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가을 개최 예정이었던 제3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가 취소됐다. 부산 퀴어 문화 축제 기획단은 해운대구청(홍순헌 구청장)이 퀴어 문화 축제 예정지인 구남로에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지 않은 데 대해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등 혐오 세력의 축제 방해를 방관하는, 교묘하고 정치적인 차별 행위"라고 했다.

기획단은 8월 20일 해운대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운대구가 성소수자를 차별한다고 규탄했다. 1·2회 퀴어 문화 축제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기획단에 따르면, 올해 해운대구청은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행사를 강행하면 과태료 부과, 형사 고발, 행정대집행을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장소와 날짜를 변경해 행사를 열 수도 있지만, 성소수자 혐오가 깊게 뿌리내린 부산에서는 이 역시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해운대구 의회는 2018년 2월, 해운대구 인권조례에 명시한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을 삭제했다. 당시 지역 교계 압력으로 '성적 지향'을 삭제했다는 사실이 회의록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기획단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부산 전반에 형성돼 있다고 언급했다. 어디를 가도 현재로는 참가자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

해운대구청은 안전한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보장하라!
제3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를 위한 기자회견문

2년 전 바로 이 자리에서 있었던 제1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 기자회견을 기억합니다. 부산 지역 시민사회 단체와 시민들이 염원하던 부산 퀴어 문화 축제를 맞이하는 희망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2년 전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해운대구청의 성소수자 배제와 차별에 분개하며 이곳에 서 있습니다. 해운대구청은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부산 퀴어 문화 축제의 도로점용을 불허했습니다. 또한 축제를 강행할 경우 과태료 부과와 형사 고발 등의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행정대집행을 언급하며 축제의 안전을 위협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축제 이후 해운대구청은 대표자 1인을 형사 고발하였고,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해운대구청과 더불어 경찰은 본인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기획단원과 그의 가족에게 연락하여 축제의 내부 정보를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등 민간인 사찰도 있어 왔습니다. 이처럼 행사 전반의 안전은 물론 기획단원 개인의 신변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탄압하는 시도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8년 2월, 해운대구 의회는 해운대구 인권조례에서 포괄적 차별 금지 조항을 삭제했습니다. 두 달 뒤인 2018년 4월에는 수영구의회에서 비슷한 형태로 인권조례를 개악했습니다. 이러한 행태 뒤에는 바로 혐오 세력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습니다. 혐오 세력은 부산 내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치밀하게 방해해 왔습니다. 해운대구 인권조례 개악 당시에는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및 혐오 세력이 해운대구 의원에게 지속적으로 인권조례를 개정하라는 압박을 주었다는 사실이 해운대구 의회 대회의 회의록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는 지자체와 의회, 교회의 유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이렇듯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분위기는 부산 전반에 걸쳐 뿌리 깊게 형성되어 왔습니다. 때문에 부산 퀴어 문화 축제 기획단은 축제 일정과 개최 장소를 변경하더라도 축제의 가장 큰 목표인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정을 연기하여 해운대 행정구청과의 원만한 합의를 통해 도로점용 허가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변경할 개최 장소에 맞춰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가진 관할 구청 또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를 비롯하여 차별받고 있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축제'의 공간입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축제 참가자와 기획단원 또한 이 도시의 일원이며, 지방정부 차원에서 마땅히 보호해야 할 시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했습니다. 해운대구청의 부산 퀴어 문화 축제 도로점용 불허는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등 혐오 세력의 축제 방해를 방관하는, 교묘하고 정치적인 차별 행위입니다. 이는 곧 혐오 세력으로 하여금 축제를 '불법'이라고 허위 선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으며, 혐오 세력의 물리적인 폭력과 혐오에 불을 붙여 축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과 재작년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적법한 집회 신고 절차를 거쳐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한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따라, 집회 신고 절차를 거친 행사는 안전하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협조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2년 전 이 자리에서 선언했던 차별 없는 축제를 요구합니다. 부산시민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퀴어 문화 축제를 원합니다. 앞장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지해도 모자랄 시점에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해운대구청은 각성하십시오. 해운대구청은 지원은 못할망정 판은 깨지 말기를 바랍니다. 당신들의 방관과 방해가 비민주적 혐오 세력의 광기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2019년 8월 19일
부산 퀴어 문화 축제 기획단 일동

연명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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