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리콘밸리 주민이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닌다. 최첨단 과학이 발생하고 적용되는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실리콘밸리 지역에 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뉴욕 맨해튼처럼 이곳이 화려하리라고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조금 발달된 시골일 뿐이다. 풍경이 삭막하기까지 하다. 민둥산과 개발되지 않은 해변 샌프란시스코만에 둘려싸여 있다. 곳곳에 말과 소가 풀을 뜯는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은 묻는다.

"실리콘밸리가 어디에요?"

이곳에는 전 세계 모든 자본과 인재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다. 전 세계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꼽힌다. 인구 10만 명당 박사 학위 소지자 비율이 가장 높다. 자연스럽게 교육열도 매우 높다. 경쟁이 심하다. 한국은 한국인끼리 경쟁하지만, 이곳 한국인 2세는 중국·인도·타이완·베트남 등 아시아, 유럽, 남미 및 전 세계에서 온 수재 2세와 경쟁한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급에 30명 정도 학생이 있다. 다국적 학급이고, 30명 중 10명이 '올 A'를 받는다. B가 하나만 있어도 10등 밖으로 밀려난다.

이곳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에 치인다.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로 연설한 중국 아이는 자기 꿈을 당당하게 말하며, 아이비리그에 들어가 공부한 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아이는 12살밖에 안 됐는데, 그런 말을 한다. 우리 아이도 '앨런 머스크'를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꼽는다. 테슬라자동차 본사는 우리 교회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는 젊은 인재가 몰려 있다. 도시가 활기차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들어 집값이 매우 높고(방 2개짜리 아파트 렌트비가 3000~4000불), 교통 체증이 심하다. 도로에서는 매일 사고가 난다. 트래픽이 심한 시간에는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난다.

실리콘밸리에는 어떠한 철학이 있을까. 바로 '돈'이다. 돈이 곧 철학이다. 실리콘밸리는 자본주의 핵심 지역이다. 이 지역만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세계 경제 11위라고 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돈(자본)이 몰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뜨거운 이슈는 'AI'(인공지능)다.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돈'이 된다는 데 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더 들여다보면 아주 무서운 이야기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이다.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자유'가 아닌 '시장의 자유'를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모든 법과 규제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을 보장한다. 옛날에는 무역 장벽 때문에 시장 확대가 어려웠다. 지금은 무역 장벽이 모두 허물어져서 기업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어렵지 않다.

AI 개발은 시장 영역을, 공간을 넘어 인간의 정신 영역으로 확장한다. 특정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구글이나 아마존에서 검색하면, 며칠 동안 그 물건을 구매할 때까지 인터넷 공간에 물건 정보가 뜬다. AI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소비자 패턴(인간의 정신 영역)을 분석해 소비를 최대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AI를 이용한 기업은 소비자의 정신 영역까지 침범해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주민 입장에서 이 현상을 보면 무섭기도 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가 무섭다. 그 의지로 인간의 정신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무섭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철학을 견지해 실리콘밸리 철학(맘몬 철학)에 맞서 생명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지켜 낼지 고민이다. 기술 발전 뒤에 감춰진 맘몬 신을 폭로하고 저항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두 주인(하나님과 맘몬) 중 하나님을 버리고 맘몬을 숭배하는 배교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내가 이미 맘몬 숭배자가 아닌지 두렵다.

장준식 / 미국 북가주 세화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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