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살면 역사와 통하게 되고 예수님하고 교류하게 되는 경험을 가질 거야. 그것이 가장 중요하지. 내가 영웅적으로 산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나를 그렇게 끌고 갔지. 역사가 우리를 만들어 줘. 지금도 누워서 명동 동거우 언덕에 있는 나리꽃 생각이 나…"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침상에 누운 문동환 목사(1921~2019)가 느릿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98세 일기로 지난 3월 9일 별세해 마석 모란공원 민주 열사 묘역에 안장된 그가 CBS 다큐멘터리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에서 남긴 말이다. 엄혹한 시대, 민중신학자이자 민중 교육자로서 민주화·사회운동에 투신한 문동환 목사는 친형 늦봄 문익환 목사(1918~1994) 곁으로 갔다.

'북간도의 십자가'는 문동환 목사가 나고 자랐던 100년 전 북간도 명동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동주·송몽규·김재준·문익환·강원용·안병무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뿌리이기도 한 명동촌을 거점 삼아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던 북간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한다. 실천적 신앙인이었던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식은 하나였다.

역사 작가 심용환 씨(왼쪽)와 문동환 목사(오른쪽). 사진 제공 CBS
명동기독소년회 창립 기념 사진. 1928년 명동촌 선바위에서. 사진 제공 한신대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는 1월 1~2일 TV를 통해 방영된 바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2부로 나누어 방영했던 CBS는 내용을 하나로 합쳐 극장가에 내놓았다. 영화는 10월 17일 개봉한다. 문동환 목사 장례식 장면을 추가하고, 내용을 더 응축해서 편집했으며, 영화음악에 힘을 줬다.

'북간도의 십자가'는 버디 무비 형식을 차용했다. 역사 작가로 알려진 심용환 씨가 문동환 목사를 대신해 북간도의 현장을 살피고, 문 목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 대화하기도 하고, 내레이션으로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북간도 마지막 후예 문동환 역할의 내레이션은 그의 조카이자 문익환 목사 아들인 문성근 배우가 맡았다.

문동환 역할을 맡은 문성근 배우가 "북간도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 배울 학교도, 농사지을 땅도, 뭐든 나누는 이웃도,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계셨다네. 없는 것은 단 하나. 나라뿐이었지"라고 하면, 심용환 작가가 "저도 기독교인이고, 역사를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요"라고 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큐멘터리는 죽기 전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긴 '간도의 대통령' 규암 김약연 목사 일가를 비롯한 다섯 집안이 어떻게 명동촌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유학자였던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북간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는지 추적한다.

1919년 3월 13일 3만여 명이 모여 만세 운동을 했던 서전평야, 무장투쟁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던 철혈광복단의 '15만 원 탈취 사건',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대첩 현장도 영상에 담았다. 이만열·윤경로·서굉일·이덕주 등 원로 사학자들이 십자가와 함께 총을 들게 된 민족주의 기독교 세력의 역사를 해설한다.

'북간도의 십자가'는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통해 100년 전 시간과 공간을 재현한다. 사진 제공 CBS

100년 전 북간도 그리스도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이 물음은 결국 지난날을 기억하는 후손인 우리가 100년 후인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문동환 목사와 심용환 작가의 만남과 대화를 구심점으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내가 일곱 살 때 목사가 되려고 결정을 했거든. '너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었거든. 그러니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김약연 목사야. 목사가 어떤 일 하는 것이지? 생각해 보니 김약연 목사는 목사인 동시에 교사요, 만주 일대 한국인의 지도자거든. 목사가 되겠다는 것은 민족을 위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는 말과 같은 거야."

문동환 목사는 심용환 작가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목사를 꿈꿨던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생명을 이어 가는 거야."

문동환 목사가 김약연 목사의 유지를 받았듯,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문 목사를 비롯한 북간도 명동촌 사람들의 실천적 신앙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역사와 신앙은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문 목사 자서전도 다음 말로 끝을 맺는다.

"내게 던져진 화두를 놓지 않고, 다가올 내일을 꿈꿀 것이다. 바라건대 아직 몸과 마음에 힘이 차 넘치는 젊은 후배들이 내가 못다 한 일들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동환 자서전 – 떠돌이 목자의 노래>(삼인), 594쪽]

문동환 목사 영전 사진. 지난 3월 9일 소천했다. 장례 예배는 3월 12일 고인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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