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40명이 국가인권위원회법 평등권 침해 차별 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해야 한다는 법률 개정안을 11월 12일 발의했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보수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의 요구에 정치권이 응답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중략),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제2조 3항)을 이유로 고용이나 공공서비스 이용, 교육 시설 혹은 직업훈련 기관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성희롱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반동성애 진영이 문제 삼는 건 '성적 지향'이다.

안상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제안 이유를 보면, 국가인권위원회법 때문에 "사회 각 분야에서 동성애(동성 성행위)가 옹호·조장되어 온 반면, 동성애에 대하여 양심·종교·표현·학문의 자유에 기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 행위 일체가 오히려 차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어 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한국기자협회와 인권 보도 준칙을 제정하여 동성 간 성행위와 에이즈 등 질병과의 관계를 언론에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였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개정안은 2017년에도 한 차례 발의된 적 있다. 당시에는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국회의원 16명이 이름을 올렸다. 자유한국당 민경욱·박덕흠·윤종필·홍문표 의원 등은 이번에도 동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 일색이던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개호·서삼석 의원,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등 다양한 정당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2년 전과 다른 점은 단순히 성적 지향 삭제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원들은 개정안에 '성별'의 정의도 신설했다. 이들은 성별을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생래적, 신체적 특징으로서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를 말한다"고 정의했다.

반동성애 진영은 '성적 지향'을 차별 금지 사유로 명시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개정안 내용은 그동안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것이다. 반동성애 단체들이 학생 인권조례,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제정을 막을 때 개진한 의견과 유사하다. 혐오 표현을 지적하자, '표현의자유 위축'으로 응수하는 것도 반동성애 진영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한 달 전 10월 14일,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소강석 대표회장)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김상복·전용태), 한국교계국회평신도5단체협의회(김영진 상임대표) 등 보수 교계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3의 성적 지향을 삭제하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성명에는 성적 지향 차별 금지가 △동성애를 정상적이라 옹호하며 조장 △동성애 반대하는 표현의자유 박탈 △동성애와 에이즈 연관성 보도하지 못하게 해 알 권리 침해 △역차별로 동성애자 과잉 보호 △성소수자 인권 보호 내세워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제정을 야기한다고 써 있었다.

"2020년 총선 앞두고
자리 지키려는 몰지각한 인식"
"혐오 합세한 의원들 기억해
21대 국회의원 명단서 삭제하자"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 퍼지자, 인권 단체와 활동가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부대표는 정치권이 특정 종교 일부의 주장에 부합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11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은 한 사회의 규칙이다. 이런 식으로 개정되면, 법이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 부대표는 이 같은 의원들 행동에는 공공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대표는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을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건 대표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대표는 국회가 존재를 지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 기본은 다양성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여성에 해당하지 않는 간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추세다. 국가가 나서서 '이 사람은 국민 혹은 인간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와 국회는 다양한 존재의 차이를 인정하고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문정 대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같은 법안을 내 놓은 것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반인권적 인식을 민의民意로 받아들이고 승인하는 것은 큰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감정에 편승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는 몰지각한 인식이 반영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11월 14일 논평을 발표해 "혐오에 합세한 의원들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21대 국회의원 명단에서는 삭제하자"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두 차례(2017·2019년) 개악안 발의에 대해 강력한 의견 표명과 아울러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반동성애 진영은 적극적으로 찬성 운동에 나섰다. 법안 입법 예고 사이트에는 찬성 댓글이 반대보다 4배 정도 많다. 반동성애 활동가들은 관련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성적 지향' 삭제를 적극 찬성합시다", "찬성 서명 부탁드립니다", "국회의원들이 모처럼 똑바르게 상황을 보고 법안을 냈습니다. 통과되도록 적극 찬성하고 기도하십시다"라고 썼다.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 등장한 피켓. 국가인권위원회를 겨냥한 내용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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