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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끝 안 보이는 싸움…"잠깐이라도 와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
여당·사측 '갈라치기'에 민주노총 노동자들만 잔류…교회협 여성위원회, 연대 방문 및 기도회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9.10.23 14:3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평화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이강래 사장) 본사 2층은 20여 일 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한산했다. 농성 중인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 바로 앞에 앉아 감시하던 경찰들도 모두 바깥으로 철수했고, 함께 투쟁하던 한국노총 노동자들도 현장을 떠났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건물 내부 곳곳에는 바람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직접 고용을 위한 투쟁이 100일을 넘겼다. 대법원이 8월 29일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 소속"이라고 판결했지만, 이강래 사장은 9월 9일 "대법원 판결 당사자만 직접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1500여 명 모두의 직접 고용을 기다렸던 노동자들은 회사 결정에 반발하며, 그길로 한국도로공사 본사 2층을 점거했다.

점거 투쟁 44일째이던 10월 9일, 회사와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박홍근 의원) 중재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대법원 판결 당사자들과 현재 2심에 계류 중인 노동자들만 직접 고용한다는 내용이다. 뒤늦게 소송을 시작해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사측이 임시직으로 고용했다가 각자 결과에 따라 직접 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민숙희 위원장(사진 오른쪽)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400여 명은 이 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노동자 모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회사가 노동자들 편을 갈라 연대를 약화시키고 있다며, 끝까지 남아 싸우겠다고 했다.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빠진 농성장에서, 이들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 투쟁 '옳다' 하셔,
빼앗긴 권리를 찾는 싸움 귀하다"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연대를 표하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여성위원회(민숙희 위원장) 위원 9명이 10월 22일 현장을 방문했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와 함께하는 평화 기도회'에는 노동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오랜 농성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이은주 목사(여울교회)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투쟁이 '옳다' 하신다"며 위로를 전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이은주 목사(여울교회)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이야기가 담긴 누가복음 18장 1-8절을 본문 삼아 설교했다. 이 목사는 권리를 찾아 달라고 싸움을 지속하는 수납 노동자들이 재판관에게 청한 과부와 같고, 그 믿음을 하나님이 칭찬하신다고 했다.

"보다 나은 환경에서 노동하며, 보다 나은 경제적 삶을 누릴 노동 기본권이라는 권리가 나에게 있음을 믿고, 정규직 쟁취를 위해 싸워 온 여러분의 투쟁을 하나님께서는 '옳다' 하신다. (중략) 여러분들은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 과부와 같이 탄원해 왔다. 하루하루 인권이 침해되고 신뢰가 무너지는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내면서도 계속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여러분의 싸움은 너무나 귀하다.

불의에 고통받고 차별에 짓눌리던 분들이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권리를 외치며 탄원하는 그 길을 통해 세상은 더욱 정의롭고 청정해진다. 세상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다고 거짓말한다. 당신들 요구는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어떻게 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 수 있느냐며 경제가 어려워 불가능하다고 우리를 좌절시킨다. 우리는 오랜 세월 그런 말에 호도되고,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조차 모르고 지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저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드시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며, 가능하게 만들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투쟁이 궁극에는 사회를 밝히고 또 정의롭고 평화롭고 약자들이 희생되지 않는 사회로 만드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다. 여러분 힘내시라. 여러분 외침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등불임을 믿으며 굳건히 승리의 길을 걸으시기를 기도한다."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교를 마치고 여성위원회 위원들이 앞에 나와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찬송을 불렀다. 이 곡은 디트리히 본회퍼가 감옥에서 쓴 시에 가락을 붙인 것이다.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눈감고 있는 사람, 두 주먹을 꽉 쥔 채 땅을 보고 있는 사람, 두루마리 휴지 뭉치로 연신 눈가를 찍어 내는 사람, 악보를 보며 함께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위원들의 목에 '톨게이트 직접 고용'이 적힌 보라색 스카프를 둘러 주고 포옹을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함께 손을 맞잡고 공동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노동자들은 톨게이트 투쟁 노동자들의 상징인 보라색 스카프를 위원들에게 전달했다. 김천까지 찾아와 주어 고맙다며 위원 한 사람 한 사람 목에 '톨게이트 직접 고용'이라고 적힌 사각 스카프를 둘러 주고 포옹을 나눴다.

함께하던 이들 떠나 더 고립되는 노동자들
목정평·교회협·느헤미야교회협 지지 방문
"사람 적어도 좋으니 연대 방문 부탁한다"

함께 싸우던 한국노총이 나간 자리가 커 보였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도로공사가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1500여 명이 함께 싸웠는데 처음에는 대법원 판결 해당자와 아닌 사람을 나누려 하더니, 이제는 1심 승소 후 항소심 진행 중인 사람, 1심 변론 마친 사람 등으로 자꾸 나눈다는 것이다.

현재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힘든 것 중 하나는 역시 연대의 약화다. 토평톨게이트 팀장으로 근무하던 이민아 씨는 "사측은 처음부터 우리를 자꾸 가르려고 했다. 한국노총에서 중간에 합의하고 나간 점이 솔직히 조금 힘들다. 일단은 우리도 재정비하고 끝까지 가겠다고 방침을 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기억하고 잠깐이라도 찾아와 주시면 더 힘이 날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대구 한 교회에서 찾아오셨는데 정말 위로와 도움이 됐다.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그냥 오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만 해도 힘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아 씨는 교회들에 연대를 부탁했다. 9월 29일 일요일 처음 예배한 이후 매주 다양한 단위에서 현장을 찾는다고 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나 교회협 대구·경북 지역 목회자들도 주일에 방문해 함께 예배했다. 지난주에는 느헤미야교회협의회에서 주일예배를 맡았다. 이번 주일에는 평화 기도회를 맡았던 교회협 여성위원회가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이다.

또 다른 노동자도 고립되고 있는 상황을 걱정했다. 그는 "어쨌든 연대가 많이 약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남아서 싸우는 것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종교, 시민사회 연대가 큰 힘이 된다. 오늘처럼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가면 더 싸울 힘과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두 손을 마주 잡고 공동으로 축도하며 기도회를 마무리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평택제천고속도로 청북영업소에서 일하던 서경숙 씨는 '단결', '투쟁'과 같은 말들을 본인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우리집 근처에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그분들 싸우시는 것 보면서 속으로 '그냥 다른 곳 가서 일하면 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 씨는 일하면서도 '단결 투쟁' 조끼 입은 사람들을 보면 관심도 없이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 내가 싸우지 않으면 10년 뒤에 내 자녀가 똑같은 일을 겪게 될 것 같다. 그래서 함께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본사에 남아 투쟁을 이어 가는 노동자들의 또 다른 걱정 중 하나는 '추위'다. 현재 노동자들의 구호는 "첫눈이 오기 전에 직접 고용 / 겨울 김장 하기 전에 직접 고용 / 오색 단풍 지기 전에 직접 고용"이다. 한 노동자는 "바닥이 너무 차다. 바람이 곳곳에서 들어와 밤이 되면 엄청 춥다. 성탄절 전까지는 끝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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