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기술'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왼쪽). 넷플릭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갈무리

곤도 마리에(Kondo Marie)를 아세요? 넷플릭스에서 그녀를 앞세운 프로그램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Tidying Up With Marie Kondo'가 인기를 끌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일본 여성이에요. 평범했던 그녀의 삶은 바꾼 것은 '정리의 기술'입니다. 그녀는 정리 노하우를 담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人生がときめく片づけの魔法>을 2010년 세상에 내놓았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자 미국까지 진출해 넷플릭스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그녀의 '정리법'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풍요에 지친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가난만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습니다. 풍요도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풍요에 지쳐 있는지. 너무 풍요로워서 우리는 지쳐 있습니다. 무기력증에 걸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죠. 풍요의 무기력증을 일깨워 준 인물이 곤도 마리에입니다.

그녀가 가르쳐 주는 정리법의 핵심은 '버리기 기술'입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을 한곳에 모아 보면, 지붕을 뚫고 나갈 정도로 더미가 쌓입니다. 물건 하나하나에 손을 대서, 내 마음이 '설레지' 않는 물건은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법이 얼마나 강력하게 미국인들 가슴을 파고들었는지, 그녀의 이름 'kondo'는 영어 신조어가 되어 '정리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입니다. 'Konvert'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곤마리 정신으로 개종한 사람'을 뜻합니다. 거의 종교 수준이죠.

실제로 그녀의 정리법에 따라 집을 정리한 사람들은 단순히 '좋았다'는 감정을 넘어,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의 정리법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가짐'이자 인생철학이며, 영적인 행위로 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죠. 단지 집에 있는 어지러운 물건들을 정리했을 뿐인데, 삶이 변한다는 게 말이죠.

곤도 마리에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한자리에 모은 뒤, 하나하나 보면서 설레지 않는 물건은 가차 없이 버리라고 권한다. 넷플릭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갈무리

'버리기 기술'은 '설레지 않는 과거'는 떠나보내고 '설레는 기억'은 남기면서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의식(ritual)입니다. 의식이란 종교에서 하는 것이고, 종교의 역할이기도 하죠. 그런데 한 여성이 넷플릭스라는 매체를 등에 업고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곤도 마리에는 종교의 핵심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녀는 종교인이 아닙니다만, 정리법을 통해 종교의 핵심을 무의식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하는 일은 그녀의 정리법이 말하는 것처럼 '남기기 위해 버리기' 기술(art)을 배우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어느덧 '풍요'에 물들어, 우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신앙을 사용하는 데만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가난뿐만 아니라 풍요도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지친다'는 말은 가난이나 풍요 때문에 '나 자신'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가난도, 풍요도 '존재'를 존재하지 못하게 합니다.

기독교 영성에는 '케노시스(kenosis)'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증언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케노시스란 자기를 비워 내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워 내고 버리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 비워 낸 자리에 오롯이 남는 것은 '하나님과 나'입니다. 곧 구원인 것이죠.

저는 곤도 마리에 책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녀는 기독교 신앙인이 아닌데도 누구보다 기독교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믿음은 무엇일까요? 그냥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 기독교인일까요? 예수님은 이를 경계하셨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 무엇을 버리고 있습니까?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잘못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일단 외적인 것 내적인 것 모두 꺼내 놓고, 그 앞에 무릎 끓고 앉아 심호흡하고 경건하게 기도한 뒤, 그것에 손을 올려 놓아 보세요. 그리고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버리고, 설렌다면 남기세요. 설레는 것들 위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 보세요. 우리도 고백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이 변했어요!

장준식 / 미국 실리콘밸리 세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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