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교수는 신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허울 없이 지냈다. 그와 가까운 학생들은 '형', '선생님', '아빠'라고 부르며 따랐다. 학교 안에 교수를 추종하는 무리도 생겼다. 인지도가 높은 학생들이 그와 함께했다.

한신대 신학과를 나온 나는 우연한 계기로 그 교수가 있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듣던 대로 교수는 시원시원했고 허례허식이 없었다. 보기 드문 스타일이라서 인기가 많았지만, 그를 경계하는 신학생들도 있었다. 교수든 학생이든 술자리에서 종종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며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동안 잊고 지낸 교수를 올해 2월 동료 기자가 쓴 기사를 통해 접했다. 교수는 자신의 집에서 제자를 성폭행했다. 보도가 나간 날, 평소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던 선배·동기들에게서 연락이 빗발쳤다. 대다수가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물었고, 교수를 비난했다.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왔다.

교수를 따랐던 이들은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수가 성폭행했다는 근거가 있느냐",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최근 사적인 일로 만난 현직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목사 2명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교수를 두둔했다.

A 목사는 교수 성폭행 사건을 학교 정치와 결부했다. 학교가 총장 문제로 시끄럽다 보니 이 일을 터뜨려 시선을 돌리려 한다고 주장했다. B 목사는 "성행위는 있었지만, 강제나 강압은 없었다", "걔(피해자)가 뭘 노린 것 같다"며 노골적으로 교수를 옹호했다.

두 목사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제기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었다. 오로지 '믿음' 하나뿐이었다. "너도, 우리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다. 교수가 속한 노회는 책임을 물어 면직 처분했고, 학교 이사회 역시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데도 두 목사는 교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입을 열었다가 신상이 노출되고 목회를 못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폭력이 또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폭로를 결심했다. 사건의 맥락을 짚어 줘도 두 목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고 '우리 목사님'을 맹신하는 일은 보수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신학적·정치적으로 진보를 지향한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이 스쳤다. "진보는 언제나 진보이기 전에 남성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연락해 온 사람 중, 피해자에게 공감하기보다 가해자 편을 들거나 '중립'을 지키겠다고 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진보의 가치보다 우선되는 강고한 남성들의 연대 속에서는 피해자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2차 가해자가 된다. 두 목사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생각난 김에 한 말씀 드리겠다.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도 공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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