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산업선교회가 12월 12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주관한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고공 농성 투쟁 승리를 위한 기도회' 설교문입니다. 설교는 영등포산업선교회 최성은 목사가 마태복음 8장 28-34절(마가복음 5장 1-19절, 누가복음 8장 26-39 26-39절)을 본문 삼아 '온 시내가 그를 만나려 나가서 보고'라는 제목으로 전했습니다.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비슷한 이야기는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나옵니다.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해 보면, 예수님께서 가다라(마가복음, 누가복음의 거라사)라는 동네에 가셨고, 귀신 들려 고통받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이 멀리 있는 돼지 떼로 들어가 그 돼지들이 바다로 들어가 몰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 눈이 멈춘 구절은 34절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예수를 만나러 왔는데, 와서 한다는 소리가 우리 마을을 떠나 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요? 아마도 우리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들에게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이었나요? 오늘 본문에 있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귀신 들려 고통 중에 있던 사람이 예수를 만나 해방을 누리고 인간의 존엄한 삶을 회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온 시내가 받아들인 사건은 좀 달랐습니다. 바로 돼지 떼 몰살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고통 중에 있는 한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의 사건을 일으킨 분이 아니라, 그 많던 돼지를 몰살시킨 장본인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고통받던 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 돼지 떼의 무고한 희생을 아파하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돼지 떼는 단지 그들에게 재화였습니다. 그들의 욕망을 충족해 줄 수 있는 물건이요,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어렵게 살찌운, 곧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경제적 이윤이 날아간 사건이었기에 그들이 예수를 이 동네에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게 된 것입니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 우리는 인간의 존엄한 투쟁들을, 생명을 얻기 위한 몸부림을 건조한 욕망의 언어로 묵살해 버립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으로서 존엄의 회복과 욕망의 몰락 앞에서 예수의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결정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제목의 "온 시내가 그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다음 문장을 결정해야 합니다.

12월 12일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고공 농성 투쟁 승리를 위한 기도회' 현장. 이날은 김용희 씨가 CCTV 철탑에 오른 지 186일째 되는 날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늘 화려한 강남역 이 자리에 주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존엄을 회복하고 당당하게 살아 내고자 하는 김용희 동지, 이재용 동지의 음성을 듣고 이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이 마침내 얻게 되는 자유와 정의는 김용희 동지, 이재용 동지만의 자유가 아니라, 인간 존엄의 회복이요 해방이며 하나님나라 정의의 실현이기에 또한 우리의 자유요 정의입니다.

186일이 되는 날까지 스스로를 고립하며 이 자리에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 쓰이는 그날의 소망을 부여잡고 있는 동지들의 믿음에 우리는 오늘 응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재벌이 지금까지 행한 노조 탄압과 인권유린, 한 사람의 삶을 짓밟은 어두움, 그 불의함이 결국에는 쓰러지고 굴복되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쌓아 가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역사의 자리에 함께 있으면서도, 지나치면서도 욕망에 눈이 가리어 이 동지들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거대한 삼성을 바라보고 이윤을 바라보고 욕망의 자리로 바삐 움직인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주님께서 더 놀라운 일을 행한다 하더라도 예수를 찾아가 우리의 욕망을 위해 우리를 떠나 달라고 부탁할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존엄이 밟혀진 이 자리를, 저 멀리 돼지 떼라는 이윤에, 경제적인 가치에, 자본에 쓰려져 가는 이 자리를 우리는 오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항상 그러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들, 외면받는 사람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 고통받는 이들의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기약 없는 자리, 그러나 분명히 승리할 이 자리, 오늘 왔다 그저 가는 것이 미안하여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자리, 한번 오면 나 자신의 초라함과 무심함에 마음이 무너지는 이 자리, 차가운 바람과 높은 철탑 그리고 천막을 보며 안타까워 마음이 무너지는 오늘 이 자리에 주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

또한 새 힘을 얻도록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 전의 이야기는, 가다라에 닿기 전에 갈릴리에서 풍랑을 만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풍랑을 만나 어쩔 줄 몰라하는 제자들에게 하셨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는 말씀으로 한편으로는 책망하며, 한편으로는 일어서고 버텨 낼 수 있도록 격려를 주십니다. 바로 여기가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이 믿음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바라보는 하나님나라는, 그리고 함께 꿈꾸는 하나님나라는 돼지만 쫓고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2000마리도 넘는 돼지 몰살 사건, 엄청난 손실의 사건이나 우리에게는 존귀한 한 사람의 회복과 자유 그리고 정의가 회복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또한 우리 동지들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날, 삼성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 열리는 날, 바로 그날이 될 것입니다.

볼 수 있는 이들만 볼 수 있는 길, 해방을 보아도 자유를 누려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길에 함께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그 사건이 이루어지는 날에 함께 기뻐하고 승리를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최성은 / 영등포산업선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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