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교인들이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를 기억하고 연대할 것을 다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하루 종일 내리던 부슬비가 그친 저녁 8시. 어둑어둑한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하나둘 사람이 모였다. 이들은 익숙한 손짓으로 간이 의자를 꺼내고, 천막 농성장 안에 있던 나무 십자가를 가져와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열댓 명이 빙 둘러앉았다.

"철탑 위에서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김용희 님을 위한 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김용희 씨는 삼성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알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김 씨는 6월 10일,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 위에 올랐다. 55일간 단식했고, 현재 94일째 고공 농성 중이다. 사람 한 명이 채 누울 수도 없는 공간에서, 언제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100일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향린 공동체, 새민족교회, 촛불교회, 생명사랑교회, 길찾는교회, 한신대 재학생 등 개신교인들은 7월 말부터 매일 돌아가며 강남역을 찾아 기도회를 열었다. 김용희 씨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는 그를 기억하고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 위해 개신교 17개 단위가 모여, 9월 10일 삼성해고노동자김용희고공농성개신교대책위원회(개신교대책위)를 꾸렸다.

출범 기자회견이 열린 이날 저녁은 향린교회 '가보세'가 기도회를 담당했다. 가보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향린교회에 등록한 교인들 모임이다.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어 사람이 살 곳이 아닌 철탑 위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저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그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여기 길거리에서 호소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김용희 님이 웃으며 내려올 수 있게, 마음을 모은 동지들이 만세 부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할 수 있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평소 기도회가 있는 날이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불빛을 보내던 철탑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김용희 씨는 전화 통화로 "하루 종일 비가 많이 와 천막 안에만 있어야 했다. 지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내려다보면서 기도회 참석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추석 전 삼성과 정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고 했다. 향린교회 가보세 김기수 집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올라가 있다.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기도는 할 수 있으니까 이 자리에 나오게 되는 것이다. 명절이 시작되기 전에 내려오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매일 오후 8시에 열리던 릴레이 기도회는 개신교대책위가 주관하는 화·목 기도회로 전환한다. 앞으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강남역 8번 출구에서 김용희 씨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회 및 행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신호등 너머로 CCTV 철탑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불빛이 새어 나올 텐데 비가 많이 왔던 이날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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