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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넘어 새로운 이야기 쓰려는 기독교인들에게
[서평] 커트 톰슨 <수치심>(IVP)
  • 김효경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11.27 17:34

"아침에 일어나면 혹시 나쁜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목사 고시 면접일이었다. 나는 별도로 예상치 못한 장소로 안내를 받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앞에 앉은 상담과 교수가 설명했다. MMPI 심층 검사 결과, 자기 소멸 충동이 염려될 만큼 내 우울 수치가 높다는 것이다. "혹시, 본인이 평소에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나요?" 연달아 몇몇 질문이 던져졌다. 점점 얼굴이 붉어지고 동공이 커진 채 시선을 낮추는 나를 보며, 내가 평소 어떤 자기 돌봄(self care)을 실행하는지 들으려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수치심에 압도된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너무나 절실했던 강인함과 자신감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폭탄선언을 맞은 이 상황에서 그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썼다. 별 대답이 없자,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목회자가 나를 거들어 주기 위해 상담과 교수들에게 한마디했다. "개척교회잖아. 개척교회 목회자나 선교사들치고 우울증 한번쯤 안 겪은 사람이 어딨어. 상담과 교수들이 목회 현장을 모르고 너무 수치 갖고만 판단하고 그러면 안 돼." 아, 차라리 모른 척해 주면 좋으련만. 그사이에 나는 나 자신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의 톤을 조절할 시간을 벌었고, 가까스로 면접을 차분하게 마칠 수 있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보면, 도덕 기준의 역할을 하며 내면에 울리는 신의 목소리를 죄책감의 발로라고 보고 체면을 잃게 만드는 타자의 시선을 수치심의 원인이라 파악한다. 서구 문화는 죄책감 위에 서 있고 일본의 문화는 수치심 위에 근거하는데, 한국의 문화는 일본의 문화와 거의 유사하다고 하는 베네딕트의 말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국 문화를 체면 문화라고 하지 않던가. 한국인은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고 그 시선 아래 삶을 만들어 간다. 나 역시, 내가 받은 여러 질문을 면접장이 아닌 좀 더 안전한 다른 상황에서 받았다면, 붉어진 얼굴로 억지 미소를 띠는 대신 그간 나도 모르게 힘들어했던 내 마음의 고통을 애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 나는 영락없이 내 얼굴(면)이 중요한 한국 사람일 뿐이었다.

<수치심 - 수치심에 관한 성경적·신경생물학적 이해와 치유> / 커트 톰슨 지음 / 김소영 옮김 / IVP 펴냄 / 304쪽 / 1만 4000원

심리학에서는 이 부끄러움을 주로 수치심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죄책감과 수치심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죄책감은 내가 나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라면, 수치심은 내가 나쁜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죄책감은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수치심은 나를 타인에게서 떼어 놓는다. 이때 나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나의 내면의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신경 발달 측면에서 죄책감은 수치심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다. 이는 우리가 죄책감 없이 수치심을 경험할 수 있지만, 수치심 없이 죄책감을 경험할 개연성은 낮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95~96쪽).

면접 자리에서 벗어난 이후 내내 떠오른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렇게 며칠 동안 수치심의 어깨 위에 올라탄 죄책감의 짐을 홀로 끙끙 짊어지며 숨어들어 가던 차에 마침 이 책 <수치심 – 수치심에 관한 성경적·신경생물학적 이해와 치유>(IVP)를 선물받았다. 동시에,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나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려 깊은 조언을 누군가로부터 들었고, 나는 삶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꾸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상담실을 찾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내 감정이 계속 방치되는 것은 개의치 않은 채 유능한 사람이 되려고 열심을 다하느라 녹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수고가 다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또 나의 재능과 유능함을 하찮게 여겨 '사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내 안의 수치심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놓기 시작했다.

수치심의 발견과 이해

<수치심>의 저자 커트 톰슨은 정신과 의사다. 그는 치유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수치심의 파괴적 영향력이 개인적 차원에 멈추지 않고 우리가 속한 사회 조직 전반에 기하급수적으로 파급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35쪽). 그는 수치심이 작동하는 방식을 신경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여러 임상 사례를 통해 면밀히 파헤친다. 동시에 그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인간 영혼의 근원적 문제를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와 연결 지어 수치심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숨어 있는 데서 나와 치유되도록, 또한 창조적으로 삶을 재건할 가능성에 마음을 열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읽는 내내 "당신의 약함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니 혼자 싸우지 말고 함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먼저 부모들이나 아이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 따르면 수치심은 나를 기꺼이 수용해 줄 것이라 생각한 대상에게, 기대와 달리 무참히 거절당하는 경험을 할 때 내면화하는 감정이다. 물론 수많은 거절을 통해 우리는 관계를 배우기도 하지만, 그 수치심이 힘을 가질 때(어린 시절, 부모나 선생님만큼 커다란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마저 거절하게 되고 스스로를 역겨워할 수 있다. 이런 경험은 분노가 되어 스스로 해소할 대상을 찾게 될 것이다. 여기, 편애를 받은 막내가 있다. 편애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진 형이나 누나가 비교 우위의 쾌락을 경험한다면 폭력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은 갓 태어난 동생의 볼을 꼬집는 아이 모습이나 채색옷을 입은 동생을 노예로 팔아 버린 성경 이야기에 이르는 인류 가정사에서 내내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는 배우자 및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취약한 상태(창 2장의 발가벗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어떻게 친밀함이 커지고 회복력이 자랄 강력한 기회를 만들어 내는지 보았다. 우리는 교회에도 이 모형을 적용한다. 어떻게 해야 교회에서 수치심의 문제를 직접 다루어 수치심이 교회를 통해 치유될 수 있을까? 알고 보면, 교회 안에서 우리가 취약성의 맥락에서 알려지는 과정은 복음 전도와 치유의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가 된다." (238쪽)

또 이 책을 목회자들이 한번쯤 꼭 읽어 보면 좋겠다. 이 시대의 교회, 그리고 그 안에서 맺는 관계가 수치를 넘어서는 치유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참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교회 안에서조차 짧은 시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수치심이 드러나기 전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불가피하게 수치심을 발생시킨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다가갈수록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노출되는 일은 불가피하다. 오랜 기간 거절감으로 형성된 수치심의 정도는 그동안 감당해 온 거절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와 비례할 것이다. 그래서 관계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게 된다. 하지만 이내 서로 긍정적인 모습만 보이는 것은 피곤하고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그런 흠 없는 천사 같은 모습만 보인다면 관계가 긍정적으로 진전될까? 상대에게서 어둠의 질량을 가늠할 수 없다면, 그런 관계는 불안 속에서 더 나아갈 수 없기에 친밀감에 이르기 어렵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맺는 관계란 이런 형태가 되기 쉽다. 자신의 무감각과 두려움을 감춘 채 관계의 적막 속에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돌보는 이들의 돌봄'이 얼마나 절실한지 내내 생각했다.

수치심이 기쁨이 되는 순간

"이 치유와 새로워진 창조적 가능성은 오로지 깊이 연결된 공동체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홀로 결코 해낼 수 없다. 그러한 유형의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처럼 보일 수 있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줄 사람들, 우리가 이 책에서 탐구한 일들을 기꺼이 하려는 사람들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중략)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에서 수치심은 최종 결론을 내리는 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 이야기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도록 초대하시며 그 이야기에서는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심보다 하나님의 기쁨이 훨씬 더 우리의 주의를 끌어당긴다." (282쪽)

나는 여전히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수치심을 마주친다. 수치심에 사로잡힐 때에는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낀다. 완전한 자기 표상(이미지)을 내면에 만들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수치심을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 내면에 찾아온 절망의 책임을 타자와 환경과 하나님께 전가하고, 외부의 어떤 도움과 조언도 거절하고 싶은 상태로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떤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불안과 실존적 한계를 수용하지 않으려고 세워 둔 자기 방어선이 점점 무너지는 경험 말이다.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나는 점점 더 내 한계를 받아들이며,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치유와 회복의 기쁨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은 늘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 같은 관계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조금씩이라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다. 이 책은 그 한 걸음을 꾸준히 걸어가도록 나를 격려해 준 소중한 한 권으로 남을 것이다.

'수치심'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는 이 제목을 보고도 책을 펼칠 용기만 있다면 충분하다. 인간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지닌 저자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사려 깊은 사랑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리다 보면, 당신도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시작점에 분명 서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17쪽)

김효경 / 하나님의 현존을 매일 의식하고 감사의 언어를 개발하고 싶어 한다. 이태원 소재 '레미제라블' 대표로, '기도와 선교하는 공동체 산돌교회' 목사로 도심 속 영성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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