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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서초동, 그리고 어딘가에서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탐독의 시간] 최경환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도서출판100)
  • 개봉동박목사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11.11 10:42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

불과 몇 주 전 한국 사회는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사람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에 각각 모여 서로 머릿수와 목소리 크기를 겨루는 데 몰두했다. 100만 300만 1000만. 부르는 숫자가 슬슬 뻥이다 싶던 무렵 10명의 청년이 한 언론사에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라는 릴레이 글을 기고했다. "나는 서초동과 광화문이 아닌 OOO에서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난개발·장애인·기후·불평등 등 자신들이 관심을 두고 있고, 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에 관해 쓴 글들이었다.

이 글들은 오로지 검찰 개혁, 적폐 청산에 몰두해 내가 조국인지 아닌지를 외치며 둘로 나뉘어 있던 한국 사회에 우리가 주목하고, 연대해야 할 다양한 이슈가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었다. 나는 그 기사와, 그것이 공유되는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을 보면서, 나처럼 서초동이나 광화문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홍해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에도 이제 이런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질 자리가 생기는 것인가, 희망 같은 것을 품어 보기도 했다. 물론 희망은 아직 희망일 뿐이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에서 파국 혹은 전쟁을 치르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서초동 사거리에서 10월 5일 열린 '검찰 개혁' 집회 현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광화문에서 10월 25일 열린 제3차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 대회' 현장. 뉴스앤조이 이용필

사실 이런 파국 혹은 전쟁은 교회 안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성경 해석이나 교리를 두고 갈등과 분쟁이 생긴다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지극히 정치적인 이슈가 대부분이다. 노사문제, 대북 문제, 세월호 문제 같은 것은 고질적이고도 치명적인 교회의 갈등 요소들이었고, 지금 광화문과 서초동의 갈등도 교회 안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반대로 교회 안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구닥다리 교리 문제가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확산되는 것도 (이게 정상인가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글을 읽는 당신도 이쯤에서 내 정체가 궁금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 인간은 누구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내 이름이나 나의 소속 교단 같은 것에 관한 질문이겠지만, 결국 당신은 나의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을 파악해야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파악하고 이 글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낄 것이다. 쉽게 말해 당신이 내가 어떤 목사인지를 이해하는 데는 '이 목사는 성경의 무오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6일간의 창조를 어떻게 믿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이 목사는 서초동에 나가는가, 광화문에 나가는가? 이 목사는 조국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더 요긴하고 정확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다.

공공신학, 정치의 문제

교회가 공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당연하다 못해 지겨운 이야기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슬슬 바람이 불더니 연구소가 생기고, 책이 나오고, 유명 목회자들이 설교 시간에 이야기하고 이 개념을 빌려 교회의 방향을 제시한다. 세미나와 포럼도 우후죽순 생겼다. 기존의 몇몇 주제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교회에서 공공신학은 분명한 유행이 되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진영과 개혁 대상으로 지목당한 교회 모두가 공공성과 공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교회더러 '공공성 없다'고 비판하면 그 교회는 교회대로 '유치원도 만들고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 공간도 만든다'고 큰소리치는 식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바꾸고 섬기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슬로건이었고, 거기에 공공신학이라는 세련된 방식의 껍데기를 씌우는 것은 전혀 어렵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현재까지 한국교회에서 공공신학은 주로 교회 개혁이라는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지극히 신학적/신앙적인 방식으로 논의되었다. "교회를 개혁해서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거나, "복음에는 공적 가치가 충분히 담겨 있어 복음이 사회변혁의 근거가 된다"는 류의 주장, 그래서 공공신학이 한계에 처한 교회의 대안 혹은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 주로 논의되는 공공신학의 주류인데, 이것은 '신학적 공공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에 처한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대부분 정치적인 요인에서 기인한 것이 많다. 꼭 현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변화되는 사회구조나 정치제도, 문화적 지형에서 파생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차원에서 살피고 고려해야 하는 점이 많다. 또한 정말로 교회가 사회를 섬기고 사회와 함께 호흡하려면 정치적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신앙보다 정치가 중요한 것이 현실이라면 결국 공공신학은 '신학적/신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도 다뤄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 최근 공공신학의 유행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신학적 공공신학'도 나름대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특히 오늘날 상황에서는 '정치적 공공신학'이 간절히 필요하다.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 공공신학과 현대 정치철학의 대화> / 최경환 지음 / 도서출판100 펴냄 / 224쪽 / 1만 3000원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느라 정작 책 소개가 늦었다. 앞의 모든 이야기는 최경환의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 공공신학과 현대 정치철학의 대화>(도서출판100)를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공공신학 책과 논의가 대부분 신학적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면,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은 '정치적 공공신학'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보여 주는 (적어도 한국에서 현재까지는) 독보적인 책이다.

이 책은 공공신학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규범적 논리를 서술하거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신학적 대답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공공신학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와 담론, 그리고 공공신학이 뿌리하고 있는 이론적·역사적 배경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해서 소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분류와 소개 속에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공공신학의 전체 지형도를 그려 주고, 단지 신학뿐 아니라 공공신학의 가장 큰 이론적 파트너가 되는 현대 정치철학의 논의를 충분히 다루어(오히려 신학보다 정치철학의 분량이 많아 보인다) 공공신학의 정치적 측면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국내 서적이다.

남아공의 신학자 더키 스미트(Dirkie J. Smit)가 공공신학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여섯 가지 이야기를 주된 골자로 삼아 책을 구성했다. 스미트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는 △벌거벗은 공론장에서의 신학 △공적 담론으로서의 신학 △신학과 공론장 △신학과 공적 투쟁 △신학과 글로벌 세계 속에서의 공적 삶 △신학과 종교적인 것의 공적 귀환이다. 저자는 이 여섯 가지 얼개의 맥락에 맞게 현대 신학과 정치철학 담론을 끌어 와 살을 붙인다. 공론장, 공적 담론에 대해서는 시민 종교 논의와 공론장 이론을 끌어 오고, 공적 투쟁이나 글로벌 세계 문제에 대해서는 해방신학 전통과 에큐메니컬,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참여 이론을 다루는 식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공공신학을 학문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입문서 혹은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단지 신학뿐 아니라 인문학·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겸손한 자세로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원화·세속화한 사회에서 교회가 절대적인 진리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세상과 대화하고 함께 변해 가야 한다는 전제로 논의를 진행한다. 이런 대화 과정에서 이미 사회 전반에 형성된 민주주의의 방법, 공론장의 규칙을 적극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적인 공론장의 규칙을 따르고 공공의 정의에 복무하면서 기독교 나름대로 역할과 매력을 드러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만과 독선으로 신뢰를 잃어버린 기독교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자세다.

광화문과 서초동,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광화문과 서초동이 화해할 수 있을까?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화해가 가능할까? 기독교가 이 심각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광화문의 이야기든 서초동의 이야기든 공론장에서 충분히 이야기되고, 서로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양쪽에서 목소리 높이는 동안에 묻혀 버린 이야기들, 작은 목소리들도 똑같이 공론장에 올라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편에 서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더 성숙한 시민 교양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신자들도 좋은 믿음뿐 아니라 성숙한 시민의 소양과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결국 교회가 가진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나 공적인 실천이 교회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것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 더 '정치적인'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를 개혁해서 공공성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공공성이 회복되면 교회가 개혁되는 것이라는, 복음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 '공적인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 교양을 갖추고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신자는 이미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은 이 점을 적실하게 지적하고 성숙한 시민 교양을 갖춘 기독교가 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보여 준다. 광화문과 서초동,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들리는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에 응답하고자 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고 격려하는 책이 되면 좋겠다.

개봉동박목사 /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헤매다가 '또다른숲'이라는 교회를 만들었다. 새로운 신앙의 형태와 습관을 찾는답시고 온갖 잡다한 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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