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단식
그리고 전광훈

박근혜 탄핵 정권 시대 국무총리이자 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의 8일간 단식투쟁은 적잖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단지 거대 야당 대표가 정치투쟁 마지막 승부수로 알려진 단식을 감행했다는 점만으로도 언론의 관심이 증폭된 것이다.

황교안은 당 대표 취임 후 대여투쟁 공세를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자 민생 투어란 이름으로 장외투쟁을 지속했다. 그러다 수위를 파격적으로 높여 제1야당 대표로는 최초로 삭발 퍼포먼스까지 단행했다. 효과가 없진 않았다. 얼마간 희롱과 비웃음의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퍼포먼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관계자들, 당원들 사이에서 꽃길만 걸어온 관료 출신 귀공자가 아닌 투사 기질로 무장한 강성 지도자란 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일정 부분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의 지치지 않는 관심 역시 장외투쟁과 삭발 퍼포먼스 사이에 흐르는 민생 외면 행보의 공허한 여운에 일정 부분 기인한 것이긴 해도, 대체로 성공적인 이미지 전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행보가 황 대표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로 작동된 걸까. 이번엔 단식이었다. 청와대를 지척에 두고 벌이는 퇴로를 막은 정치 행위로서의 단식 말이다.

사진은 단식 4일째에 접어들었던 때의 황교안 대표. 황 대표는 단식 8일 만인 11월 27일 밤에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29일 자유한국당 대변인을 통해 단식을 마쳤다고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단식을 결심한 직후, 황 대표는 우선 방문 절차처럼 보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장 먼저 전광훈 목사를 찾았다. 다수의 황교안 지지자들은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강조하지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전광훈 목사, 그가 어떤 인물이던가. 문재인 대통령을 사탄에 비유하고 그 비유의 근거로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빨갱이로 규정해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국기 문란과 내란 선동 혐의로 보일 행동을 보란 듯 일삼는 정치 목사가 아닌가. 황 대표는 그를 찾아가 협력을 당부한 것이다. 둘은 마치 운명 공동체, 필사의 공명심을 보유한 결사체가 되어 투쟁 의지를 다잡았고, 대한민국을 지켜 낸다는 명분에다 생명을 담보로 한 비장한 결기까지 포개었다.

전광훈 목사와 황교안 대표가 손을 잡고 서 있는 장면과 아울러, 제1야당의 방문에 한껏 기세가 올라간 채로, 주어가 무엇인지 대체 왜 현직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지 어떤 합리적 근거 제시도 없이 무조건 쏟아 내는 전 목사의 일갈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전 목사와 그 지지자들은 청와대 주변 인근 주택가와 학교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민원 따위는 대의와 상관없는 편협한 투정쯤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두 손 높이 들어 하루도 멈추지 않고 청와대 앞 규탄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하나의 구호 '문재인 하야'를 외치며.

이렇듯 괴기한 스타일의 신념으로 중무장한 종교인의 망상에 날개를 달아 준 황 대표는 이후 자기 몸을 학대하는 수준으로 처절하게 단식을 지속했다. 그사이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일도 벌어졌으며, 주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위중한 사태를 몇 번이고 맞이하면서 많은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단식 농성에 돌입하기에 앞서 11월 20일 전광훈 목사를 찾은 황교안 대표. 사진 출처 너알아TV

출구 없는 단식

황교안 대표 단식의 주요 골자는 좌파 독재를 분쇄하기 위한 3가지 요구 관철에 집중된다.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종료 반대,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 철회가 그것이다. 대한민국 안보가 위중하다는 이유로 내건 지소미아 종료 반대 요구는 아직 불씨는 남았지만 일정 부분 해소된 것으로 평가된다.1) 지소미아 종료 유예 이후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와 청와대 앞을 오가며 전방위적 야성과 결기를 쏟아 내는 황 대표를 찾아 안보 위기 해소에 야당과 뜻을 함께하니 단식이란 극단적 정치 행위를 멈춰 달라고 요청해 왔다. 황 대표는 그 요구에 맞춰 단식을 멈추지는 않았는데, 그가 제시하는 자신의 몸 학대 행위 중단의 기본 조건은 남은 두 가지 요구,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전면 철회에 있었다.

여당이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은 자유한국당이 망국적 선택이라 공격하는 법안 부의를 초읽기에 놓고, 여러 협상 카드를 저울질하며 타협 내지는 대화 전략을 물밑에서 시도해 왔다. 하지만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이란 정치 행위가 돌연변이처럼 파고들면서 출구 없는 출구 전략을 맞이하게 된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도 황 대표 단식 이전엔 공수처 법안은 내주고 선거제 관련 법안은 보류하거나,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의 경우 지역구 의석을 보존하는 형식으로 법안 수정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황 대표가 단식이란 극단적 투쟁 카드를 내밀면서 일치된 단결 투쟁 말고 다른 해법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 단식을 통해 황 대표는 분명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당 대표를 맡은 뒤 원외의 한계를 딛고 일련의 목소리를 내는 동안 지금처럼 리더십이 강고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연출된 상황은 결코 아니겠지만 황 대표는 고통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강한 단식 의지를 보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황 대표가 보여 준 장외투쟁과 삭발 투혼에 이어 풍찬노숙 단식의 비장함마저 목격하면서 여태껏 웰빙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 야당 프레임에선 찾아보기 힘든 투사적 이미지에 숙연해졌다. 숙연함은 자연스럽게 기존 정치인에게선 찾기 힘든, 퇴로나 출구 따윈 생각하지 않는 종교적 결사 의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볼 수 있다. 실로 오랜만에 찾아보는 결기로 평가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묻고자 한다. 과연 종교적 결사 항전 의지는 어디에서부터, 어떤 이유의 출발점을 그 결기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가. 단식은 어떤 경우에서 출발해야 그 행위가 가진 최소한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단식의 역사와 정당성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단식투쟁도 있다. 전두환 정권의 독재정치에 항의해,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김 전 대통령 단식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지폈다.

역대 정치인 중 가장 길게 단식한 사람은 고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 두 사람이다. 둘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 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30일 동안 함께 단식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은 처절함 그 자체다. 그는 세월호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촉구하며 무려 40일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을 지속하다가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의료진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아울러 삼성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다가 쫓겨난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는 올해 6월 10일, 삼성 본사가 있는 강남역 앞 CCTV 철탑 위에 올라 55일간 단식을 진행했다. 원직 복직과 사과를 촉구하며 올라간 후 170일 넘게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이 갖는 공통분모는 한 가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소외자, 정치적 약자가 쏟아 낼 수 있는 보편적인 외침, 특히 정치인으로서는 최후 투쟁 수단으로 꺼내야 할 카드가 단식이란 점이다.

그런데 과연 국회에서 100석 이상 의석수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누릴 수 있는 거의 모든 특권, 기득권을 죄다 누려 온 제1야당 대표가 대여투쟁 방식으로 택한 단식이 위에 열거된 단식의 역사에 정당성의 이름으로 편입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어떤 식으로도 이번 단식의 필연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황 대표의 단식은 오히려 정반대 경우로 읽힌다. 대화와 타협, 조율과 치열한 자기반성, 갱신의 가능성 등, 수많은 선택지를 가진 자유한국당 당 대표인 그가 자신의 위치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박탈하고 퇴로 없는 투쟁을 본격화했던 것이다. 모든 이를 불편하게 하는 극단의 방법으로 말이다.

하나님이냐, 마귀냐
택일의 딜레마

다시 전광훈 목사 사례로 돌아와 보자. 정치를 탐하는 종교인 이미지는 이제 전광훈 목사를 설명하는 당연한 수식어로 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 목사는 자신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성전을 수행하는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자행해 온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물기를 빼고 들여다보면 하나님 아니면 마귀, 자유 우파 아니면 좌파란 이분법을 전면에 제시해 놓고, 성경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이 견뎌 낸 종교 퍼포먼스를 정치 집회에 도입해 선동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정치인 황교안 대표가 이러한 선동의 연속선상에 서서 종교의 정치화를 뒤집은 정치의 종교화를 시도한다는 우려다. 장외투쟁, 삭발, 그리고 단식. 점점 강도가 세지는 퍼포먼스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이 보여 준, 다소 의외지만 그 비장감의 파급력만큼은 막대한 효과를 발산하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황 대표의 단식은 그런 맥락에서 정교분리의 기본 원칙을 망각한, 합리적 선택과는 거리가 먼 극기의 신념을 강요하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의 구국 기도회에나 등장할 법한 금식과 서글플 정도로 닮아 있다.

11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퇴진 집회. 뉴스앤조이 이용필
문재인 퇴진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공수처법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자신들을 이사야, 엘리야, 다니엘 정도로 간주하는 망상의 늪에 빠져 버린 이들의 금식과 이제 끝이 난 황 대표의 강경 일변도로 채색된 슬로건을 성취하기 위한 극한 행동으로 얼룩진 금식. 이 둘은 하나의 매서운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퇴로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마귀,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좌파는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식의 선악 이분법으로 무장한 깃발 아래에서는 현실 정치의 기본 속성인 생물적 특성에 대한 고려, 이를테면 타협과 중재, 대화를 통한 제3의 대안 도출 등의 출구 전략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정치적 타협과 대화는 악에게 굴복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황 대표 말을 빌리면, 그것은 좌파 독재 정권에 무릎 꿇는 것과 동일하다.

상황이 이렇게 치닫게 되는 순간부터 성격과 접근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조심스럽지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청와대 앞 구국 기도회와 목숨을 걸고 벌이는 단식의 주인공이 된 거대 야당의 대표 황교안 사이에 어떠한 차별점도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남는 건 무엇일까. 기독교의 배타적 성향과 독선에 대한 비기독교인들의 야유, 같은 보수 신념을 가진 정치인들 사이에서조차 거론될 수밖에 없는 벼랑 끝 전술을 닮은 단식투쟁이 낳게 될 후폭풍, 끝으로 타협과 조율의 생물적 특성이 거세된 한국 정치 전체의 경화로 국회에 계류된 수많은 민생 법안들, 그 속에서 신음하게 될 한국 사회의 살풍경만 남게 된 것이다.

단식은 금식 기도가 아니다

종교가 신의 명분을 대리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사는 세상은 신의 명분대로 움직이는 신정국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이념, 다양한 공동체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실핏줄처럼 뒤엉킨 복합적 집산체다. 이러한 복합성을 파헤쳐 나가야 할 정치인, 거기에 그 정치인이 기독교적 가치를 갖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자신의 몸을 힘들게 하면서 유사종교적 만족감을 충족하고자 하는 단식의 투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정치와 종교의 기본 전제인 인간다운 삶, 민중의 삶을 지키는 최소 조건 수호에 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모으는 정치 행위에 눈떠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두고 몸부림쳤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김용희 씨는 여전히 절망의 벼랑에서, 기약 없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단식의 생존력, 그 절박함은 이런 것이 아닐까.

황 대표는 결국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단식을 멈춘 뒤, 또 다른 방식으로 벼랑 끝 대여투쟁을 계속하려 한다. 그 결행의 소중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민생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정치인, 그것도 여러 선택지와 대화의 여지를 보유한 제1야당 대표가 종교 행위를 그대로 빼닮은 극단적 단식을 반복할 경우 남는 건 증오와 독선의 상처뿐이라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기 바란다.

주원규 / 성공회대학교에서 구약신학(Th.D)을 전공하고 현재는 동서말씀교회를 섬기고 있다. 소설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JTBC, MBN, <연합뉴스> 등 여러 방송 매체 출연을 통해 세상과 기독교인의 합리적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1) 안보 위기란 지적에 대해서도 충분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지소미아 협정이 파기된다 해서 대한민국 안보가 풍전등화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가 비약과 황망함의 의도를 품고 있다는 전문가들 안목 역시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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