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확대하는 효과로 - 재생산하거나, 신랄하게 냉소하거나, 혹은 침묵하며 아예 그런 일이 없는 듯 개인적 신앙으로 초지일관하는 더 많은 수의 '2선의' 혐오자들. 전선의 최전방에 서지는 않지만, 혐오 세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이삭을 줍는 자들이 바로 혐오 세력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둔" 자들이다. 안타깝게도 소수의 극우적인 움직임들뿐 아니라, 냉소와 이기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2선의' 혐오자들에게 제안할 만한 대항적인 신학 담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또한 그것을 위해 연대할 운동과 세력이 너무나 미약하다는 점이 절망적이다. 작금의 현실에 대해 진리적 언술 또는 그런 것들에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람은 과잉적이거나 '아재'스러움의 상징이 되었고, 지식은 곧 "권력"임을 폭로해 철퇴를 내렸던 프리드리히 니체 이후 모든 담론과 운동은 더 이상 편파적이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었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그의 책 <냉소적 이성 비판 1>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제 개념의 활력이나 이해의 황홀경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우리의 사유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계몽되었고, 무감각해졌다. 진리에 대한 사랑이 문제가 아니다. 친구(필로스)가 될 수 있는 그런 지식은 이제 없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돌처럼 굳게 하지 않으면서, 그것과 함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1)

그런 사이에 내버려진 사람들

지난 11월 21일, <경향신문>에서는 세계 경제 대국 7위라는 대한민국에서 '끼임', '떨어짐', '뒤집힘', '깔림',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이라고 기입되어 있는 노동자 1200명의 죽음을 기록했다.2) "오늘도 3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명제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소식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말을 던져 주고 있지만, 무엇보다 왜 이 사회가 서로에게 제대로 된 질문과 문제의식을 던져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해 준다. 우리의 문제의식과 생각의 구조 안에서 어떤 것을 취하고, 어느 곳을 내버려 둘지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정용택 연구실장은 최근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는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본 구원 사건, 더 정확히는 그러한 구원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메시아의 시대의 징조들을 가리킴으로서 예수 자신의 정체에 관한 요한의 질문에 우회적으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눅 4:21)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고 있는 셈입니다. 내가 메시아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이 시간, 예수 운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면밀히 살펴보라는 뜻이지요. 사복음서가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는, 그리고 지금 예수 자신이 직접 언급한 그 모든 예수 사건들,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당하고 있던 이들을 살려낸 그 표적들과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의 선포는 구원의 시대, 메시아의 시대의 징조들입니다. 예수는 지금 요한과 그 제자들에게 시대의 징조를 읽어 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메시아냐 아니냐보다 지금 이 시간, 바로 여기에서, 메시아의 시대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함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 운동이 보여 주는 시대의 징조로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3)

끼이고 떨어지고 뒤집히고 깔리고 부딪히고 물체에 맞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듯 건설 또는 육체 노동의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견고한 남성 중심 문화와 사회구조 때문에, 성적 지향 차이에 대한 혐오와 그에 대한 침묵 때문에, 어그러진 연령차별주의(Ageism) 때문에, 가난하여 임대주택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끼이고 떨어지고 깔리고 부딪히는 것이다. 이것 이상으로 메시아적 징조가 어디 있을까!

집어 들어 읽어라!

"그는 읽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근거이자 준거여야 할 텍스트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세계의 성립 근거를 찾아 아무리 성서를 읽어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책은 읽을 수 없는 것이니까,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이 세계에는 준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만 미쳤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중략) '준거의 공포'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정말 그것이 그 책에 쓰여 있었는지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책이란 그런 것입니다.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정확한 근거를 보여 준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저 자신의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준거의 공포에 사로잡히면서, 그래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추궁해야 합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중략)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4)

일본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사사키 아타루는 저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일화를 자세하게 분석하며 어떻게 그 사건이 일대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건, 곧 '혁명'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는 이 세계 내 질서, 즉 '준거'들과 이를 옹위하고 지속해 더욱 강화하는 주술적 제의, 그리고 그걸 수행하는 사제들의 행동들을 한 단어로 '기도'라고 이야기했고, 그것을 전복하고 혁명하는 것으로 '읽기'를 제안한 것이다.

자신과 정파적 이익이 가둬 놓은 망상에 젖어 있는 이들은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과 관계없이 서로 자신이 '메시아이다! 메시아이다!' 하며 부르짖고 있지만, 조용히 끼이고 떨어지고 깔리고 부딪히며 스러져 무덤이 된 텍스트들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부끄러워하며, 하나씩 그들을 집어 들어 읽어 가는 작업이 절실한 계절이다.

김윤동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기획실장, 사회적 협동조합 노느매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1) <냉소적 이성 비판>, 18쪽.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21830001&code=940100
3) <지금 이 시간, 우리는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https://minjungtheology.tistory.com/1185
4)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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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박일 2019-12-16 10:13:33

    이미 한국개신교는 끝났다

    기복, 무속 신앙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작두춤을 출 뿐이다.

    뭐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은가

    한국개신교는 원래 그랬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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