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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기본 소득'의 신학적 근거
교회협 신학위원회 기본 소득 토론회…"하나님이 선물로 준 '공동 부', 공평하게 나눠야"
  •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승인 2019.09.18 15:23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 소득'을 주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제는 미국 대선 경선 레이스에도 등장했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뛰어든 앤드류 양(Andrew Yang)은 전국 성인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발전으로 소매상이 몰락하고, 기술 발전으로 트럭 운전사들이 실직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위기에 근본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모두에게 돈을 나눠 주자는 제안은 파격적이다. 아직도 '사회주의 공약 내지 포퓰리즘 아니냐'는 오해를 사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경제적·신학적으로 기본 소득 도입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양극화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 신학위원회가 9월 17일 감신대에서 '기본 소득과 신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강남훈 교수(한신대 경제학과)는 경제적 관점에서 기본 소득을 바라봤다. 강 교수는 앤드류 양의 말처럼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는 감소하고,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가 벌어지는 '탈동조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본 소득 공약을 내건 앤드류 양을 지지한다는 강 교수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발표했다.

기본 소득 제도를 도입하자는 경제학자 강남훈 교수는 '공동 부'(Common Wealth)를 이야기했다. 모두가 쌓아 올린 부이므로 특정 기업이나 사람이 아닌 모두에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강남훈 교수는 경제지표들이 인류의 장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나란히 같은 성장률을 보여 왔던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은 1970년대 이후 서로 벌어지고 있다. 2012년에는 노동생산성이 241% 증가하는 동안 실질임금이 108% 증가해 130%의 격차를 보였다. 강 교수는 뱀이 입을 벌리는 듯한 그래프를 보인다고 해서 이를 '뱀 아가리'라고 명명했다. '뱀 아가리' 현상은 1인당 실질 GDP, 민간 고용, 중위 가계소득 등에서 전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6년 CNN 조사에 따르면 상위 1%가 전체 부의 20% 이상을 가져가고, 하위 50%는 전체 부의 12%를 가져가는 상황이다. 강 교수가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를 조사한 결과 2016년 18억 9000만 원이었던 개포동 은마아파트는 2018년 28억 6500만 원으로 약 9억 7000만 원이 올랐다. 중위 소득값의 약 42배가 2년 만에 아무 노동 없이 생긴 것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강 교수는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꼽히는 대기업·공무원·공기업 등 소위 '좋은 일자리'는 경제활동인구의 10% 정도라고 했다. 강 교수는 "경제활동인구의 약 60%가 불안정 노동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세대의 절반 이상은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상황이 이렇기에 '기본 소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개념이 급진적이거나 새로운 것도 아니라고 했다. 미국 건국의 토대를 놓은 토머스 페인이 기본 소득 개념을 제시한 바 있고, 마틴 루터 킹도 소득이 낮아 백인 식당에 들어갈 수 없는 흑인들을 위해 '빈자들의 운동'(Poor People's Campaign)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허버트 사이먼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수가 기본 소득 도입을 주장한다는 점도 소개했다.

기본 소득을 주장할 만한 근거도 있다. 강남훈 교수는 "모든 사람은 공동 부(Common Wealth)의 소유자"라고 했다. 아마존·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은 개개인의 검색 데이터를 취합해 상위 뉴스나 검색 결과를 내놓고, 알파고는 수백만 건의 바둑 기보를 모아 인공지능을 만든다. 안면 인식 기술 또한 수백만 장의 사진이 있어야 개발이 가능하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개개인의 수많은 데이터가 모여 형성되는 것이므로, 모두에게 지분이 있다는 것이다.

강남훈 교수는 "공동 부라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설령 지식처럼 인간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으로 만든 것 아닌가"라고 했다. 공동 자산은 특정 기업이 독점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알래스카는 석유 생산 수입을 공동 부로 보고 주민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고 했다.

정용한 교수는 구약의 희년, 신약의 하나님나라 개념이 오늘날 기본 소득의 신학적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기본 소득이 오늘날 사람들에게 자유와 회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신학계는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신학자들은 공동으로 <성서·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경제>(공적신학과교회연구소)라는 책을 두 번에 걸쳐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신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세계 경제를 투기 자본주의화할 위험성 △과도한 경쟁으로 노동 현장을 잔혹화할 위험성 △약육강식 정글 경제로 인한 경제적 희생자 양산 △공정한 분배라는 성서적 가치 훼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신자유주의의 반신앙적 본질에 대한 교육 강화 △세상의 경제 질서와 하나님의 경제 정의 사이에서 생명 살림의 목회적 모델 창조 △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 △시민단체 및 에큐메니컬 단체와의 협력 △하나님의 경제에 대한 희망 선포를 내놨다.

정용한 교수(연세대)는 이러한 연구 결과가 유의미하다면서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관점까지는 제시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적 진영 논리를 고려할 때 종교 영역에서 구체적 제안을 내놓기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미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관점보다는 성서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용한 교수가 주장하는 구체적 대안은 '기본 소득'이다. 정 교수는 구약의 희년 사상과 신약의 하나님나라 개념에서 기본 소득 정신을 읽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일정 주기마다 소유권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희년 정신'은 기본 소득 도입 근거가 되며, 복음서 속 예수의 일성一聲에서도 이 희년 정신에 근거한 '자유'와 '회복'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예수의 첫말을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소개한다. 누가복음은 '주의 은혜의 해'를 소개한다. 정용한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한다. 마태복음 기록을 알고 있었을 누가복음이 왜 '주의 은혜의 해'를 소개했을까. 4장 18절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에서 단서를 찾았다.

정 교수는 '해방'과 '자유롭게 하다'에 대응되는 헬라어 '아페시스'는 원래 죄(하마르티아)와 함께 나오는 단어라고 말했다. 유일하게 이 구절에서만 죄와 함께 언급되지 않고 '자유'라는 뜻을 의미한다고 했다.

정용한 교수는 이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가치가 '자유'와 '회복'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 '하나님나라'를 천국이라는 내세적 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예수가 행한 하나님나라와 희년 사역은 자유와 회복을 위해 먼저 이 땅에서 지금 경험해야 하는 가치"라고 했다.

정 교수는 "기본 소득 지급으로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수익이 각자에게 보장된다면, 누구나 경쟁과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강제된 노동과 과열된 노동시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유와 자유가 주어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본 소득 논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기본 소득이 급진적일 수 있지만, 예수의 삶과 가르침 자체가 그러했다고 했다. 예수는 공생애 기간에 상처받고 억눌린 사람들과 함께했고, 제자들에게도 이를 가르쳤다. 만일 예수의 가르침이 내세적이기만 했다면, 예수는 스데반처럼 종교범으로 몰려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로마제국에 위협이 되었고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했다.

정용한 교수는 "기본 소득은 이 땅 가운데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갇히고 억눌린 이들을 향해 자유와 회복을 선포하는 예수의 이상을 담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노동 때문에 서로가 더 소외되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할 때 이 땅에서부터 희년과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 소득 도입 논의는 앞으로 더 활발하게 연구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바울의 성경 구절을, 노동의 일하지 않을 권리 등과 연계해 더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다소 급진적이어서 부담이 되더라도 더 많은 신학자가 미래 사회의 문제를 실천적으로 고민하고 연구 결과를 내놓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교회협은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 갈 계획이다. 10월 8일에는 윤자영 교수(충남대 경제학과)가 '사회적 인구구성의 변화(고령화·저출생 상황, 부양과 양육의 문제)와 기본 소득', 홍인식 목사(순천중앙교회)가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해방신학, 그리고 기본 소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한다. 10월 29일에는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녹색당)이 '생태 위기, 차별적 고통 상황과 기본 소득', 이정배 교수(감신대 은퇴)가 '생태신학과 지구의 미래, 그리고 기본 소득'이라는 주제를 맡아 이야기한다.

교회협은 10월 두 차례 더 기본 소득 강연을 연다. 인구 문제, 생태 위기 등과 연계해 기본 소득 필요성을 논의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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