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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 이스라엘 왕조에 피바람을 일으키다
[박태순의 교양으로 읽는 성서] 왕조시대⑪ 예후의 반란
  • 박태순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9.19 10:21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님시(Nimshi)의 손자이며 여호사밧 아들인 예후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두 왕을 모두 죽이고 정권을 잡습니다(열왕기하 9장). 예후는 28년 동안(기원전 841~기원전 814년) 다스립니다. 그의 후손들은 다섯 세대를 걸쳐 예후 왕조를 이룹니다(기원전 814~기원전 743년).

열왕기하 8장 28절~10장 28절에 자세히 묘사돼 있는 폭동은 나중에 호세아 예언자도 언급합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호 1:4)."

예후는 아합왕의 아들 70명을 포함해 오므리 왕조 잔존 세력을 추적해 대학살을 벌입니다.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11)."

아합이 죽은 뒤에도 세력을 떨치던 이세벨도 이스르엘에서 예후에게 살해됩니다. 이세벨은 자기 왕궁의 창문으로 내던져졌으며, 그 시체는 개들이 먹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최악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왕하 9:30-36). 이들은 이세벨의 처절한 종말을 열왕기상 21장 23절 엘리야의 예언과 연결시킵니다.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왕상 21:23)."

대학살은 계속 진행되어, 아하시야 친척인 유다 사람들까지도 학살당합니다. 아하시야도 오므리 왕조 후손이므로 예후의 숙청 대상이 됩니다(왕하 10:12-14). 마지막으로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도 대규모 학살을 당합니다(10:19).

예후의 숙청 가운데 이 부분은 여호와 신앙과 바알 신앙 간 대립으로 묘사됩니다. 아합 왕조는 반-여호와 신앙의 선봉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방 종교 척결 차원에서 예후를 종교 혁명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왕하 10:18-28). 이 사건은 아마 아시리아 군대가 몇 년간 휴식 기간을 보내고 시리아 남부로 돌아간 기원전 841년경 일어났을 것입니다.

검은 오벨리스크(Black Obelisk)

오스틴 헨리 레어드(Austen Henry Layard)는 1846년 티그리스강 동편 님루드(Nimrud)에서 살만에셀 3세의 흑색 기념탑이 발견합니다. 사각형의 기념비에는 한 면에 다섯 장면씩 살만에셀 3세에 관한 이야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탑에는 예후가 아시리아 군주 앞에 절하는 장면이 담겼으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예후의 공물; 그로부터 은, 금, 금제 사플루(saplu)–주발, 바닥이 뾰족한 꽃병, 금제 컵, 금제 양동이, 주석, 왕이 드는 홀, 목제 푸루후."

예후는 쿠데타로 왕이 됐는데, 왜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적혀 있는 것일까요?

실제로 예후는 오므리의 아들이 아니며, 님시 손자 여호사밧 아들입니다. 오므리 왕조를 반역하고 새 왕조를 세웠지만, 아시리아 입장에서 예후는 이스라엘 왕이었기에 잘 알려진 오므리 왕조의 연속으로 본 것 같습니다. 성서에는 기록돼 있지 않으나 실제로 예후가 오므리의 후손일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어떤 학자(Tammi Schneider)는 일처다부제가 일상이던 이스라엘 왕실에서 예후가 오므리의 여러 아내 가운데 한 명의 소생이었다고 의견을 제시합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기껏해야 먼 친척 정도였을 것이며, 이마저도 불분명합니다(Nadav Na'aman).

살만에셀 3세에게 절하는 예후. 검은 오벨리스크에 글귀와 함께 새겨져 있다. 런던 대영박물관 보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이렇게 예후가 아시리아 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모습은 오랜 동맹국 관계였던 다메섹의 하사엘을 자극했습니다.

다메섹의 하사엘이 등극(기원전 838년)해 있을 때, 아시리아 살만에셀 후계자 샴시-아다드 5세(기원전 823~기원전 811년)가 형을 제압해 왕권을 찬탈하는 것으로 아시리아 왕궁의 반란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아시리아의 힘이 약해집니다. 하사엘은 이때를 기회로 삼아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에서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사엘은 기원전 835년, 모압 국경인 와디 아르논까지 요단 동편 전역을 장악합니다.

"이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요단 동쪽 길르앗 온 땅 곧 갓 사람과 르우벤 사람과 므낫세 사람의 땅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과 바산까지 하였더라(왕하 10:32-33)."

하사엘은 예후의 배반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북이스라엘을 침략합니다. 이스라엘은 예후 후계자인 여호아하스가 통치하고 있었으며, 군사력이 엄청나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하사엘은 별 어려움 없이 해안평야를 따라 샤론 평원의 아벡과 블레셋 땅까지 점령했습니다. 하사엘은 파죽지세로 유다 예루살렘까지 위협했기에 여호아스는 성전과 왕궁의 보고에 모은 엄청난 공물을 죄다 아람 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하사엘은 블레셋 땅과 유다 땅을 점령해 주요 해안 도로인 비아 마리스의 관할권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요단 동편 왕의 대로 북부를 지배했으며, 팔레스타인을 통과하는 상업적 거래를 독점했습니다. 이로써 다메섹은 이집트와 아랍 무역 이권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예후 반란의 원인

예후는 왜 이스라엘 왕조에 피바람을 몰고 왔을까요? 성서 저자들 관점에서 이 반란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오므리 왕조, 특히 아합이 자기 백성들을 지나치게 착취한 것이 피할 수 없는 반역 원인입니다. 일찍이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한 이유로 엘리야에게서 멸망이 예고됐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중략) 이스라엘의 아합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중략)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 21:17-19)."

한 나라의 왕이 자기 백성 소유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왕비와 모의하는 지경에 이르자, 여호와는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아합을 징벌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엘리야 제자 엘리사에 이르러 성취됩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중략)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중략)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왕하 9:1-3)."

둘째,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이방 혼합 종교 정책을 펼친 것과 이를 꾸짖는 선지자들을 억압한 종교 정책이 원인입니다.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왕하 9:7)."

오므리 왕가 지배층의 사마리아 왕실과 선지자 집단 사이에 갈등이 드러나는 이 이야기에서, 기원전 9세기 이스라엘 왕국에서 벌어진 실제적인 종교적·정치적 긴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므리 왕조에 대한 정치·경제적 불만에서 예후의 반란이 성공한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이제까지 북이스라엘 영향력 아래 있던, 모압과 남유다의 지배를 받던 에돔의 성공적 반란 때문에 생긴 경제적 침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손실은 왕의 대로로 오가던 대상 무역을 통해 이익을 볼 가능성을 크게 감소시켰을 것입니다.

둘째, 오므리 왕조에 대항하는 반란이 발생할 결정적 환경을 제공한 것은 요람왕이 전쟁에서 입은 심각한 상처였습니다.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왕하 8:28)."

요람왕은 하사엘과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예후의 반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됩니다.

다메섹의 패권 아래서

그런데 열왕기하 8~9장이 분명히 밝혀 주듯, 오므리 왕조 종말을 재촉한 것은 모압이나 아시리아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반-아시리아 동맹국 다메섹이었습니다. 하닷에셀이 기원전 845년에 죽고, 하사엘이 다메섹 왕이 된 뒤 반-아시리아 동맹은 와해된 것 같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려고 요단 동편으로 진군한 데 있었습니다.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왕하 9:14)."

아하시야와 요람이 힘을 합쳐 길르앗 라못에서 하사엘과 싸우는 일은, 지금까지 다메섹 하사엘을 중심으로 뭉쳤던 반-아시리아 동맹 관계를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아군이었던 다메섹에 대항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를 북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다메섹을 자기 통제 아래에 두었던 원래의 관계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둘의 갈등은 교역로 통제와 관련한 무역 이익에 따른 충돌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대결 장소가 상업상 중요한 교차로인 길르앗 라못(선지자 엘리야의 고향)이었다는 사실이 그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이미 북이스라엘 힘으로는 다메섹을 이겨 내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이 1993년 발견한 '텔 단 비문'에 잘 나타납니다.

"(나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죽였고, 나는) 다윗의 집의 (왕인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를 죽였다. 또 나는 (그들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그들의 땅에서 (사람의 자취를 쓸어) 버렸다."

비문에서 아람 왕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람 왕은 분명히 하사엘일 것이며, 비문이 기원전 835년 무렵 북왕국 이스라엘 침공 이야기를 전해 준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왕하 9:14).

북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가 끝나고,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내적으로 상당한 혼란에 빠집니다. 반-아시리아 동맹도 깨지고, 동맹이었던 다메섹에게 침략을 받아 내외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부천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1) J. Maxwell Miller and John H. Hayes,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2) James B. Pritchard, 『고대 근동 문학 선집』, 김구원 외 4인 역 (서울: CLC, 2016)
3) Tammi Schneider, "Did King Jehu Kill His Own Family?: New interpretation reconciles Biblical text with famous Assyrian inscript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995): January/February
4) Nadav Na'aman, "Jehu Son of Omri: Legitimizing a Loyal Vassal by his Overlord," Israel Exploration Journal, Vol. 48, No. 3/4 (1998): 236-238
5) 배희숙, "역대기의 예언 및 예언자 이해," 『신학논단』, 74(2013):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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