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삼위일체일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 머리말에서 이전 철학의 문제를 짧지만 난해한 명제로 요약한다. "이 책은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문제로 제기함이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을 (중략) 보여 주고 있다."1) 만약 철학적 문제가 언어의 논리에 대한 무지와 혼동에서 생긴다면, 철학의 중요 역할은 세계를 변화시킬 엄청난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정확히 보여 주도록 언어의 기능과 한계를 밝히는 일이다.

철학과 신학의 본질과 사명에는 차이가 있다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깃든 소중한 통찰을 그리스도인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철학의 문제가 언어의 논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듯, 신학적 문제 대부분은 기독교가 '믿는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 발생한다. 세계 위에 군림하는 창조자, 인간이 고통 받게 내버려 두는 신, 주체적 고민과 결단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신적 예지 등, 오랜 시간 인류가 고민했던 신학적 주제 이면에는 신학의 언어와 논리에 대한 오해와 오용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20세기 초중반 삼위일체론의 재발견을 주도한 칼 바르트와 칼 라너, 블라디미르 로스키 등은 삼위일체적인 언어와 논리를 경시할 때 신학이 곤란에 처하게 됨을 호소력 있게 보여 줬다. 각기 다른 신앙 전통을 대표하고 있다지만, 이들에게 삼위일체론은 단순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과 실천 전부를 아우르는 가르침이자 지혜였다. 즉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개인의 믿음의 영역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계의 일부이자 사회 내 존재로서 우리가 '삼위일체적'인 언어와 논리에 얼마나 충실히 사고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현대 신학에서 삼위일체 신학의 부흥을 간접적으로 증언하듯, 개신교 출판계는 지난 몇 년간 삼위일체론에 관한 국내외 저자의 작품을 입문서부터 연구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소개해 왔다. 그중 최근 출판된 콜린 건턴(Colin E. Gunton, 1941~2003)의 <하나 셋 여럿 - 현대성의 문제와 삼위일체 신학의 응답>(IVP)은 그 구성이나 논의의 밀도로 보아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며, 국내 독자에게 사랑받던 이전의 여러 삼위일체 관련 책과 비교할 때도 그 접근법이나 독창성에서 차별화되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2)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가르쳤던 건턴은 20세기 중후반 조직신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성공회가 주류를 이루는 잉글랜드에서 개혁파 신학자이자 목사로 활동했고, 영미권을 넘어 대륙의 철학과 신학과 활발하게 교류했으며, 서방 신학의 전통에 속해 있으면서도 정교회 신학, 현대 과학과 대화해 삼위일체 신학의 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흥미로운 신학자이다.

건턴은 여러 강의와 저술 활동을 통해 삼위일체론적 시각에서 계시론, 신론, 창조론, 구원론 등을 재해석했고, 계몽주의 이후 서구 문명을 괴롭히는 현대성의 문제를 비판했다. 그는 1992년에 영국의 유서 깊은 신학 강좌인 옥스퍼드대학교의 뱀턴 강좌(Bampton Lectures)에 초청받았고, 이때 진행한 여덟 번의 강연을 모아 출판한 책이 바로 <하나 셋 여럿>이다. 이 책 부제가 보여 주듯 건턴은 하나님을 충분히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세계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로 보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성사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모든 진영으로부터의 비판과 진리를 수용하는 개방성이 이루는 공통의 토대 위에서"(20쪽) 신학과 현대성의 문제를 삼위일체론의 빛 아래서 답변을 시도한다.

<하나 셋 여럿 - 현대성의 문제와 삼위일체 신학의 응답> / 콜린 건턴 지음 / 김의식 옮김 / IVP 펴냄 / 314쪽 / 1만 7000원

그건, 간 때문이야!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의 본질에 대해 하나이냐 여럿이냐를 놓고 의견 대립을 보인 이후 인류가 아직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건턴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두 입장 사이에 벌어진 존재론적 허공 속에서 역사는 추상적 '하나'가 '여럿'을 억압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고, 그 비극적 결과로 세계 내 피조물들이 맺고 있는 다원적 관계는 획일화했다. 서구의 일원론적 경향은 플라톤주의 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만남 이후에도 지속하였고,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로 대변되는 서방 교회 삼위일체론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성보다는 신적 통일성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건턴의 진단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신학자가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충실히 사유하지 못해 추상적인 절대자 개념에 묶였고, 결국은 하나님과 세계 혹은 피조물 사이의 관계성과 타자성이 자아내는 긴장을 지탱해 줄 사상적 기반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중세가 허물어지며 근대 세계가 들어선 이래 일어난 다양한 비판적인 해체적·다원주의적 운동은 하나와 여럿의 균형을 맞출 지혜를 결여한 현대인이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현대의 많은 사회적·정치적 사상이 하나에 대한 여럿의 봉기로, 그리고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성의 봉기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잘 알려진 대로 니체에 의해 가혹하게 내려졌는데, 결국 여럿이 자유롭기 위해 하나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찾고 있는 현대성의 표지들 중 하나는, 현대성이 파르메니데스적 과거에 맞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억압적 하나에 맞서는 여럿의 반란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45쪽)

통일성의 기반인 '하나'에 대한 의심과 증오가 특징인 현대성이 노출하는 여러 문제의 밑바닥에는 타자이신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간의 주관적 의식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거나, 후자로 전자를 대체하려는 시대정신이 있다. 이는 신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공간'空間에 대한 감각을 없애 버리면서,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명목 아래 각자의 개별성을 억압해 버리고 만다. "만약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 공간이 없다면, 또는 사물들에게 존재할 공간을 주는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 사이에 있는 그리고 우리 자신과 개별자들의 세계 사이에 있는 공간을 잃는데, 이 공간이 없이는 우리가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한다."(97쪽) 따라서, 우리에게는 각자의 개별성을 함몰하지 않으면서, 서로 관계를 이어 줄 공간을 마련해 주고 지탱해 줄 존재론이 필요하다. 나와 너 사이의 부적절한 '간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간을 건강하게 해 줄 무언가가 처방되어야 한다.

삼위일체론의 '치유적' 해석

서구 지성사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건턴은 하나와 여럿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를 적절히 중재해 줄 제3의 요소가 없다면 둘 사이의 긴장이 결국은 파괴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하나와 여럿'의 신비로운 공존, 즉 하나님의 한 본성(ousia)과 세 위격(hypothesis)을 함께 사유하며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언어화한 삼위일체론의 지혜에 의지한다면 이제껏 어긋나 왔던 지성사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즉 '하나'에 대한 '여럿'의 반란 결과 극단적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정서주의 등이 심각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치유'하는 데 삼위일체론이 기여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서구의 존재론과 삼위일체론에 대한 '대안적' 읽기를 시도하며, 건턴은 아우구스티누스보다는 이레나에우스를, 독일 관념론의 대표 철학자인 칸트와 헤겔보다는 영국의 낭만주의자 콜리지를, 서방보다는 동방의 삼위일체 신학을 선호한다.

건턴은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위격(hypothesis), 코이노니아(koinonia) 등의 삼위일체론 개념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며 '하나와 여럿의 신학'을 전개한다. 그는 줄기차게 삼위일체론적 맥락에서 육화된 로고스인 그리스도를 통해 "여럿을 희생시키지 않는 하나 개념"(268쪽)을 보여 주려 하고, 성령께서 "공간 안에서 그리고 시간을 통해 형성되는 개별자"(268쪽)를 완성하심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삼위일체론적 창조신학을 전개해 이전의 철학과 신학에서 불충분하게 다뤘던 세계의 물질성과 관계성, 다원성과 다양성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추구한다. 즉, 각자 구별되면서 서로 연결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계는 본질적으로 '관계-안에-있는 존재'이다. 인간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창 1:28) 한편으로 인간도 근본적으로 '관계적' 존재임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창조 세계가 인간의 '문화적 활동'의 매개를 통해 하나님과 더 풍성하고 고유한 관계로 들어감을 보여 준다. 따라서,

"하나님과 세계는 자신들의 존재를 관계 안에서 갖는다고 말해야 한다. (중략) 신학적으로 말해, 창조된 세계가 참으로 그 자신이 되는 것은 - 자신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은 -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성부의 보좌 앞에 온전히 드려질 때다. 창조와 구속에 대한 합당한 인간의 반응인 찬양의 제사는 인격적인 세계도 비인격적인 세계도 모두 자신의 참된 존재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의 형태를 취한다." (290쪽)

이처럼 서구 문명, 특히 현대성의 문제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진단하고,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추구해 나가는 건턴의 논증은 꼼꼼히 읽으며 따라갈 가치가 분명히 있다. 물론 삼위일체론의 개념과 발전사에 대한 전이해나, 신학과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1992년에 진행된 강연이다 보니, 그가 묘사하는 대표적 사상가(예를 들면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모습이 이전 세대 해석자들이 그렸던 전형적 틀에 갇힌 듯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자기 고유의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서구 지성사와 신학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다 보니, 과거에 대한 단순화된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도 있다. 삼위일체론을 인류의 오랜 문제를 해결해 줄 마술 방망이처럼 사용하던 몇몇 사회적 삼위일체론자로부터 건턴이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가 설명한 것에 비해 삼위일체론적 존재론이 현실을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지 궁금해할 독자도 있으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이 책이 여덟 차례의 연속 강의로 이루어진 만큼, 그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문제들을 다른 저작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음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뱀턴 강좌에 기초한 <하나 셋 여럿>은 읽고 나면 좋은 강의를 들은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강의 현장의 생생한 기분이 책에 묻어나서가 아니라, 넓은 사유와 번뜩이는 직관에 직접 노출될 때 시야가 확대되고 깊어지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탁월한 지성이 사용하는 생생한 언어 덕분에 나의 생각과 행동을 알게 모르게 제약해 오던 선입견과 두려움이 깨져 나갈 때 생기는 자유로움과 자신감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현대성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찾고 있거나, 실제 삶에 있어 삼위일체론이 왜 중요한지 궁금하거나, 현대 신학에 흥미가 있거나, 아니면 이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읽고 고민해 봐야 할 책이 바로 건턴의 <하나 셋 여럿>이다.

김진혁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서울: 책세상, 2006), 15.
2) 콜린 건턴, 『하나 셋 여럿: 현대성의 문제와 삼위일체 신학의 응답』 김의식 옮김 (서울: IVP, 2019). 이하 이 책에서 직접 인용할 시 본문에서 ( )의 쪽수로 표시하기로 한다.
3) 뱀턴 강좌는 영국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이면서, 솔즈베리대성당의 참사회원인 존 뱀턴(John Bampton, 1690~1751)의 유증으로 1780년에 시작되었다. 뱀턴의 뜻에 따라 '기독교의 중요 교리를 확증하고, 이단을 논박하는 데' 목적이 있는 뱀턴 강좌는 그 주제와 접근법의 진지함과 참신함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18세기 이래 매년 개최되다 20세기 들어서는 2년에 1번씩 진행되고 있는 뱀턴 강좌가 그 명성과 영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학자라도 강연자로 잘 나서지 않는 것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M.A.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만 강연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 혹은 성공회 소속이 아닌 학자는 1952년 이후 뱀턴 기금이 후원하는 사룸 강좌(Sarum Lecture) 시리즈에서 강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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