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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제 된 '혐오 표현', 규제와 인식 개선 함께 가야
아시아 태평양 인권 기구 컨퍼런스 "다양한 층위 차별 금지 법률 제정, 교육 통한 자각 필요"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9.09.05 16:33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는 8월 27일 혐오 표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혐오 표현을 접한 적 있다고 답한 국민은 64.2%였다. 연령이 낮을수록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응답률이 높았다. 청소년의 경우 응답자 82.9%가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하는 혐오 표현 문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올해 3월 백인 우월주의에 심취한 한 남성이 모스크 두 곳에 총기를 난사해 51명이 사망하고 49명이 다쳤다. 범인은 범행 뒤 무슬림을 향해 혐오를 표출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그는 이전에도 혐오 표현을 일삼은 사람이었다.

뉴질랜드 경우에서 볼 수 있듯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 표현이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그 집단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인권위 최영애 위원장은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AFP) 컨퍼런스에서 "혐오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은 사회적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피해 당사자 인권만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집단, 더 나아가 사회 공동체 전체 구성원 인권을 침해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이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이 개최한 컨퍼런스 '혐오와 차별을 넘어 - 누구나 존엄하게'에서 환영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혐오와 차별을 넘어 - 누구나 존엄하게'라는 주제로 9월 5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는 아시아 태평양 25개국 인권 기구가 참석했다. 각국 인권 전문가들은 혐오와 차별이 전 세계 인류가 공통으로 겪는 인권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정부 기구와 시민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나눴다.

인권위는 최영애 위원장 취임 후 '혐오와 차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4대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설정했다. '혐오차별대응특별추진위원회'(추진위)를 구성해 혐오 차별 국민 인식 조사, 혐오 표현 인식 개선 교육 및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정강자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한국 사회 혐오 표현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기조 강연에서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된 사회적 약자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공포심을 느낀다. 혐오 표현 방치는 범죄 발생, 사회 갈등 심화, 차별 고착, 소수자의 표현의자유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우리 사회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 표현은 정부가 규제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정강자 위원장은 국가가 혐오의 1차 대응 주체가 되어 다양한 차별 금지 정책을 입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정책 수립·교육·홍보하며, 언론·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는 혐오 표현에 대응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자율 규제 방식으로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차별대응특별추진위원회 정강자 공동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혐오 표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질랜드 사례에서는 정부, 인권위원회, 민간이 어떻게 협력해 혐오 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올해 3월 발생한 '모스크 총기 난사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 뉴질랜드 인권위원회 폴 헌트 의장은, 혐오 표현은 개인 혹은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위해 표현'(harmful speech)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했다.

헌트 의장은 '위해 표현'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해당 집단이 생각하는 위해 표현이 무엇인지 듣고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일관성 있게 온·오프라인에서 위해 표현을 제재하고, 인권위는 정부를 감시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 영역에서도 위해 표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규제를 가하는 차원을 넘어 모두의 존엄성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궁극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종교·다민족 사회인 스리랑카 인권위원회 디피카 우다가마 의장은,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이 수반되지 않으면 혐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리랑카도 국제 인권 표준과 같은 비차별 조항을 법률에 포함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우다가마 의장은 단순히 수를 맞추는 등 쿼터제로 차별을 해소하려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스리랑카의 경우 종족별로 학교를 다르게 다니는 분리주의 교육이 오래 지속됐다. 분리주의 교육이 철폐됐다고 하지만 시골에서는 여전히 끼리끼리 문화가 강하다고 했다. 스리랑카 인권위는, 다른 문화를 모르는 불안감에서 오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 및 정책 개혁을 주도한다고 말했다.

각국 인권위이 펼쳐 온 다양한 노력에도 혐오에 기반한 차별은 기승을 부린다. 이는 인권위가 지닌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인권위의 차별 시정은 '권고'에 불과하며 각국 인권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석자들은 차별 없는 세상은 결국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각 단위가 이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컨퍼런스에는 말레이시아·호주·뉴질랜드·인도·몽골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25개국 인권 기구 대표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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