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아이들은 탁상공론 대상이 아니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한 여성이 손을 들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을 성소수자 자녀를 둔 가톨릭교인이라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장내 긴장감이 돌았다.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11년 전 알게 됐다. 다음 날 아침이 됐는데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어디 가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해 1년은 기도의 시간이었다. 동성애를 심각한 죄로 여겼던 나는 하나님께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바꿔 달라고 매일 울며 기도했다. 그러자 어느 날 하나님이 이런 응답을 주셨다. '살아 있는 존재를 억지로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존재를 보는 시각은 바꿀 수 있다'고."

4대 종단 지도자가 모여 '인권'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인권센터(박승렬 센터장)가 9월 3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연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 마당'에는, 임보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강현욱 교무(원불교인권위원회), 퇴휴 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박동호 신부(천주교인권위원회) 등 개신교·원불교·불교·가톨릭 종교인과 시민 40여 명이 모였다.

4대 종단 인권 단체 관계자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논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발언자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하늘 씨는 종교인들 발제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성소수자와 부모가 겪는 상황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성소수자와 부모가 정기 모임을 찾아오는데, 처음에는 대다수 부모는 사색이 된 채로 온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느냐며 '치료법'를 묻는 이도 있다고 했다.

하느님은 매번 기적을 베푼다고 했다. 하늘 씨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온 부모들이 반나절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온갖 혐오와 차별로 가득했던 생각이 달라져 있다.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모임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비보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하늘 씨는 지난주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정기 모임에서 처음 만난 성소수자 학생이 얼마 안 돼 하늘나라에 갔다는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 부고를 믿기 어려웠다. 성소수자 부모들 중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너무 많다. 이들은 탁상공론의 대상이 아니다. 매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살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를 뼛속 깊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영혼을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임보라 목사 "진보 진영도
성평등·인권 앞에 의견 분분"
조혜인 위원장 "인권·평등 견인할 종교계,
오히려 뒤에서 당기는 상황"

임보라 목사(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성서가 차별과 혐오를 철저히 대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성소수자 부모의 일침에 네 종교 지도자들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들은 이날 개신교를 포함한 네 종교가 교리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인정하고 평등과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이런 가치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임보라 목사는 "성서는 차별과 혐오를 철저히 대적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일부 개신교는 차별과 혐오를 양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웠던 개신교가 성평등이나 인권이라는 의제 앞에 의견이 갈린다는 게 가슴 아프다. 인권 감수성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됐다. 개신교가 다변화하는 사회에서 한 개인의 존엄성에 어떻게 접근할지 아직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보수 교계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은 예민한 문제다"고 말했다.

박동호 신부는 가톨릭은 모든 인간에 신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론상 혐오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동성애를 무질서로 단정했지만,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시각이 달라졌다. 성소수자 이슈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원인도 다양하기 때문에 교회가 어떤 식으로든지 이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리와 현실 사이에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간격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한국은 성소수자 이슈를 대화 주제로 삼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몇 년 전에는 성소수자 단체가 가톨릭회관을 이용하려고 하다가 당국이 취소한 사건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한국 가톨릭이 세계 교회의 보편 교리를 선택적으로 외면하거나 선택적으로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현욱 교무는 원불교가 사람과 사람, 계급과 계급 간 벽을 허무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원불교는 기득권 계층이 구축한 체제가 개인 간 차이를 만들고, 이것들이 차별과 혐오를 양산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벽을 없애 개개인이 온전한 존재로 나아가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무는 원불교가 이와 같은 교리를 지녔지만 사회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원불교는 내부 문제에만 몰두해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은 가끔씩 할 뿐이다. 내부에서는 성소수자 등 사회 이슈에 원불교가 적극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는 타 종교에 비해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분위기다. 퇴휴 스님은 "불교는 기본적으로 부처의 탄생부터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은 모든 생명이 높고 존귀하며 평등하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교리적으로 본다면 불교도 혐오나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이제 우리는 다인종·다민족·다문화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평등은 헌법이 강조하는 가치다. 그런데 종교계가 이를 토대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더 많은 논의와 설득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 도중에는 청년외침의 특별 공연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종교와 나이를 떠나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감상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야기 마당에 참여한 조혜인 공동집행위원장(차별금지법제정연대)은 종교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공동체가 평등하고 정의로워지기 위해서는 모두 동등한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를 견인할 종교계가 오히려 뒤에서 거꾸로 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 과정을 이길 것이라고 희망한다. 인권에 관심을 보이는 종교 지도자들이 뒤에서 법이 통과되도록 힘써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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